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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Oct 07. 2021

코끼리, 소에 대한 오해




뜨거운 골탕을 부어 도로를 포장하듯 20대의 절반을 홍대 거리에 쏟아부었을지도 모른다. 내 열정을 꾹꾹 눌러 담았던 거리가 이제는 제법 변한 듯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옷을 무지막지하게 좋아했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얼마 남지 않은 생활비로 옷을 사고 대신 밥을 굶던 날이 허다했다. 2000년대 초 이대와 홍대는 '불나방'들의 성지나 다름없었고, 나는 주말이면 하루 종일 골목의 옷가게들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느 날 뭔 바람이 들었는지 에스닉한 컨버스백이 하나 갖고 싶어졌다. 얇은 면 재질, 이국적인 패치워크, 화려한 자수의 다소 복잡한 희망사항을 품고 무작정 홍대와 이대로 향했다. 그리고 에스닉 백이 천장 끝까지 잔뜩 걸려 있는, 인도를 통째로 가져다 놓은 듯한 가게를 이대의 어느 골목에서 찾아 내고야 말았다. 가게 안으로 수줍은 발을 들이자 코 끝에 인더스 문명의 짜릿한 향기가 퍼졌다. 그리고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코끼리였다. 코끼리 장신구라든지 코끼리 패턴이라든지 사실 그런 것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내 눈엔 온통 코끼리만 보였던 것이다.


인도에는 코끼리가 꽤 많구나! 단순했던 나는 코끼리가 인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동물이라 착각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으로 이동할 때면 버스나 택시 대신 코끼리 등에 타고 이동을 하지 않을까? 끝내주는 경치와 함께 코끼리 등에 앉아 시원한 콜라를 들이키며 출근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 “캬아-“ 목을 축이면 코끼리가 “크아아앙-“ 우렁차게 울어대는 것은 아닐까, 마치 티브이 광고의 한 장면처럼. 그때부터 인도를 떠올릴 때면 머릿속에 코끼리가 카레와 함께 자동 완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끼리는 전혀 흔한 동물이 아니었음을, 여행을 통해 그 같잖은 오해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나마 우다이푸르의 도로 위에서 커다란 코끼리를 딱 한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위압감을 주는 동물이었다. 동물원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거리를 전부 점령해버릴 만큼 엄청난 거구의 몸집을 자랑했다. 코끼리 한 마리가 지나가는 통에 도로는 꽉 막혀 연신 클락센을 울려대는 자동차와 오토릭샤, 행인들로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등 위에 올라 탄 노련한 조련사도 삽시간에 구경거리가 되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넋이 나가버렸다는 것을 빼고는 그날의 기억이 거의 없다.

여행 내내 거리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코끼리가 아닌 소였다. 황색 소가 비율적으로 월등히 많기는 했지만 얼룩무늬나 흰색, 회색의 소들도 가끔 보았다. 신성한 소가 거리에 방치되어 있는 현실은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소들은 종종 코너에서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하거나 툭하면 커다란 똥을 누워 까다로운 함정을 만들곤 했다. 함정을 피하기 위해 하염없이 바닥을 보며 걷느라 목적지를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동네 누렁이가 마을 어귀에 꼬리를 살랑이며 마실을 나오듯 소는 동네의 흔한 동물이었다. 마차를 끌거나 짐을 실어 나르기도 했지만, 마른 체구에 거리의 쓰레기를 집어 먹고사는 ‘길소’도 많았다. 신성한 동물이기에 해침을 당하지는 않지만 길고양이만큼이나 배고프고 가여운 인생인 것이다. 마치 ‘열정’ 하나로 돌도 씹어 먹었다던 선배들의 무용담을 굳건히 믿었던 청춘의 쓰라린 상실감을 닮은 인생, ‘젊음’이라는 가장 푸른 이름표를 단 가장 가난하고 불안정한 인생 말이다. 그렇다면 인도의 또다른 상징인 코끼리들은 전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나 도로에 있어서는 안 된단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그 거구의 몸집을 감당할 도로가 있을 리 만무했고, 소의 똥으로 보아 코끼리의 똥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크기였던 것이다.


…..


여담이지만 나는 이대에서 구매했던 에스닉 백을 정말 잠깐 사용했다. 심지어 옷장 안에서 거의 꺼내보지도 않았다. 어느  옷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가방을 발견하고는 “내가 설마 이런  메고 다녔다고?” 하며 냉정하게 처분해 버렸다. 실로 엄청난 변덕 덕분에  시절  옷들의 유통기한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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