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나 웡(왕완지)과 파코 차우(주백호)의 성공은 2010년대 칸토 팝 음악계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음반사 소속의 유명하지 않은 싱어송라이터 및 작곡가들이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새로운 싱어송라이터들이 음반사와 계약하기도 용이해졌다. 홍콩 대중 또한 이들을 환영했다. 2000년대 초에 데뷔한 샤메인 퐁(Charmaine Fong, 方皓玟, 방호민)과 에만 람(Eman Lam, 林二汶, 임이문)은 활동 10년이 다 되어가던 2010년에 드디어 자신의 곡을 차트 1위에 올리는 데 성공한다. 게다가 작곡자들이 점차 기회를 얻어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하기도 한다.
AGA와 테렌스 람
2013년에는 작곡가로 활동하던 AGA(Agatha Kong, 江海迦, 강해가)가 무대로 나섰다. 그녀는 2012년부터 하켄 리, 스테파니 쳉, 피오나 싯 등 유명 가수들에게 곡을 제공했는데, 그 중 스테파니 쳉의 ‘오류(第五類)’가 음악 방송 1위에 오르며 능력을 인정받아 유니버설 음반에서 활동하게 된다. 본인이 부른 첫 곡인 ‘헬로(哈囉)’(2013)는 발라드 풍의 곡에 “Hello”라는 소리를 계속 에코로 삽입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홍콩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어서 발표한 ‘一’(2014)과 ‘Superman’(2015), ‘3AM’(2017), ‘무기한(無期)’(2018) 등은 모두 발표 즉시 각종 차트의 1위를 기록하며 크게 인기를 끌었다. 2019년에는 또 한 명의 작곡가 테런스 람(Terance Lam, 林家謙, 임가겸)도 싱어송라이터로 등장한다. 그는 조이 융, 이슨 찬, 힌스 청 등 수많은 홍콩 인기가수들에게 오랜 기간 곡을 제공했던 이로 첫 곡 ‘다음 분(下一位前度)’(2019)부터 여러 차트 1위에 오른다. 그는 데뷔 이전 작사가 람젝과 오랜 기간 함께 작품을 해왔는데, 그가 데뷔하자 람젝은 그를 위해 가사를 제공하였다. 둘의 곡과 가사는 함께 했던 이력을 증명하듯 아주 잘 어우러졌으며 테런스 람의 잉기하듯 나긋한 목소리는 람젝의 문학적 가사를 제공하기에 적합했다. 대중은 AGA와 테런스 람 두 천재를 환영했다. 2020년, AGA는 “질타” 최고 인기 여가수상과 싱어송라이터상을 석권하는 진기록을 내기도 한다. 이는 그녀가 이 해에 발표했던 노래 ‘See You Next Time’의 주제가 ‘위로’였는데, 이는 당시 홍콩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필 람의 '높은 산, 낮은 골짜기'
파코 차우가 싱어송라이터 사상 최초로 최고의 남가수 상을 받았던 2014년은 홍콩인들의 “우산 혁명”이 실패로 끝난 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홍콩의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를 통해 위로받기를 원했다. 사랑 노래가 주였던 전통적인 칸토 팝 발라드보다는 위로의 내용이 담긴 노래를 찾았다. 삶과 위로를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곡이 큰 주목을 받았다. 이에 필 람(Phil Lam, 林奕匡, 임혁굉) ‘높은 산, 낮은 골짜기(高山低谷)’(2014)와 샤메인 퐁의 ‘너는 너 자신의 전설이야(你是你本身的傳奇)’(2014)가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높은 산, 낮은 골짜기’는 유튜브에 공식 계정을 통해 업로드된 칸토 팝 음악 가운데 최고 조회수라는 기록을 얻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특별한 영상 없이 필 람의 사진 한 장 위로 가사만 지나가는 이 오디오 영상은 2410만(2022년 3월 17일 기준)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홍콩 인구의 3배를 넘는 수이다. 홍콩의 상황이 보안법, 코로나-19 등으로 나날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계속하여 이와 같은 위로를 원했고, 싱어송라이터들은 노래로 답하였다. 칸토 팝이 홍콩 시민들과 더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싱어송라이팅 열풍은 주류 음악을 중심으로만 전개되던 칸토 팝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다양한 음악적 경향이 존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관심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에 Beyond의 리더 웡가거이(黃家駒, 황가구) 사망(1993) 이후 방송 및 음반사와 거리가 멀었던 밴드들이 대거 주류 음악의 무대에 들어선다. 이들은 결성하고서도 첫 앨범을 내기 어려웠었는데, 2003년 결성된 디어 제인(Dear Jane)은 2006년, 2005년 결성된 러버 밴드(Rubber Band)는 2008년, 2006년 결성된 슈퍼모먼트(Super Moment)는 2010년에야 겨우 음반사와의 계약을 통해 첫 앨범을 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러버밴드의 대표곡, '디스커버리 호'
밴드들은 어렵게 얻은 주목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다양한 악기와 육성의 조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밴드 음악의 이점을 잘 살린 명곡들이 쏟아졌다. 디어 제인의 ‘말하지 말아요(別說話)’(2009), ‘Rising Star’(2011), 러버 밴드의 ‘아폴로(阿波羅)’(2009)와 ‘디스커버리 호(發現號)’(2009), 슈퍼모먼트의 ‘지난 뒤(過後)’(2012) 등이 그러한 곡인데, 특히 러버 밴드의 ‘디스커버리 호’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가사로 홍콩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한 종류의 락 음악에 고정되지 않았다. 특히 디어 제인의 경우 락 발라드 분야로 옮겨가며 많은 걸출한 작품을 발표했는데, ‘차라리 그때 만나지 말았더라면(寧願當初不相見)’(2018), ‘2084’(2019), ‘은하수리원(銀河修理員)’(2020) 등이 수작으로 꼽힌다.
