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동원 Apr 25. 2022

홍콩판 프로듀스 101의 대흥행

3부, 날줄, "전민조성" (1)

 2018년 첫 방영 이후 시즌을 거듭하여 제작되고 있는 홍콩 Viu TV의 오디션 프로그램 “전민조성”은 칸토 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유행한 “프로듀스 101”과 유사한 포맷이며 참가자들을 선별해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킨다. 첫 시즌에서 선발된 12명으로 MIRROR이 구성되어 2019년 데뷔했다. 한편 홍콩 시민들은 2019년 시위의 좌절과 2020년 코로나 대유행으로 좌절을 겪는데 이들은 새로이 떠오르는 MIRROR에 크게 열광했다. 이들이 홍콩의 첫 아이돌인 것도 아니며, 홍콩에서 K 팝을 접하기 어려웠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홍콩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칸토 팝에 새로움을 더하고 있는 날줄, “전민조성”과 MIRROR를 홍콩 사회와 칸토 팝의 맥락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2016년, 홍콩의 새로운 종합편성 채널 Viu TV가 등장했다. ATV가 해외(한국, 일본, 미국 등) 컨텐츠를 수입해 방영하던 케이블 채널들에게 밀려 폐업한 이듬해였다. Viu TV는 야심 차게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대거 제작하며 도전장을 내민다. 미국, 한국 등의 포맷을 따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중국에서 크게 떠오른 후난TV 등의 방송사가 주목을 얻기 위해 사용해온 방법이기도 했다. 라이벌끼리 여행하는 프로그램인 “모순을 안은 여행(跟住矛盾去旅行)”이나 엄마의 사랑을 강조한 요리 프로그램 “요리해봐! 우리 엄마를 바꾼 채(煮吧!換咗我阿媽)” 등은 프로그램들은 홍콩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다. 이어서 여러 나라의 오디션 프로그램, 특히 한국의 “프로듀스 101”을 참조하여 오디션 프로그램, “Good Night Show 전민조성(Good Night Show 全民造星, 이하 전민조성)”을 제작한다.   

  

(왼쪽) 한국 "프로듀스 101" 시즌 2(2017, Mnet), (오른쪽) 홍콩 "전민조성"(2018, Viu TV)

 2018년 7월 16일부터 방영된 “전민조성”은 10월 6일까지 평일 저녁 9시 25분부터 10시 30분까지 나누어 방영되었다. 12주, 60편이나 되는 방영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홍콩을 들썩이게 했다. “전민조성”은 최초의 오디션 프로그램도 아니며, 분량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매우 길었다. 그럼에도 “전민조성”은 어떻게 홍콩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는가.     


 첫째는 성장 서사였다. 비록 끼가 보이나 재능이 아직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연예인이 대스타로 성장하는 과정 전체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그들의 부족한 모습은 때로 보호 본능을 일으키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계기가 된다. 보호 본능과 동일시는 그들의 발전을 자신의 성취처럼 여기게 하며 뿌듯함까지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을 성장 서사라고 부른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이러한 서사를 아이돌 그룹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주 사용해왔던 것이다. 일본에서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그룹은 AKB48이었다. 이 그룹은 활동할 때마다 실력과 인기 등으로 순위를 정하여 활동 비중을 정했다. 대중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더욱 많이 활동하여 “성공”하기를 바라게 되었고, 그룹은 많은 열성 팬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의 SM, JYP 등 대형 기획사는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 시스템을 활용한다. 레드 벨벳(Red Belvet)과 트와이스(Twice)는 데뷔 전에 각각 SM Rookies와 SIXTEEN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씩 공개가 되었었다. 성장서사 활용의 정점은 TV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통해 I.O.I(2016)과 Wanna One(2017)이 데뷔한 것이었다. 방송을 통해 시청자는 여러 소속사의 연습생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시청자는 자신이 성장 서사를 함께하고 싶은 연습생을 선택하고, 응원했다. 이는 팬들의 열기가 되어 각 그룹 활동에도 큰 힘이 되었다. "전민조성"은 일본과 한국(특히 프로듀스 101)의 경험을 상당히 수용하여 제작되었다. 99인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에서는 50인, 40인, 30인, 20인, 10인으로 좁혀가며 스타 지망생들의 모습을 비추었다. 단순히 각 단계를 넘어서는 것 역시 성장이지만, 실력적으로도 성장한 결실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시작할 때 촌스러웠던 외모가 스타일링으로 어느 정도 다듬어지기도 했으며, 노래나 춤에서 큰 발전을 보인 참가자들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성장 서사가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멤버 컹토

