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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Oct 11. 2021

4번 게이트와 S3번 홈


오른쪽으로 가요. 4번 게이트는 왼쪽 플랫폼에 있잖아요. 아뇨 오른쪽으로 가는 게 맞아요. 하지만 자이살메르행은 4번 게이트라고 적혀 있어요. 자이살메르행 기차는 오른쪽 플랫폼에서 타야 해요. 왜 S3 홈은 없는 거죠? 그럼 그냥 S4홈에 서 있어요. 하지만 기차표에 적혀 있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곧 기차가 올 거예요. 홈의 사인이 또 바뀌었네요? 그렇다면 이젠 여기가 아닌 것 같군요. 도대체 4번 게이트 S3 홈은 어디에 있죠? 찾았어요! 정말요? 어서 이 기차를 타요. 정말이죠? 네, 아마도 자이살메르행이 맞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9와 3/4 플랫폼의 판타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인도에서 경험한 ‘적반하장’ 시스템에 대한 골치 아픈 이야기다. 인도의 적반하장은 대체로 거리의 상인들을 일컫지만, 나는 그들의 복잡한 대중교통 시스템에 훨씬 이골이 나 있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기에 매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다소 난이도 높은 불쾌감이었다.


촌놈이 대도시로 상경하면서 겪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지하철’이다. 작은 섬을 떠나 멀리 도시에 보금자리를 틀어야 했던 나도 이 에피소드를 몇 개 보유하고 있다. 또 한번 고백하건대, 개찰구에 종이 전철표를 넣는 것조차 서툴어 얼굴을 붉혔던 촌놈이다. 섬에서 버스나 겨우 타던 19년의 생활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고수의 마법 주문을 외듯 척하면 척, 모든 것이 빠르고 매끄러운 2021년의 서울이 놀랍기만 하다. 이 시스템에 이질감 없이 착 안착되어 있는 나는 또 어떻고.


그 당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역은 서울역이었다. 경기도 군포에서 자취를 했던 나는 1호선을 타고 서울에 가는 일이 잦았다. 보통은 1호선을 주욱 타고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을 하곤 했다. 그게 아니라면 금정역에서 4호선을 타고 갔다가 서울역에서 1호선을 타고 돌아오는 경우이거나. 1호선에서 4호선이든, 4호선에서 1호선이든 노선을 바꿀 때마다 서울역사를 빙빙 맴돌곤 했다. 출구를 찾는 것조차도 서툴렀다. 꼴에 촌놈 티는 내고 싶지 않아서 누구에게 물어보는 일도 없었다. 남들은 눈 감고도 하는 쉬운걸 혼자서만 할 줄 몰라 헤맬 때만큼 신경질 나는 게 또 있을까. 이제는 나도 ‘서울 사람’이 다 되었지. 기다란 지팡이(스마트폰)도 있겠다, 어디든 갖다 대고 익스펙토 패트로눔!(터치)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다시 인도 여행 이야기로 돌아와서, 2008년 9월 12일에 겪은 일이다. 쿠툽 미나르 관람을 마치고 올드델리 역에서 자이살메르행 기차를 타야 하는 일정이었다. 쿠툽 미나르에서 빠하르 간지의 숙소로 돌아갈 때 문제가 생겼다. 출발할 땐 제때 나타나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씽씽 달렸던 버스가 웬일인지 다시 돌아갈 때엔 종적을 감춰버렸다. 정류장 근처의 담배가게에서 생수를 한 통 사며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물었다. 노선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 가게의 노파는 전혀 쌩둥 맞은 노선을 알려 주었다. 노선조차 제멋대로일 리는 없고 정류소에 앉아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뙤약볕에 타들어 가는 속을 달래려 애꿎은 생수만 벌컥벌컥 마셔댔다. 버스는 한 시간이 넘어서야 정류장에 나타났다. “코리안 아워는 그래도 양반이었군” 인도에선 버스든 기차든 제시간에 맞춰 와 주길 바라다간 마상을 입기 딱 좋다. 수행자의 태도로 마음을 비우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 그것이 인도가 알려준 시스템에 적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빼곡한 인파로 발 디딜 틈 조차 없던 올드델리 역을 3kg 이 넘는 배낭을 메고 걸어야 했다. 혹여나 기차를 놓칠까 빠르게 계단을 오르내린 덕분에 발바닥이 시큰거리고 무릎은 욱신거렸다. 나는 4번 게이트를 찾고 있었다. 4번 게이트의 S3 홈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제멋대로 바뀌는 전광판의 사인 덕분에 30분 넘게 홈을 찾아 헤매었다. 인도인들은 눈 감고도 하는 그 쉬운걸 혼자서만 할 줄 몰라 헤매느라 또 이골이 나기 시작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무나 붙잡고 도움을 요청했다. 세 번째 요청이자 마지막 요청의 응답자는 산뜻한 파란색 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아내와 어린 자녀들과 함께였다. 나의 간곡한 요청에 신사는 아주 점잖고 매너 있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4번 게이트의 S3 홈을 찾아주었다. 마침 기차가 늦장을 부리며 도착해준 덕분에 사막 마을로 가는 긴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과밀화된 인구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확실히 빠르고, 쾌적하고, 편리한 도시다. 하지만 인도에 오래 살았더라면 그들의 시스템이 되려 편하다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익숙해진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느리게 느리게, 하지만 서서히 길들여지는 것 말이다. 10년 전 서울살이는 절대 해독할 수 없는 매트릭스였지만, 이젠 서울을 떠나 산다는 게 되려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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