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쿠(Leo Ku, 古巨基, 고거기)는 창의적인 곡들로 홍콩에서 큰 사랑을 받은 남자가수이다. 가창 실력도 준수하며 외모도 출중하여 “발라드 왕자(情歌王子)”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1994년 데뷔하지만,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997년부터였다. 1997년 발표한 ‘이 밤을 즐겨요(歡樂今宵)’는 곧 헤어질 연인의 슬픈 마음을 노래한 곡으로 그의 가성 실력이 크게 돋보였다. 칸토 팝 가단에서 그처럼 가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가수는 거의 없었기에, 그는 이를 무기로 90년대 말 최고의 가수 가운데 한 명이 된다.
그는 당시의 흐름을 따라 빠르게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그는 중국 대륙에서 활동하며 드라마 “안개비 연가(情深深雨濛濛)”와 “황제의 딸 3 천상인간(還珠格格3之天上人間)”에 출연한다. 이를 통해 중화권 전역에 이름을 알린 그는 2003년 홍콩에 돌아와 가수 활동을 재개한다. 2004년 발표한 ‘사랑과 진심(愛與誠)’, 2006년 발표한 ‘너무 늦게 사랑했네요(愛得太遲)’는 모두 그 해 홍콩 최고의 곡이 되었다. 그는 기획에도 관심이 많아 2005년에는 홍콩의 역대 발라드 명곡을 10분 정도의 메들리로 엮은 ‘경가금곡(勁歌金曲)’을 발표해 큰 사랑을 받았으며 이어서 발표된 중국어 명곡들 버전, 댄스 명곡 버전 또한 흥행했다. 그는 2008년 이후로는 대륙과 홍콩을 오가며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2017년 레슬리 청에게 헌정하는 앨범 “Salute to Dear Leslie”를 발매하는 등 칸토 팝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보이고 있어 대중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미리암 영
미리암 영(Miriam Yeung, 楊千嬅, 양천화)은 음악과 영화, 방송을 모두 오가면서 크게 활약을 벌이고 있는 스타였다. 이에 사람들은 그녀를 “가후(歌后)”, “영후(影后)”, “시후(視后)” 등으로 불렀다. 어느 한 분야에서도 최고 수준의 실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미리암 영은 1995년 TVB 신인 발굴 대회를 통해 등장하여 1997년 데뷔했다.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1998년 발표한 ‘2번가여 안녕(再見二丁目)’부터였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와 가사에 담긴 동성애에 관한 은유로 큰 환영을 받았다. 이어 2000년에 발표한 앨범 “Play It Loud, Kiss Me Soft”가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앨범은 댄스 곡이 담긴 “Play It Loud”와 발라드가 담긴 “Kiss Me Soft”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Kiss Me Soft”에 실린 ‘소녀의 기도(少女的祈禱)’가 그녀의 커리어 사상 최초로 “십대경가금곡”에 선발된다.
흥행은 이어진다. 이어서 발표한 앨범 "Miriam"(2001)에서는 '자매(姊妹)', '내가 말하게 해준다면(假如讓我說下去)' 등이 큰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내가 말하게 해준다면'은 여전히 칸토팝 발라드의 고전으로 크게 사랑받고 있다. 그녀는 이듬해 자신의 이름과 같은 제목의 곡 ‘미리암 영(楊千嬅)’(2002)을 발표하여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하는데, 홍콩 대중은 그녀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 열광한다. 2003년 발표한 ‘내가 물병자리라서(可惜我是水甁座)’도 인기를 끌었으며 2004년 람젝이 작사한 ‘작은 도시, 큰 일(小城大事)’로 홍콩 최고 인기 여가수상을 수상한다. 같은 해 발표한 댄스 곡 ‘여기저기 키스를(處處吻)’은 아직도 중화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댄스 곡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말하게 해준다면' 뮤직비디오
최고의 지위에 오르자마자 그녀는 영화와 중국 방송에 출연하며 빠르게 중국 활동을 늘린다. 홍콩에서도 꾸준히 곡을 발표했는데, ‘열녀(烈女)’(2005), ‘달빛을 젓는 사람(撈月亮的人)’(2008), ‘원래 잘 지냈어(原來過得很快樂)’(2009) 모두 차트 1위에 올랐다. 2014년에는 ‘겨우 사랑을 만났네(好不容易遇見愛)’를 발표하여 10년만에 다시 홍콩 최고 인기 여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조이 융
조이 융(Joey Yung, 容祖兒, 용조아)은 왕페이(Faye Wong, 王菲/王靖雯, 왕비/왕정문)의 뒤를 이어 “여제(天后)”라는 호칭을 받은 발라드 가수이다. 그녀는 여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홍콩 발라드 최고의 여가수 자리를 지켰다.
