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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Sep 06. 2021

마살라 댄스


작별인사도 없이 신과 헤어진 아침, 나는 메인 바자르의 어느 빵집에 있었다. 어두운 홀에 테이블이 네 개. 메뉴판에는 영어와 힌디어뿐이었다. 온갖 생소한 음식들 가운데 익숙한 크로와상과 파인애플 주스를 찾아 주문했다. 카레도 탄두리도 아닌 특색 없는 음식이 인도에서의 첫 번째 식사다. 장시간 실온에서 수분을 빼앗겨버린 퍽퍽한 빵에 새콤한 주스를 한 모금 들이켰다. 빵이 소화되어 아래로 내려가기도 전에 구역감을 느꼈다. 몸이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음식 '알레르기'는 닷새가 지나도록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용감하게 다양한 맛에 도전하는 대학 동기와는 달리 나는 조금이라도 더 가공되거나 위생적인 것만을 선택하려 했다. 나에게 가공되지 않은 것은 '날것'이나 다름없었고, 날것은 익숙한 것이 아니라 위험한 것이었다.


인도의 드넓은  위엔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다채로운 맛과 향기가 있다. 그들의 음식에는 독특한 영혼과 지역의 특색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리고 그날의 분위기가 맛에 대한 감탄사를 결정한다. 어떤 날은  맛이 조금 짰고, 가끔은 너무 싱거웠다. 그리고 대부분의 맛은 마살라처럼 아주 복잡하고 미묘했다.


인도에는 ‘마살라’라고 불리는 특유의 향신료가 있다. 강렬한 마살라의 맛은 눈이 땡그란 인도인들 만큼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머리가 띵 해질 정도로 짜릿한 마살라 속 영혼이 내 혀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가공되고 정제된 것에 길들여진 나의 영혼을 자극했다. 그건 마치 "이런 춤 알아? 함께 추자!" 하며 나에게 알 수 없는 춤사위를 가르쳐 주는 것과 같았다. 완강히 거부하던 내가 마지못해 혀를 움직이며 따라 추는 것이었다. 그 춤이 생소하여 구역질이 나더라도 그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나는 여행기간 30일 중 단 하루도 복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계속해서 아리고 미세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정확히 그게 무슨 병인지는 모른다. 복통의 원인이 위생문제나 마살라 때문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뿐.


나는 어떻게든 그 땅에 길들여져야만 했다. 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들이 제공하는 것을 믿어야 했다. 계속해서 복통을 느낄 것이란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만 했다. 편식은 불가능했다. 나에겐 소화시켜 힘과 근육을 만들어 낼 '밥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연습을 했다. 가공된 20대로부터 유년시절의 와일드함을 천천히 끄집어내고 있었다. 당장은 소화시키기가 끔찍했지만 조금씩 시도했다. 그렇게 차츰 식당의 메뉴들에 도전했고 마살라에도 길들여질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린 시절처럼 마냥 철없이 굴거나 꿈만 꿀 수는 없는 나이였다. 그토록 기대하고 기다렸던 20대가 되었지만, 정작 청춘은 내 비위를 거스르기 시작했다. 정제되고 가공된 것들에 길들여지는 사이 유년시절의 와일드함은 차츰 지워져 갔다. 세상이 정해 놓은 길, 때로는 화려한 길만을 쫒으려 했던 편협한 서울살이는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밸런스를 완전히 놓쳐버린 나는 인도로 도망쳤다. 하지만 인도에서 ‘죽음’이라는 괘씸한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죽음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 아니었고 삶은 예상보다 더 강했다. 나는 편식을 멈추고 밥을 먹어야만 했다. 노동에 던져지고 세상의 불합리함을 배우는 것이 20대의 밥다운 밥이었음을, 머나먼 인도 땅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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