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by 장동원
시골 마을 어귀에는 장승 둘이 항상 서 있었다. 관모 쓴 천하대장군과 비녀를 꽂은 지하여장군. 나는 장승 앞을 지나칠 때면 그들의 무섭게 일그러진 표정이 항상 두려웠다. 왜 그리 무서운 얼굴들을 하고 있는지 불만이었다.
초등학교 사회시간이었나, 교과서에서 장승의 기능을 배웠다. 장승은 마을 어귀에 세워져서 마을로 나쁜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주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나쁜 귀신이란 단순히 일을 일으키는 귀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절,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던 역병,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도둑이며 강간범이며 그보다 더더욱 사람 같지 않은 탐관오리까지. 마을을 해칠 수 있는 것들로부터 주민을 지켜주기 위해 하고 있는 험상궂은 얼굴이기에 무섭기보단 고맙고 안정감을 주는 존재였다.
장승의 주술적 기능을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안정감을 주었을 것이다. 장승은 마을 어귀, 마을로 돌아오는 곳에 우뚝 서 있다. 마을 밖 먼 곳으로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그곳에 장승이 의연히 서 있다는 사실만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까.
나의 마을을 떠나 먼 길을 다녀와야 하는 때가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첫 달, 이제는 나도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과외 알바로 돈을 꼭 벌고 싶었다. 나도 이제 나름 어른이니, 집에서 그저 얻어먹고 살고 싶진 않았다.
쉽게 구해질 줄 알았다. 나름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학의 학생이라는 신분도 얻었겠다. 여기저기 아는 고등학생도 많겠다. 가까운 곳에서 잘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정말 몰랐다. 우리 대학 학생은 굉장히 많았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1학년 신입생이었다. 또 과외선생으로 다들 여선생을 더 좋아하는 것이며, 남자라도 군필자를 구했다. 미필 남자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특목고 출신이라거나 공대생인 수학 강사를 원하지 나 같은 인문대생 국어 강사를 원하지 않았다. 과외가 구해지지 않는 것보다도 그게 앞으로 나를 따라다닐 현실이라고 생각되었다. 정말, 정말 슬펐다.
어렵게 어렵게, 첫 학생이 구해진 곳은 야탑이었다. 서울 밖.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학교에서 야탑 학생 집까지 한 시간 반, 야탑에서 과외를 마치고 집까지 또 한 시간 조금 넘게. 두 시간 수업도 있으니 사실상 다섯 시간 일하는 셈이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학생이었다. 공부를 이제 막 해야겠는데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며,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던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그 학생과 같이 공부하며 문학 공부도 다시 하게 되고 나도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매일 집에 들어오면 자정 무렵. 다음 날 첫 수업이 12시 반에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야탑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9301번 광역버스를 타야 했다. 야탑 지나 판교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집까지 오는 길, 몸은 피곤하건만 잠에 들지 못했다. 집을 지나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과 해야 할 과제와 이런저런 걱정들. 무엇보다도 아직 나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이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 길에서 곤한 나를 달래주는 장승이 있었다. 차창 밖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이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경물 속에서도 확실하게 보이는 건물이었다. 현대기아차 사옥은 확실히 여기가 서울이라는 지표 아니겠나. 이 건물을 지나면 나의 집, 서울이고, 나의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비춰보았다.
내가 현대 기아차 그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곤한 몸을 앉혀 돌아오는 길에 우뚝 서있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위안이었다. 내가 돌아와 몸을 뉘어야 할 이유인 그 사람들 대부분도 그 건물과 같았을 것이다.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기는커녕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멀리 나갔다 오는 지조차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듯이, 내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저 대기업의 사옥도 나를 달래는 마음속 장승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