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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Oct 13. 2021

모래의 맛



베이스캠프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완전히 포기하고 싶었다. 눈앞에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자 더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얼굴에 감정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으으으..” 앓는 소리를 냈다.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다.  “끄으응!” 꾹 참고 있던 고통이 신음을 하며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일행이었던가 낙타꾼이었던가, 앞서 가고 있던 누군가 소리를 들었다. 어디가 불편한지 물었고, 나는 열이 난다는 대답 대신 목이 마르다는 대답을 먼저 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몸살이 나는 바람에 온몸이 고열로 펄펄 끓고 있었다. 그러나 아픈 것보다는 목이 타들어가는 것이 먼저였다. 본능적으로 그랬다.


 몸의 온도는   였을까? 한낮에 사막의 기온이 50 가까이 된다고 한다.  기온에다 몸에서 나는  까지 더해야 그때의 체감 온도를 제대로 설명할  있다. 낙타의 등에 묶어 두었던 물통을 꺼내어 물을 따라 마셨다. 조그만 라임도  움큼 베어 물었다. 기대와는 달리 사막의 열기로 데워진 물과 라임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전날 저녁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알고 있었지만, 오직 낙타 사파리를 위해 꼬박 하루를 기차에서 보내야 했기에 불덩어리같은 몸을 이끌고 일정을 강행할  밖엔 없었다. 덕분에 지옥의 불맛을 혹독하게 경험했다. 사막 위의 여정을 절반쯤 건너갔을 ,  영혼의 절반은 이미 팀을 버리고 개인주의로 가고 있었다.  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자초했던 일이다.


사막은 우리에게 잠시 쉬어갈 그늘도, 시원한 샘물도 결코 제공해주지 않았다. 다만 이글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모래알이  입안에서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머릿속과 귓바퀴와 겨드랑이 아래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러다 온몸이 모래 투성이가 되었다. 어릴  잠시 앓았던 이름 모를 피부병처럼 가렵고 따끔거렸다. 입안으로 들어간 모래알은 까끌거리며 건조한 목구멍을 한층  메마르게 만들었다. 멋진 자세로 낙타의 등에 앉아 여유롭게 사막을 건너려 했던 나의 계획은 모래 속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괜히 심술이  낙타의 목에 발을 가져다 대고 툭툭 건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커다란 콧구멍에서 크릉! 콧바람이 나왔다. “낙타라고 해서 사막이 쉬운 것은 아니야. 당신처럼 제멋대로인 손님을 등에 태우는  엄청난 감정노동이라고.나에게 쏘아붙이는 것만 같았다. 급기야 녀석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탈선을 해버렸다. 대열을 이탈한 짧은 모험은 나를 짜릿하게 했지만, 낙타는  발길이 어지간히도 싫었던 모양이다. 놀란 낙타꾼이 고삐를 잡고 다시 낙타를 끌었다. 녀석은 앞을 보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눈빛이 뒤통수를 뚫고 나왔다. “이봐, 얌전히 앉아 있는  좋을 거야.”


정오를 넘기자 이미 너덜 해진 몸이 털썩거리며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정신이 몽롱한 것과는 달리 풍경은 맑고 선명했다. 이것이 내가 살아서 보는 마지막 지구의 모습은 아닐까. 몸이 곧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하늘은 높게, 태양은 대지를 환하게 비추었다. 모래만이 가득한 땅에도 푸른 나무들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가득 채우기보다는 듬성듬성 자라났다. 몸집이 작고 둥근 나무와 저 멀리엔 제법 커다란 나무들도 보였다. 잎이 둥글고 또 잎이 뾰족한 나무들은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어쩌면 땅 속 깊은 곳은 메마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전에 내렸던 빗물이 아직 그대로일 것이다. 근처에 커다란 오아시스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이 타들어 가는 대지를 잠시 식혀주었다. 모래와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만으로도 나무가 살아내기엔 충분했던 것일까.


척박하다는 것이 생명에 절박함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일까. 절박함에서 오는 생명력은 모래가 덮을 수 없을 만큼 강했을 것이다. 뾰족하게, 둥글게, 볼록하게, 각자의 방식대로 운명에 맞서 삶을 꾸려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 모래 한 알이 들어와 입안을 흔들었을 때, 나는 온 우주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작은 모래 한 알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몰라 끙끙거렸다. 신은 사막의 생명들에게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일러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방법을 알고 있었을까? 메마른 모래 언덕에서도 나무는 뿌리를 내린다. 태양은 적당한 거리를 알고 별은 별의 자리를 알며 바람은 불어야 하는 때를 알고 있다. 비슷한 풍경이 계속되어도 낙타꾼은 길을 알고 길을 만들어 나간다. 스물넷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상실감을 이유로 덜컥 방향키를 놓아 버렸다. 나를 마주 한 적은 있었을까? 궁금했던 적 조차 없었을 것이다.


해가 조금씩 대지 아래로 기울기 시작하자 열기는 차츰 식어갔고, 그제야 어지럽던 머릿속도 조금 정리가 되었다. 낙타꾼들은 좋은 터를 찾아 낙타를 세우고 베이스캠프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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