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resa Oct 08. 2021

타지마할 도둑






아주 기괴한 하룻밤이었다. 천둥 번개가 한 차례 크게 울렸던 것 같다. 이따금씩 깜빡이던 전등이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행의 중반을 넘어갈 즈음 아그라의 숙소에서 겪은 일이다.


아그라는 볼거리가 풍성한 지역은 아니었다. 그곳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건 오직 타지마할이고, 타지마할 묘당을 뺀 아그라는 페페로니를 뺀 페페로니 피자나 다름없었다. 나는 거대한 묘당을 눈에 담기 위해 심심한 거리의 풍경과 스산한 밤을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타지마할 하나 만으로도 아그라에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묘당의 아름다움은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막 기억 속의 아름다운 타지마할 묘당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리고 야외 테라스의 어느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묘당의 주인, 몬타즈 마할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여행지에서 얼핏 들었던 타지마할 도둑들에 얽힌 이야기를 토대로 아주 짧은 호러 로맨스를 각색해 보았다.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마을의 고성에 타지마할이라는 무서운 마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의 침실 머리맡엔 붉은색의 커다란 원석이 놓여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타지마할의 심장’이라 불렀다. 예로부터 타지마할의 심장을 손에 쥐는 자는 영원한 사랑과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왔다. 수많은 사내들이 그 심장을 갖기 위해 성으로 향했다. 마녀를 깨우지 않고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심장을 손에 쥐어야만 영원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마녀를 깨우게 되면 무시무시한 그녀의 입속에서 다진 고기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식성 좋은 마녀에게 수많은 사내들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한창 첫사랑에 푹 빠져 있던 청년 아그라도 심장을 훔치기 위해 성으로 향했다. 타지마할의 심장을 간절히 원하는 그의 연인을 위해서였다. 아그라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하나 붙은 목숨까지 영끌해야만 했다. 어느 으슥한 밤, 그는 미스터리한 성의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길게 뻗은 정원을 달려 간신히 성문을 열었다. 사면이 대리석으로 장식된 홀을 지나 오직 마녀의 침실을 향해 용맹히 걸어갔다. 불이 꺼진 침실엔 커다란 심장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잠들어 있는 타지마할의 침대 머리맡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새벽종이 울릴 때까지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그러나 새벽 종이 막 울리려는 순간, 심장을 향해 뻗었던 아그라의 손등에서 투명한 땀방울이 떨어졌다.


콧잔등 위로 떨어진 땀방울에 타지마할은 잠에서 깨어났다.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포악한 마녀가 아니라 굉장한 미인이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무색할 만큼 선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아그라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잊어버린 채 마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녀는 입이 아닌 눈으로 사람의 영혼을 집어삼키는 마녀였던 것이다. 마녀의 눈에 푸른 영혼을 빼앗긴 청년 아그라는 결국 심장을 손에 넣지 못했다. 영원한 사랑과 부귀영화 대신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이런 이야기다. 영원한 것을 손에 쥐려는 오만함이 영혼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진짜 타지마할 도둑에 얽힌 이야기는 사실 매우 싱겁다. 타지마할 묘당은  밖으로 거대한 대리석과 원석으로 꾸며져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광물을 호시탐탐 노리는 도둑들이 있다고 한다.  역시 전설이나 다름없는 과장된 이야기일 듯한데, 덕분에 나는 입구에서부터 삼엄한 경비대를 거쳐야 했다.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물건은 반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물며 숟가락도 안된다. 도대체 숟가락으로 어떻게 벽면의 원석들을 뜯어 가는지는 모르지만 인도라면 아주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나는 가방과 손에  비닐봉지까지 전부 수색당했다. 그리고 카메라 하나를 간신히 들고 들어갈  있었다.  옛날 어느 왕이 미치도록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 무려 20년간 묘당을 건축했다는 사실은 숟가락으로 원석을 뜯어가는 도둑들 만큼이나 기괴하고 놀라웠다. 완전한 균형을 이루던  웅장한 건축물은,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연인을 위해 어디까지 해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거의 로맨스의 끝장판이다.



이전 05화 1리터의 갈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