조이 융은 1999년 EP “미지(未知)”로 등장했다. 제니퍼 페이지의 ‘Crush’(1998)를 번안한 동명의 타이틀 곡은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받아 바로 “십대경가금곡” 후보에 오르기까지 한다.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던 그녀는 2001년 첫사랑을 하는 소녀의 이미지로 ‘아픈 사랑(痛愛)’이라는 발라드 곡을 발표하는데, 이 곡의 성공으로 그녀는 발라드로 방향을 굳힌다. 그녀가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2003년 발표한 앨범 "나의 자랑(我的驕傲)"의 동명 타이틀 곡 덕이었다. 이 곡은 사랑의 힘을 통해 더 자신감을 얻고 위로 나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조이 융의 여린 목소리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같은 앨범에 수록되었던 '마음 담담하게(心淡)' 역시 칸토 팝 발라드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곡이다. 웡와이만이 작사한 "이 순간부터 봄바람과 가을비 날리는 그 시간을 세어보겠어요. 내가 그대를 좋아한 반년의 시간의 마음이 점점 담담해지는 게 미워요(由這一分鐘開始計起春風秋雨間。 恨我對你的半年時間慢慢變心淡。)"라는 가사가 특히 홍콩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마음 담담하게' 뮤직비디오
그녀는 이 곡의 인기에 힘입어 데뷔 4년 만에 모든 여가수를 이기고 최고의 지위에 올라서며 중국 대륙과 말레이시아에서도 콘서트를 연다. 이듬해 발표한 ‘16번째로 좋아하는 사람(16號愛人)’은 이 곡은 웡와이만이 작사한 곡으로 자신에게 관심이 식어가는 듯한 남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투정을 부리는 듯한 가사와 그녀의 목소리가 역시 잘 어울려 성공 가도를 이어간다. 대륙에서도 그녀의 인기가 상승하여 2005년 CCTV 새해 콘서트(春晩)에서 ‘나의 자랑’의 보통화 버전(날개를 흔드는 여자아이(揮着翅膀的女孩))을 부르게 된다. 자신감은 변화로 이어진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담아 부른 락 발라드 ‘노래할수록 강해져(越唱越強)’(2005), 소녀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한 발라드 ‘화려한 해후(華麗邂逅)’(2006)가 이때 발표된다. 이후 2010년대 초까지 어느 여가수도 그녀의 지위에 도전할 수 없었다. 중국의 고전 기담집 제목을 따와 사랑의 신비함을 노래한 ‘수신기(搜神記)’(2009)와 락 스타일 도전을 이어간 ‘공항(空港)’(2010) 등 발표하는 곡마다 홍콩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중국 예능에 본격적으로 출연한 2010년대 이후에도 그녀는 홍콩 최고의 여가수 지위에 오랫동안 머무른다.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홍콩인들의 마음에 들었으며 중국 활동 중에도 계속 광동어로 곡을 냈기 때문이다. 지금도 꾸준히 대륙과 홍콩을 오가는 그녀는, 여전히 홍콩인들에게 전설적인 여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