 둘째로 리얼리티 쇼의 성격을 가미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동안 홍콩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평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전민조성”에서 경연을 통한 평가는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기 위한 한 라운드의 마무리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참가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경연에서 누군가가 떨어지는 까닭은, 리얼리티 쇼에서 탈락자가 발생하는 것과 같았다. 더 큰 가능성이 있는 참가자에게 더 많은 이야기 기회, 즉 분량을 제공해야 했다. Viu TV가 리얼리티 쇼로 성공한 방송사이며 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 또한 리얼리티 쇼를 목표로 이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밝힌 점(다음 챕터의 인터뷰 참고)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그 결과 뒤로 갈수록 개별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미지나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보일 기회가 자연히 늘었으며 프로그램 후반부에 이르면 에피소드를 통해 남은 참가자들의 이미지나 성격이 선명해졌다. 에피소드는 프로그램에 오락성도 더한다. 프로그램의 제작자와 인기 참가자인 이안 찬(Ian Chan, 陳卓賢, 진탁현)이 숙소 규율을 두고 갈등을 빚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었고 코믹 캐릭터인 팻 보이(Fat Boy, 肥仔, 비자)의 여러 행동은 재미를 주었다. 출중한 외모로 처음부터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던 컹토(Keung To, 姜濤, 강도)는 청소년기에 고도비만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하여 감탄과 감동을 자아냈다. 이와 같은 극적인 요소들은 평일 밤마다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홍콩인들을 끌어들였다.     


 셋째는 세계적 수준을 추구했다는 것이었다. 칸토 팝은 한때 세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수준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쇠퇴하여 홍콩인들조차 찾지 않는 음악이 되었다. 이제 세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은 어디인가? 한국의 K 팝이다. 홍콩 젊은 층이 선호하는 것도 K 팝이다. 이들은 한국 스타일을 추구하고 선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을 어렵게 한다. “전민조성”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홍콩 대중이 자긍심을 다시 펼칠 수 있게 도왔다. 평가자들은 세계적 수준을 요구하며 참가자들에게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홍콩의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덕담 위주였던 것과 정 반대다. 한국 아이돌을 떠올리게 하는 엄격한 규율과 많은 양의 훈련도 홍콩에서는 새로웠다. 마침 같은 때 한국의 블랙핑크(BLACKPINK)와 방탄소년단(BTS)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는데, 홍콩 대중은 이러한 K 팝 스타들과 같은 방식으로 훈련한다면 홍콩도 세계 최고의 스타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한편, 최후의 10인이 구성되자 미국에서 전지 훈련을 진행한 것도 이와 같은 기대를 키웠다. 이들은 레이디 가가, 마이클 잭슨 등의 댄서로 활동했던 안무가에게 직접 춤 수업을 들었으며 미국 기획사에서 모의 면접을 보기도 했다. 중국계 배우를 만나 아시아 연예인의 세계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미국에서 버스킹을 진행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를 꿈꾸는 모습은 현재의 스타들이 세계로 나아가지 않고 중국으로 들어가던 모습과 대비되는데, 홍콩인은 이 대비를 통해 과거의 영광에 대한 긍지와 회복의 기대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전지훈련 장면, (왼쪽) 중국계 배우 애니타 랴오와의 만남, (오른쪽) 댄스 훈련

 넷째는 직접투표의 기회이다. 홍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청자 투표라는 방식이 사용된 것이 이번이 아주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이름과 투표 앞에 붙은 “全民”(전국민 혹은 전 시민이라는 뜻) 두 글자는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2018년의 홍콩 시민들은 이미 정치적, 역사적 소용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홍콩인들의 일명 우산 혁명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였다. 2016년 홍콩 입법회 선거에서는 민주파 의원이 다수 당선되었으나 홍콩 정부는 이들을 자격박탈(DQ)이라는 방식으로 쫓아냈다. 2017년에는 예정대로 간선제로 행정장관으로 캐리 람(Carrie Lam, 林鄭月娥, 임정월아)이 선출되었다. 2014년 우산 혁명 진압의 주범이었던 그녀는 시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777표를 받아 당선되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2016년 촛불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끌어냈고, 대만에서는 2014년 태양화 시위로 형성된 시대정신이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통, 입법회 동시선거로 완전한 승리를 이뤘다. 홍콩인들의 참여와 표현에 대한 욕구는 이 프로그램에 조금씩 쏟아졌다. 문화적 자극 속에 정치에 대한 열망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것이다.     


"DQ 풍조가 만연하다"라는 제목의 기사. 투표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홍콩 정부와, 투표의 가치를 다시 심어주는 방송의 대비는 방송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민조성”은 홍콩 역대 오디션 사상 최고의 화제성을 거두며 끝났다. Viu TV는 이들을 앞으로 어떤 식으로 데뷔시킬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프로그램을 준비했을 정도로, 프로그램의 이와 같은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대성공이 홍콩 대중음악 부흥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꿈이나 꿨을까. 현실은 꿈보다 놀라웠다.

이전 11화 칸토 팝의 새로운 흐름 (2) 다양해지는 형태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