디어 제인의 ‘사람들은 날기에 알맞지 않죠’, 뮤직비디오에서 질병과 격리라는 디스토피아는 사랑과 신기술(드론-물질)로 극복되고 있다. 오늘날 홍콩에게 필요한 물질은 무엇일까,
2020년대에 들자, 이들 역시 위로가 필요하던 홍콩인들과 소통하는 곡들을 발표했다. 디어 제인의 ‘사람들은 날기에 알맞지 않죠(人類不宜飛行)’(2021)나 슈퍼모먼트의 ‘같이 잠들어요(同眠)’(2021) 등과 같이 사랑의 힘으로 시대의 어려움을 넘어서자는 은유적인 곡이 있는가 하면 반면, 러버밴드의 직설적인 노래들도 있었다. 여러모로 어려운 시절을 함께 이겨내자는 의미의 곡 ‘어떤 독이라도 뚫고 들어올 수 없어(百毒不侵)’(2020)와 이민으로 인한 사람들의 이별이 늘어난 시대상황을 담은 곡 ‘Ciao’(2021)가 그러한 곡이다. 표현의 정도보다는 음악이 자신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홍콩인들에겐 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전설적인 보컬 그룹 C All Star도 이 시기에 등장한다. 화성 음악(아카펠라) 그룹을 만들어보겠다는 한 소형 기획사의 발상으로 시작된 이 그룹은 시도되지 않은 길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2009년 데뷔한 이들은 버스킹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았으며 2010년 발표한 발라드 ‘하늘 사다리(天梯)’로 대중을 매료시켰다. 이 곡이 발라드의 홍수 속에서 홍콩 대중을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추구한 화성적 아름다움 덕이었다. 그동안 남자 가수들끼리의 듀엣은 종종 있었으나 그들 대부분이 화음이 맞지 않는 곡으로 차례를 나누어 서로 번갈아 부르는 노래였다. 칸토 팝에서 여러 남성 성부가 어우러지는 것은 볼 수 없던 가창 스타일이었다. ‘이 세상은 음악의 식민지(音樂植民地)’(2013), ‘무정한 노래(薄情歌)’(2013), ‘날아가는 시간(時日如飛)’(2014), ‘ 30년 차 실연의 프로(專業失戀30年)’(2016), ‘한눈에 반하다(一刻戀上)’(2017) 등 많은 곡이 오랜 기간 홍콩인의 사랑을 받았던 바탕에는 그들의 참신함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2017년을 끝으로 각자 활동에 나섰으나, 홍콩인들이 음악에 위로를 구하던 2021년, ‘남겨진 사람(留下來的人)’으로 4년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다. 많은 사람이 이민을 떠나는 상황을 담은 이 곡은 같은 주제를 다룬 러버밴드의 ‘Ciao’처럼 홍콩인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선사했다.
C All Star의 '남겨진 사람', 뮤직비디오 속 마스크는 홍콩의 요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싱어송라이터와 밴드, 보컬 그룹 등의 활동을 통해 솔로 가수의 발라드만으로 구성되었던 칸토 팝은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홍콩인, 홍콩 대중을 떠나지 않으며 그들과 끊임없이 관계 맺는다는 것이 새롭게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다양성과 지속적 관계, 이는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는 K 팝 스타일을 추구한 홍콩 보이 그룹 MIRROR의 대성공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