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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Jul 18. 2021

크리스마스 케이크


또래 남자애들이 머리를 바짝 깎고 하나  캠퍼스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을 의 일이다.   틈이 어색할 새도 없이 복학생 선배들이 과실을 매우기 시작했다. 변화한 풍경은 속도가 느린 나를 마구  떠밀었고, 억울하게 어색하게 풍경 사이에 끼여 버린  그럭저럭 견뎌 내야했다. 스물 둘이었고  놓은 것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두어   작은 자취방 꼬마전구들을 비추다 사라지고 나니 어느덧 졸업을 앞둔 스물 넷이었다. 나는 슬슬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되기 시작했다. 스물다섯을 넘기면 여자로서 값어치가 완전히 떨어지는.


취업과 성공과 결혼이라는 기성세대의 칼날이 날아와 나의 왼쪽 가슴을 찌르도록 그저 내버려 두었다. 무기력이 나를 지배했다. 졸업과 동시에 바라던 꿈은 좌절되었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취업이든 결혼이든, 뭐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스물다섯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스물다섯 안에 어서 팔려야만 하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케이크. 나는 그것을 뭉개어 버렸다. 아주 조각을 내버렸다. 첫 직장에 열렬히 실패해 주었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원하지 않던 일을 했고, 그래서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대로 퇴사를 했다. 케이크를 완전히 박살 내버린거다. 가진 것도 해낸 것도 없이. 꽤 통쾌했지만 왼쪽 가슴은 여전히 아팠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스물다섯이 되기 전에 죽어버리는 것.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상실감은 내가 나를 포기하도록 부추겼다. 밝고 긍정적인 생각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깊은 우울 속에서 내가 길어 올릴 수 있는 최대의 기쁨은 멋진 죽음뿐이었다. 세상은 풍요로 넘쳤지만 그 안에 내 것은 없었고, 좁은 케이지에 갇혀 떨어지는 모이를 받아먹으며 그것에 ‘행복’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열정을 가동할 화력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불태워야 했다. 나는 시퍼렇게 젊은 청춘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나를 ‘패배자’라 부를게 뻔했다.


하지만 젊다는 것 마저 내겐 사치였다. 그 시간이 싫었다. 내가 싫었고 가난이 원망스러웠다. 바다가 되고 싶었고 때로는 구름이고 싶었다. 지구를 움직이는 커다란 힘이고 싶었다. 켜켜이 쌓인 먼지나 백사장 가장 밑바닥의 모래알은 어떨까? 꽤나 멋진 생각이었다. 그런 것들은 잃을 것이 없을 테지. 나는 꿈을 완전히 망쳐버린 후론 더 이상 방향키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포류 하기로 했다. 고장이 난 것이다. 여름 내내 뜨겁게 달구어져 있던 홍대의 어느 카페에서 대학동기를 만났다. 나는 밝게 웃고 있었다. 마음은 컴컴하게 불을 꺼둔 채. 아직 취준생을 벗어나지 못한 그녀와 어떻게도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던 나의 대화. 그녀는 잠시 긴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인도.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땅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인도는 나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죽기 딱 좋은 장소. 마지막 월급을 모두 털어 곧바로 인도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오기였을까? 그녀를 향한 질투였을까? 어쨌든 바보 같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죽으러 가는 마당에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푸념을 했다. 표를 끊고 나니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스물 네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나는 그렇게 공항 리무진 버스 위에 올랐다. 얼떨떨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멋진 마지막이 있을까. 슬프기보다는 기쁜 마음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 무의미해서 죽음이 더욱 의미 있게 보였다. 마지막을 향해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나는 상실감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2008년 9월 10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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