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와 밴드에는 왠지 앞에 ‘인디’라는 두 글자가 붙어야 할 것 같다. 분명 그들 가운데 대형 음반사와 함께 활동하는 이들이 있고(홍콩에서는 대부분이 워너, 소니, 유니버설 등 세계적 음반사 소속이다) 주류 팝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음악적 경향을 보이지 않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 둘은 왠지, 사회 구조 앞에서 변혁적이고, 전위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홍콩에서는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이는 홍콩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이었던 웡이우멩(黃耀明, 황요명)이 최초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스타라는 것이나, 뤄다여우(Lo Ta-yu, 羅大佑, 나대우) 등이 정치 풍자적인 곡을 썼던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음악이 가지는 구조와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분업을 기초로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작곡가와 작사가, 편곡자가 따로 있으며 반주는 악사들이 녹음하고, 이를 가수가 노래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누군가가 녹음한 파일에 맞추어 외모가 뛰어난 이가 가수의 역할을 연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싱어송라이터는 어떤가? 대부분의 작업을 자신이 직접 한다. 분업이라는 자본주의의 생산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마르크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분업으로 인한 소외를 거부하는 예술가로 보인다. 밴드도 마찬가지이다. 보컬과 각 악기를 만지는 반주자는 음악(생산물)의 내용에 따라 교체될 수 있는 조합이다. 이 조합이 고정되고 한 종류의 음악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축출한 숙련자들의 조합인 길드와 닮았다. 이는 한편으로 상업적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며, 분업 체계보다 좋은 결과물을 낸다는 담보도 없다.
그렇기에 싱어송라이터들이나 밴드들은 최대의 상업 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상업적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홍콩에서 주목받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에게서 홍콩이 상업도시라는 정체성과 홍콩 문화의 정체성이 점차 분리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점차 싱어송라이터들에게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또한 2014년 이후 사람들이 점차 다시 홍콩 정체성과 홍콩 문화에 관심을 가지며, 주목받지 못하던 음악들이 주목받게 된다. 싱어송라이터와 밴드는 분업 위주의 음악과 생산방식이 다르기에, 결과물에서 전위를 시도할 수 있는데, 이 점이 점차 고루해지는 2010년대 칸토 팝 세계에 변화를 점진적으로 가져오고자 했다.
이바나 웡
이바나 웡(Ivana Wong, 王菀之, 왕완지)은 홍콩 싱어송라이터들의 본격적 등장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그녀 이전의 싱어송라이터들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였다. 각종 음악 시상식에서는 이들을 위해 싱어송라이터 상을 따로 만들었지만, 자신의 앨범에 한두 곡 정도 작곡이나 작사를 한 멀티테이너 형 스타를 위한 상이 되었다. “질타” 연말 시상식에서 1998년과 1999년에 앤디 라우(Andy Lau, 劉德華, 유덕화)가, 2000년에 니콜라스 제(사정봉)가 이 상을 수상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바나 웡은 순수하게 싱어송라이팅만으로 이 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가수이다. 2005년, 그녀는 전곡을 자신이 작사, 작곡한 앨범 두 장을 잇달아 발표하며 홍콩 가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가녀리고 몽환적인 목소리도 홍콩인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1집 “Ivana” 수록곡 ‘1초의 감동(一秒感動)’과 2집 “I Love My Name” 수록곡 ‘번개(雷電)’가 각각 홍콩 음악방송 주간 3위와 2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3집 “시정·화의(詩情·畫意)”부터는 일부 곡에 그녀를 눈여겨본 작사가 람젝의 가사가 더해지기도 했는데, 이는 그녀의 색채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어서 2007년 발표한 곡, ‘솔직히 말하자면(真心話)’이 처음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질타” 연말 시상식에서 싱어송라이터 상을 수상한다.
'달빛이 말해요'(2009) 뮤직비디오
이듬해의 광둥어 4집 앨범, “Infinity Journey”는 판매량 100만장을 넘겼다. 홍콩 싱어송라이터 역사상 최초의 골든 디스크 기록이었다. 5집 “On Wings of Time(2009)”에는 람젝 외에도 웡와이만이 작사에 참여하여 앨범 전 곡의 가사에 문학적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람젝이 작사한 ‘빅벤(大笨鐘)’, 웡와이만이 작사한 ‘작은 마무리(小團圓)’, 그리고 본인이 작사한 ‘달빛이 말해요(月亮說)’ 모두 각자의 개성을 안은 채 어우러져 그녀의 색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후에도 ‘물. 백합(水.百合)’(2010), ‘여백(留白)’(2013) 등으로 큰 인기를 끌어 “질타”에서 싱어송라이터 상을 여러 차례 더 받았으며(2009년, 2010년, 2014년) 2022년 현재까지도 활동 중이다. 그녀는 다양한 악기 구성을 사용하고, 불협화음을 곡에서 자주 사용했는데, 이는 이슨 찬, Jer 등 홍콩 가수들의 노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파코 차우
이바나 웡을 뒤이어 등장한 파코 차우(Pakho Chau, 周栢豪, 주백호)는 싱어송라이터 중 홍콩 최고의 가수 지위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수려한 외모, 건조하고 남성적인 목소리, 스튜디오의 말단직원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스토리, 그리고 작곡 능력 등,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요소는 아주 많았다. 파코 차우는 2007년, 자신이 전곡을 작사한 앨범 “Beginning”으로 데뷔한다. 그는 잘생긴 외모로 더 주목받았는데, 그 덕으로 타이틀 곡 ‘같은 하늘(同天空)’ 역시 여러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듬해 발표한 “Continue”는 크게 히트하는데 스테파니 쳉(Stephanie Cheng, 鄭融, 정융)과의 듀엣곡인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一事無成)’와 ‘큰 바람(宏願)’이 모두 차트 1위를 기록한다.
2010년에 발표한 앨범 “Remembrance”는 그를 이슨 찬이나 제이슨 찬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인기를 가져다준다. 이 앨범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두 곡은 ‘나는 그대에게 기억되어선 안 돼요(我不要被你記住)’와 ‘거지 왕자(乞丐王子)’인데, 이 앨범에서는 ‘나는 그대에게 기억되어선 안 돼요’만이 파코 차우가 직접 작곡한 곡이었다. 그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기획사는 그가 작곡보다 연예활동에 나서길 바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후 발매한 “본체분열(本体分裂)”(2011), “Get Well Soon”(2012), “동행(同行)”(2014), “WHITE”(2015) 등 모든 앨범에는 그가 직접 작곡한 곡이 한 곡 이상 수록되었다. 파코 차우의 인기는 제이슨 찬과 힌스 청의 부진 속에 빠르게 상승했고 “질타” 연말 시상식에서 2013년엔 싱어송라이터상, 2014년엔 최고 남가수상을 수상한다.
그는 이바나 웡처럼 자신의 음악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기보단 칸토 팝 발라드 계열에 놓인 곡을 만들고, 불렀으며 이전의 홍콩 멀티테이너 스타들과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앨범 수록 곡 중 자신이 작곡한 곡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도 그가 여전히 싱어송라이터라고 보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그는 싱어송라이터 역시 홍콩 최고의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를 통해 다른 여러 싱어송라이터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싱어송라이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