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자랑, 동물 자랑, 여행 자랑은 하는 거 아니야.”
인생 선배 중 하나인 U의 지론이었다. 맞는 말 같았다. 실제로 여행의 여 자를 꺼낼 때부터 ‘교사는 방학 있어서 좋겠다’는 비아냥거림만 듣지 않던가. 여행썰은 속으로만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나 혼자 좋았음 됐지 뭐.
머쓱하게도, 4년 만에 생각을 바꿨다. 한낱 인간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급할 땐 다리를 배배 꼬며 제발 고양이 화장실이라도..! 해놓고는 볼 일이 끝나면 냄새가 구리다, 휴지가 밖에 있어서 불편하다, 등등 불평을 늘어놓는 게 사람이다. 초심 유지가 불가능에 가까운 인간적인 존재들이다.
여행을 하다가 지금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두바이의 장엄한 분수쇼부터 고추털과 생리혈이 적나라하게 올려져 있던 싸구려 모텔 이불에 이르기까지 배운 것도 느낀 바도 많았다. 이렇게 강렬한 경험이라면 평생 기억하겠다 싶었는데 인간이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인종차별을 당해 이를 갈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던 결심은 온데간데없다. 택시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나를 태워 준 주인집 아저씨가 너무도 고마워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 소중한 추억들이 희미해지다가 못해 스러지는데도 눈치조차 못 챌 것 같아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뇌에서 영영 떠나버리더라도 글이라는 외장 하드에는 남아있을 테니까. 하다못해 글을 쓴다는 행동 덕에 복습이라도 되겠지.
이래놓고 최근 여행 중 가장 강렬했던 기억으로 시작해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사자와 펭귄을 제치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라이언 헤드의 추억이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은 얼핏 보면 유럽과 흡사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슬픈 일이다. 식민 지배 때문에 그리된 것이니). 서구 양식의 건축물들과 영어가 즐비한 거리를 걷다 보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온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케이프타운은 여타의 유럽 나라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테이블 마운틴이었다. 부피가 있는 산(사실 산이라기보다 바위 무더기에 가깝긴 하지만)인 데다가 딱히 높은 빌딩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테이블 마운틴은 도시 어딜 가든 보였다. 테이블 마운틴은 공기가 맑은 나라 특유의 눈부시게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아, 내가 아프리카에 있다니’ 하는 감동을 시도 때도 없이 선사해주곤 했다.
그런 테이블 마운틴이니 관광객 입장에서 그곳에 올라가고 싶은 건 당연지사다. 의욕 넘치게 테이블 마운틴으로 향했으나, 역시 인생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매력이다. 케이블카가 공사를 하는 바람에 주변 도로가 모두 막혀 있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차 없는 도로를 꾸역꾸역 걷고 있는데 거기서 만난 현지인 J에게 라이언 헤드를 추천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산을 한두 번 타 보나. 북한산보다도 낮은데 이 정도쯤이야 봉우리지. 현지 친구가 전날 비가 와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비가 오늘 온 것도 아닌데 뭘. 산을 오르내리는데 6시간이 걸린다고? 테이블 마운틴까지 돌면 열두 시간이 걸리겠네. 그렇게 500ml 생수 한 통만을 손에 든 채 라이언 헤드로 향했다.
자그마한 노란 꽃들이 바람을 받을 때마다 조잘조잘 속삭이듯 흔들거렸다. 눈에 걸리적거리는 구조물 하나 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잘 어울리는 정경이었다. 제주도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꼬불길을 신나게 걸었다. 이 정도야 하루 종일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돌무더기 구간이 등장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산의 겉 부분을 사과껍질 깎듯 빙빙 돌아 올라가야 했는데 그 통로가 굉장히 좁았다. 몸을 뒤로 기울인 채 바위를 얼싸안으며 게걸음으로 산을 올라야 했다. 원래도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편인지라 고농도 아찔함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베트남 짝퉁시장에서 원가의 15%를 주고 산(15% 할인 아니고 진짜 15%) 아디더스 신발은 밑바닥이 상당히 닳아 있었는데, 전날 비를 맞아 습기 어린 바위와 환장할 시너지를 이뤘다.
이러다 죽을 것 같았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게 이상했다. 난 혼자 여행 중이니 여기서 추락사하면 아무도 모를 텐데... 당장 그만두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난 하기로 했으면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꼬맹이들도 씩씩하게 산을 오르는 마당에(걔네는 몸이 작으니까 통로가 좁지도 않겠지...)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 부끄러울 것 같았다. 겁으로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은 몸을 달래며 바위를 기어올랐다.
꼭대기에 도착하자마자 참고 있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파리 올림픽 선수들도 이렇게는 안 울던데. 두려움을 이겨낸 스스로가 장하기도 했고 이제 내려가다가 죽을 일 밖에 안 남은 것 같아 막막했다. 산 정상에서 보기 흔치 않은 광경에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저기 봐, 어떤 여자가 울고 있어. 잠시만요, 영어로 하면 다 알아듣거든요.
신경 쓸 사람도 없겠다 아이처럼 소리 내어 흐느끼던 내게 외국인 둘이 다가왔다.
왜 우는 거야, 올라온 게 기뻐서? 아니. 이제 내려가다가 죽을 것 같아.
보통은 농담이라고 여겼겠지만 내가 우는 걸 본 입장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나 보다. 걱정 마. 우리가 함께 내려가 줄게. 그렇게 임시산악회가 결성되었다.
임시산악회장 마이클은 케이프토니언(뉴요커처럼 케이프 타운 주민을 이르는 호칭)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어서 하산하는 내내 곤경에 처한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서는 왼쪽 바위를 밟는 게 나아요) 그는 비가 온 다음날이 평범한 날보다 등산이 다섯 배는 더 어려운 법이라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현지인 가이드가 생겨서인지는 몰라도 죽음의 위협과 맞서 싸우던 한 시간 전과는 달리 내려가는 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천천히 바위를 기어 내려간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미안~ 시간 많이 걸렸지~ 하며 스몰토크를 하는 여유마저 생겼다. 역시 인간은 참... 계속 바뀐다.
누군가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힘이 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루피가(만화영화 원피스 주인공) 사방을 쑤시며 동료가 되라고 외쳤구먼. 내가 여기서 추락한다고 해도 119에 신고해 줄 사람이 옆에 있다는 믿음이 자신감을 가득 쥐어 주었다. 그렇게 무사히 라이언헤드를 내려왔다. 마이클에게 음료라도 한 잔 사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그는 패러글라이딩으로 다른 마을에 착륙할 계획이라고 해서 중간에 헤어졌다.
케이프타운에 있는 10일 동안 테이블 마운틴을 마주했다. 그때마다 바로 옆에 있는 라이언헤드를 찾았다. 내가 저기에 있었다! 볼 때마다 뿌듯함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역시 끝까지 오르길 잘했다. 더불어 그날의 교훈을 소중히 되새겼다. 때로는 누군가 그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도전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두려움아, 작아져라 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