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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Oct 09. 2021

쿠툽 미나르와 상상 공장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 속 벤 스틸러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상상하기를 끔찍하게 좋아한다. 상상만 하던 일들이 어느 날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의 상상이 월터처럼 멋지게 이루어지는 일이 좀 드믈기는 해도.


나의 상상공장은 여행지에서조차 아직 가본 적 없는 또 다른 여행지를 상상하게 한다. 대학 졸업여행으로 떠났던 상해에서 베트남을 떠올려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다녀온 영국에서는 독일을, 로마에서는 그리스를, 스페인에서는 파리를 상상했다. 그리고 인도의 쿠툽 미나르 앞에서 당시엔 가본 적 없던 로마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상상은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가상의 세계를 팝업 시킨다. 여행지에서는 주로 눈앞의 풍경이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친절한 문지기가 된다. 인도는 상상 공장을 가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무엇이 '인도다움'인지 감히 확언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풍경을 지니고 있는 것이 딱 인도스러운 특징이었다.


뙤약볕이 이글이글 내리쬐던 오후에 나는 쿠툽 미나르 아래  있었다.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주변을 하염없이 맴돌고 있었다. 어김없이 상상 공장에 파란 불이 들어왔고 ‘로마 쿠툽 미나르 위로 팝업 되었다. 나는 순식간에 제국의 원형 경기장 안으로 초대되었다. 붉은색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려 전쟁의 승리를 기리고 있던 인도인들의 다음 타깃은 로마였다. 포로 로마노를 중심으로 황금의 시대를 누리고 있던 로마인들은 또다시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해야 했다. 잔혹한 전쟁 장면들은 콜로세움 안에서 치러졌다.  기다란 탑을 보며 콜로세움을 떠올렸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콜로세움' '쿠툽 미나르' 정복하게 된다. 경기장 안엔 구경꾼들 대신  나라의 용병들이 팽팽히 대치하고 있었다. 영화 <글레디에이터>  막시무스가 몇만 명쯤 등장했을 것이다. 인도인도 로마인도 구분 없이 그냥 막시무스다. 곧이어 인도제국이 승리의 깃발을 꽂으며 콜로세움은 무너졌다. 인더스의 후예들은 로마로 향하는 내내 주변국들까지 전부 굴복시켰다. 가히 무시무시한 군사력이라 하겠다. 실크로드가 피로 물들고 역사의 족보가 한참 꼬여버릴 즈음 상상 공장은 가동을 멈추었다.


방금 막 상상한 것인데, 무너진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프리마돈나가 전쟁의 잔혹성에 대해 열창하는 그런 장면을 넣어 보는 것은 어떨까. 부끄럽지만 로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오페라와 콜로세움이 전부였던 시절이다. 지금도 아는 것이 거의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전보다 할 얘기가 훨씬 많아지기는 했다. 몇 년 전 실제로 로마를 여행하기도 했고, 경험은 무릇 상상보다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던져 주니까.


자취방 구석에 자리를 펴고 누워 하염없이 인도를 떠올려 본 날이 있다. 인도로 떠나 오기 전 며칠간은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상상 속엔 엄청나게 많은 코끼리들이 등장했다. 따사로운 태양볕과 아주 시원한 음료, 맛있는 음식들도 등장했다. 능숙한 자세로 낙타를 타고 느릿느릿 사막을 거니는 나의 모습과 석양이 물든 아름다운 바라나시도 보였다. 하지만 인도는 그 상상들을 모조리 뒤엎어 버렸다. 그런 곳이다. 전혀 예상한 적 없던 진귀한 풍경과 독특한 경험들을 내게 남겼다. 그리고 신이 이끄는 곳으로 걸으며 멍청하고 철이 덜 든 나를 유물처럼 발견해낼 수 있었다.


상상은 상상하기를 그만두면 그 지점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현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기에 더없이 잔혹하다. 그래서 나는 예나 지금이나 상상 속으로 자주 도망을 치는지도 모르겠다. 이럴 땐 상상 공장도 꽤나 유익한 것이다. 잠들기 전 눈을 감고 돈을 왕창 벌거나 마당이 100평쯤 되는 집, 작은 고양이를 기르거나 달이 비대하게 커지는 그런 상상들을 해보시라. 주식부자가 되는 상상도 꽤나 재미있을 듯 하다. 내가 집이 없지 주식이 없나? 우리의 상상도 어서 현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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