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resa Oct 07. 2021

1리터의 갈증


땀구멍의 크기는 절대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이 미세하고 촘촘한 구멍들은 의외로 굉장히 많은 수분을 배출하는데, 인도의 뙤약볕 아래서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장담컨대, 온몸에 수분이 빠져나가는 데에 단 몇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고구마나 무 말랭이를 순식간에 몇 포대는 만들 수도 있다. 정말 더운데 얼마나 더운지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더위였다.


내가 여행을 떠난 것이 9월이었다. 하지만 인도는 한 해 내내 이글거리는 땅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북인도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을 간과했다. 추위를 유독 잘 타는 체질 탓에 울이 섞인 셔츠를 챙겨 갔고 기모 후드티며 짱짱한 스카프까지 챙겼다. 늘 그렇듯 정신없이 해치워 버린 일들은 두 배의 난처함으로 돌아오는 법. 동절기용 옷가지들은 나의 체온을 유지해 주기는 커녕 되려 열 배출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울 셔츠가 아니라 반팔 면 티셔츠를 좀 더 넉넉히 챙겼어야 했다.


빠하르 간지에 저녁 무렵 도착하다 보니 첫날엔 인도의 더위를 충분히 실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튿날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얘기가 달랐다. 뽀송하게 세탁된 셔츠가 축축하게 땀을 머금는 데에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얼굴 가득 두툼하게 발랐던 선크림 마저 금세 흘러내렸다. 화학 기름으로 미끌거리는 피부 덕분에 "한국인들은 피부가 좋군요!"라는 칭찬을 덤으로 받기는 했지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얼음이 아직 녹지 않은 생수통을 치켜들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 마셨다. 생수통 주둥이에 혓바닥을 대고 날름거리며 나는 무엇을 위해 인도로 왔을까? 하고 생각했다. 내 앞에 놓인 현실에 지레 겁을 먹고 <인도에서 나의 마지막을>이라는 뻔뻔한 슬로건을 내걸며 떠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정말 멋지게 죽고 싶은 기분이었을까? 하루는 물에, 하루는 밥에, 하루는 시간에 간절해지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배부른 칭얼거림에 지나지 않았다. 굳이 시간을 내어 죽을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말라죽겠다며 하소연하는 날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뙤약볕이 좋았던 건 옷을 바싹하게 말려주는 것 말고는 당최 없었으니까.

1L의 물을 섭취하면 곧이어 1L의 땀이 땀구멍에서 흘러나왔다. 밑 빠진 둑처럼 부족한 수분을 보충하느라 나는 물먹는 하마가 되어갔다. 하지만 땀구멍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타임 초과근무를 해준 덕분에 소변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건 좀 편하긴 했다. 관광지에 따라서는 생수를 구하기 어려운 외진 곳도 있었으므로 어디든 슈퍼가 보이면 달려가 제일 먼저 얼린 생수를, 얼린 생수가 없다면 그냥 생수를 구매했다. 개인적 취향이긴 하지만 그냥 생수는 마실 것이 못되었다. 이 역시 뙤약볕에 한 시간이면 따뜻한 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더울 때 따뜻한 물을 섭취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건 어느 누구도 시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다시 생각해봐도 무지막지한 더위였다.


그래서 물을 마시지 못한 채로 하염없이 걸어야  때면 세상 까칠하고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밥을 제때 먹지 못해 예민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심한 갈증은 웅덩이에 고인 물도 떠먹을 용기를 만들어 주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의 그럴 뻔은 했지만. 사람은 뭐든 부족해지면 예민해지고, 그것이 점점 심화될  죽겠다! 헛소리를 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무엇이든 적당히 충족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축복이 아닐까. 유래 없는 폭염을 맞이했던 올해의 서울도 2008 9월의 인도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이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정확히 인도의 뙤약볕에  무모함의 온도를 더해야 하기 때문에. 청춘의 갈증은 촘촘한 땀구멍 사이로 빠져나오1L 물과 같아서, ‘채운다 거의 불가능했다.



이전 04화 코끼리, 소에 대한 오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