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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Oct 10. 2021

쵸우멘


홍콩식 볶음면은 어쩌다 인도의 대중음식이 된 것일까. 이사하는 날 짜장면을 시켜 먹는 것이 한국인의 국롤인 것처럼 인도에서는 1일 1 쵸우멘이 국롤일지도 모른다. 쵸우멘은 ‘차우면’으로 잘 알려진 중국의 면요리이다. 여행에서 맛본 것은 홍콩식 볶음면이고 그 이름을 쵸우멘으로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부르고 있다.


비위가 약하고 까탈스러운 내가 인도에서 유일하게 즐겨 먹었던 음식이 바로 이 쵸우멘(chow mein noodle)이다. 어느 식당에 가든 쵸우멘이 있으면 우선 그것을 주문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판매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했고. 기름이 잔뜩 베인 짭조름한 소스에 잘개 썬 양배추와 꼬들꼬들한 면. 아주 심플한 요리다. 일본의 야끼소바보다는 달큰함과 새콤함이 덜했다. 인도네시아의 미고랭과는 형제처럼 닮아 보이지만 완전히 배가 다른 형제다. 그렇다고 간장 국수처럼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도 아니었다. 그 독특한 소스의 비밀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일반적인 레시피라면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카레와 탄두리, 북부 끝자락 히말라야 지역의 음식까지 맛보았지만 나의 소울푸드는 단연 쵸우멘이다. 향신료와 위생을 이유로 밥을 거부하던 나에게 쵸우멘의 꼬들한 면발은 놀란 영혼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사실은 겨우겨우 의지하고 있었던 게 맞다. 소박한 음식 한 접시에 깊은 은혜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쵸우멘을 중심으로 천천히 메뉴를 추가하거나 바꿔가며 인도 음식을 서서히 받아들였고, 이후 허름한 식당에서 맨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을 만큼 장족의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가장 맛있었던 건 자이살메르 길거리 노점상의 쵸우멘이다. 노점상이랄 것도 없이 바퀴가 달린 이동식 포차에 가스버너 하나와 냄비 하나, 그리고 몇 가지 양념통을 갖춘 세상에서 제일 작은 키친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키친의 주인은 젊은 청년이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서너 살 정도 어렸을 것이다. 옆에는 남동생으로 보이는, 그보다 더 어린 꼬마가 야무지게 조수석을 지키고 있었다. 주변엔 눈을 동그랗게 뜬 구경꾼들이 노점을 에워싸고 있었다. 쵸우멘 하나를 주문하자 청년이 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불 위에서 면발을 휘휘 젓기 시작했다. 여기에 양배추와 소스를 추가해 금세 볶음면 하나를 완성해냈다.


놀라운 것은  조리된 쵸우멘을 접시나 포장팩이 아닌 라면봉지에 담아서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열심히 조리한 짜장면을 짜파게티 봉지에 넣어 판매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요리로 시작해서 ‘뽀글이 끝나는  그런. 라면봉지에 음식을 담으니 형색은 아무래도 초라했다. 과연 이게 맛이 있을까? 후회해도 이미 늦은 뒤였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쵸우멘부터 먹기 시작했다. 라면봉지를 열자 특유의 짭조름하고 달큰한 향이  끝까지 올라왔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엔 금세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젓가락 가득 집어 후루룩 면발을 흡입했다.


굉장한 맛이었다. 허름한 라면봉지 속 쵸우멘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제야 청년 주변에 몰려 있던 구경꾼들을 이해할  있었다. 레시피를 훔치려던 것이 분명하다. 이게 장사가 된다는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감에 가득  눈빛으로 휘리릭 면을 볶아내던 청년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떠올려 본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돈을 많이 벌었을까. 청년의 동생이 쵸우멘의 대를 이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을지도 모르고. 쓸데없는 오지랖이지만.


아마 서울이었다면 <청년 쵸우멘>이라는 간판을 달고 후미진 골목에 작은 가게를 내어도 그보다  많은 인파를 불러 들일  있었을 것이다. 대기표를 받고 늘어선 줄이 끝도 없이 이어지거나 SNS 핫하게 달구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나라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은 청년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떼’들의 입김을 쌔게 받은 불씨가 활활 타오르며 세상을 다채로운 맛으로 채워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세상엔 적절한 비율의 라떼와 그보다 조금  많은 비율의 청년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노련함과 지혜, 창의력과 열정의 밸런스를  잡아나간다면 불가능하다 여겨지던 맛들도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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