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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Oct 19. 2021

낮과 밤

라디오헤드, 프린스, 존 콜트레인 중 한 곡을 틀었을 것이다. 이것은 <카프카>라 이름 붙인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곡들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 속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듣거나 이야기해준 것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나는 두꺼운 솜이불 깊숙이 몸을 밀어 넣고 <카프카>를 들으며 카프카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고운 모래 위에 이불을 덮고 누운 밤은 말도 안 되게 쌀쌀했다. 타르 사막의 낮과 밤은 그 온도 차가 확연히 달랐다.


떠나올 때엔 밤하늘 가득 수놓인 별빛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사막의 하늘엔 별 대신 가로등 불빛처럼 환한 달만 떠 있었다. 사막의 달빛은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았다. 세상엔 혹시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빛은 어딘지 기이하게 보였다. 인공의 불빛들로 가득한 것이 서울의 밤이다. 깊은 새벽에도 거리엔 언제나 불이 환하게 비추고 있기에 달빛은 좀처럼 관심을 받지 못한다. 일부러 고개를 들어 달을 보지 않는 한 거기에 달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달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어두운 골목만을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서울의 모든 불을 꺼버린다면, 도시의 달도 사막의 달빛만큼 밝게 거리를 비출 수 있을까? 모래 언덕 위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달빛은 한없이 온화하고 포근했다. 베이스캠프의 한편에선 타오르던 장작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꺼져가기 시작했고, 나는 음악을 들으며 그곳 자이살메르로 향하던 긴 여정을 찬찬히 머릿속에 재생시켜 보았다.


델리를 출발해 라자스탄 주를 가로지르며 열심히도 달렸다. 장장 19시간의 이동이었다. 지옥 같던 올드델리 역 4번 게이트 S3홈을 겨우 빠져나와 기차에 올랐고, 허름한 침대 칸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중간에 기차가 고장이 나버렸던가, 선로를 따라 정거장까지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이동하고서야 자이살메르에 도착할 수 있었고, 엄청난 고열을 앓아야 만 했다. 극심한 피로감에 낙타 투어를 망쳐버릴 것이 두려워 해열제, 감기약, 두통약, 복통약을 그날 하루에 전부 삼켜버렸던 것이 원인이었다. 난 늘 그런 식이었다. 망쳐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허겁지겁 해치웠던 일들은 결국 정말로 엉망이 되어 끝나버리곤 했다. 사막투어도 그랬다. 예상을 한 치도 비껴가지 않는다고 보기 좋게 망쳐버렸다고 자책하기 바빴다. 그러나 완벽할 수 없으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로 나를 위로하진 못했다.


완벽한 어른이 되는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좋은 학점, 좋은 직장, 결혼을 실수 없이 매끄럽게 해내야만 했을 것이다. 사회가, 어른들이 가르쳐 준 좋은 삶은 그랬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것을 따르기 위해 애썼다.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안전한 길이고 보장된 길이니까.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엔  영 관심이 없었다. 내가 원한 건 울퉁불퉁하고 발이 푹푹 빠져도 즐거운 나만의 길이었다.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 길이었지만 그 길을 믿었다.


하지만 갈림길에 서서 망설이던 나는 누구도 부여한  없던 상실감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고개를 들어 그저 앞을 보기만 했더라면 충분히 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접시 물에 코를 박고 헉헉거리며 울기 바빴다.  모양을 찾으려 할수록 세상은 내가 평범해지기를 바랐고, 미리 짜여진 틀에 나를 끓이고 녹여 쏟아부으려 했다. 그러나 세상을 탓할  만은 아니었다.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했던 나의 탓이다. 지독한 타르 사막의 열과  몸이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모든 번뇌와 고민들은 증발해버렸다.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만 했고, 오로지 ‘출발점만을 떠올리며 나는 견디어 냈다.



태양은 어떻게 적당한 거리를 알고 있는 것일까. 오래 머물지 않고 저물어야 하는 때를 어떻게 알고 움직이는 것일까. 태양의 길은 누가 만들어 둔 것일까. 방향을 알 수 없던 나는 노랗게, 빨갛게, 푸르게 대지를 물들이며 태양이 지나는 자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모래 언덕 위에 서서 어두워져 가는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의 그림자를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온도를 몸이 따라잡지 못했고 나는 몸살을 앓았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은 냉혹했다. 누군가 나에게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일러준 것들은 대개 허무한 것임에도 나는 손에 쥔 것이 없어 두려워했다.


일어나. 너는  뒤처지고 있잖아.


뜨거운 질타가 날아올 때면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얼얼했다. 서툴게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비비 꼬여버리는 일들에 화가 났고, 내가 나일 수 없음이 늘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길 바랐던 것일까?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점점 더 뾰족해지기 시작하는 마음을 어딘가에 감추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이글이글, 지글지글, 펄펄. 내가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 할 때마다 부끄러움에 그것을 꾹꾹 눌러 버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늘이 없다고 불만을 쏟을 필요는 없었다. 바람이 불어오지 않음을 애석하게 느낄 필요도 없었다. 척박한 땅 아래 흐르고 있는 빗물을 알았더라면 더 이상 흐느껴 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갈증, 배고픔, 더위, 모래바람. 그런 것들은 큰 의미가 없다. 나는 열이 펄펄 끓는 몸을 이끌고 갈지언정 포기하지 않는 스물넷이었다. 꿋꿋하게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었고 끝끝내 그것을 해냈다. 그 모든 여정을 온전히 견디어낸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때의 나는 왜 스스로를 더 응원하지 못했을까. 그때의 나는 왜 그토록 매정하게 채찍을 들어야만 했을까. 여행 열흘차에 들어서자 조금씩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의 조명 아래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막의 부드러운 달빛 아래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침 해가 밝아오자 나는 또다시 먼 길을 떠나야 했다. 여전히 아픈 몸을 이끌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여행길에 나섰다. 그리고 처음부터 떠나온 적 없었던 것처럼 뒤돌아보지 않았다. 바람이 멈추고 태양이 내리쬐는 길 위에 순종하며 그저 덤덤히 앞을 향해 나아갔다. 절망만 하던 나는 아직 살아 있었고,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것을 이해했고, 태양의 자리를 살폈으며, 모래가 날아오는 것을 가만히 받아내었다. 고개를 높이 들자 풍경은 더 넓고 아름답게 나의 눈 속에 담겼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타르의 모래사막을 넘어 ‘하루’라는 짧은 여정의 끝에 무사히 나의 출발점으로 다시 되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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