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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 옛이야기를 통해 본 관계 이야기

<나무꾼과 선녀> 오정희 글 / 정선환 그림 / 비룡소

  



  늦가을에서 겨울에 먹는 음식 중 하나가 호박죽이다. 어머니는 호박죽을 호박범벅이라고 했다. 호박죽에 찹쌀을 조금 풀고, 붉은팥도 넣었다. 걸쭉하게 풀어진 어머니만의 호박범벅은 호박도 조금은 씹히고, 팥도 부드럽게 씹히는 데 참 맛있었다. 감미를 잘해서 그런 거였을까.  아침 글쓰기에서 李 선생님이 어머니의 손맛은 사랑의 온기가 들어 있다고 했는데 우리 어머니 손맛이 사랑의 온기가 더 특별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남들과 달리 감미를 사카린으로 해서 그렇게 달달하니 맛있었을까.


   어느 해인가 가을 끝자락에 생일이었던 나를 위해 어머니는 호박범벅을 해줬다. 마침 친구들이 놀러 왔었는데 노란 들통을 다 비웠다. 그런 호박범벅, 호박죽을 나는 특별히 더 좋아한다.  때로 식당에서 애피타이저로 호박죽이 나올 때가 있다. 나는 그걸 한끼 먹듯 같이 먹는 사람 것까지 뺏어 먹기도 한다. 물론 어머니의 손맛과는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특히 뷔페식당에 가면 가장 먼저 애피타이저로 호박죽을 가져온다. 식사를 다 마친 후 디저트를 먹을 때도 호박죽으로 마무리한다.    

 

  호박죽 하면 내 어머니가 떠오름과 동시에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장선환 선생님이 그린 <나무꾼과 선녀>의 나무꾼 어머니가 생각난다. 물론 이 그림책에는 호박이 아니라 박이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는 오랜만에 본 아들을 위해 아들이 좋아하던 박고지 죽을 끓여 준다. 용마에서 내려오면 안 되는 금기가 있어 아들은 용마 위에서 죽을 먹는다. 그러나 급한 마음에 뜨거운 죽을 떨어뜨리고, 깜짝 놀란 아들도 용마에서 떨어지고 마는데 용마는 미련 없이 하늘로 승천해 버린다.  



  왜 하필 이 옛이야기 그림책이 떠올랐을까. 어떤 무의식이 이 그림책을 떠오르게 했을까. 내 안으로 들어가며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림책을 매개체로 일을 하지만 그럼에도 호박죽을 생각하며 <나무꾼과 선녀>의 나무꾼 어머니를 생각하고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는 건 어떤 무의식이 나를 그 장면으로 이끌었을까? 금강산 기슭에 너와집을 짓고 아들과 살던 홀어머니, 그 어머니는 아들이 떠나고 홀로 집을 지키며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내 어머니도 그랬을까. 편백나무 숲 속 언저리에 살면서 적적한 시간을 어찌 다 채우며 살았을까. 눈 뜨면 키우는 닭이며, 개, 강아지, 오리, 거위, 돼지를 돌보고, 산기슭에 올라 두릅이며 고사리, 취나물, 더덕 등을 채취하고 우리 입에 하나라도 넣어주고 싶었던 어머니. 나는 왜 나무꾼의 어머니가 홀로 땔감을 주워오던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내 어머니를 생각했을까.    

  


  어머니는 편백나무 숲 언저리에서 오빠네와 살았다. 70세쯤부터 치매를 오래 앓았다. 차츰차츰 어머니의 기억 회로는 자주 고장 났다. 어머니는 망각의 늪인지 감옥인지 하는 곳에 갇혀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서서히 어린아이가 되어갔다. 어머니의 노화는 빠르게 왔고, 질병까지 찾아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어머니가 그렇게 변화됐던 것일까.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아낙일 때 어머니는 혼자됐다. 그래서 ‘억척스럽다. 드세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아버지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 어머니가 치매를 앓으며 검불 같아졌다. 마른 낙엽, 마른 나뭇가지, 마른풀처럼 검불이 되어갔다.


<나무꾼과 선녀>의 어머니가 홀로 땔감을 모아들고 걷는 뒷모습 그림을 보며 나는 내 어머니를 투사했던가 보다. 나의 내면적인 정서나 사고가 홀로 아들을 기다리는 나무꾼의 어머니를 안타까워했던가. 내 어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먼 기억을 붙잡으며 자식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던 그 모습을 떠올리게 했던가. 그림책은 이렇게 동일(同一) 시화되며 감정이입(Empathy),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한다. 나아가 통찰(洞察)을 하게 한다.   

   

  나무꾼과 선녀 설화는 매우 다양하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유럽 등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기도 하다.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구전설화이니 지역마다 나라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내용은 조금씩 변하거나 덧붙여지기도 했을 것이다. 오정희 작가님이 쓴 <나무꾼과 선녀>는 같은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라도 다른 옛이야기와 매우 다르다. 금강산 기슭에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노총각 나무꾼이 노루(또는 사슴)를 구해주고 보답으로 선녀와 결혼했으나 금기를 어기며 파탄에 이르렀다는 나무꾼과 선녀 설화 중에서 수탉 유래형 설화를 모티브로 했다.


  놀라운 건 문장이 간결하면서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문학성이 좋고 세련된 입말 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이지만 그림과 잘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그림책 한 권에 좋은 글과 그림의 조화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더구나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도 만만치 않게 즐거움을 준다. 산수화 같은 그림이 수묵화로 그려졌나 싶은데 자세히 보면 목탄화로 그렸다. 그림책을 보면 숨은 그림 찾기도 재미있다. 색시를 얻고 싶다는 장면에선 숲 속 동물들이 둘씩 짝을 이뤘다. 어떤 동물들이 짝을 이루고 있는지 자세히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그림책 표지를 먼저 보면 나무꾼이 바위 뒤에서 선녀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염탐하듯 몰래 보고 있는 장면이 있다. 순정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보이다가도 한국적인 이미지다. 책장을 넘기면 면지가 마치 금강산 일 만이천봉을 그려놓은 것 같다. 마지막 장이 끝날 때도 면지는 똑같이 금강산 일 만이천봉으로 장식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다음 장으로 넘기면 서지정보 판권이 있는 장면에 화살 맞은 노루가 나뭇단 뒤에 숨어 있는 그림도 인상적이며, 샛노란 보름달이 동그랗게 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나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보면 나무꾼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지도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나무꾼은 어머니의 바람처럼 결혼을 꿈꾼다. 나무하러 가는 길에 산토끼 가족을 보면서 ‘내게도 색시와 자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노루가 도와줄 만한 일이 없냐고 물으니 ‘예쁜 색시가 있으면 좋겠지만 나 같은 나무꾼한테 누가 시집을 오겠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노루가 알려준 정보대로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숨겨둔다. 절도죄를 저지르고 있다. 아니, 나무꾼의 선녀와 결혼은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사기 결혼이다. 그러니 당연히 삐걱거리며 흔들리는 결혼생활이었을 것이다. 어찌어찌 기사회생하듯 하늘나라에서 살 방도가 생긴다. 그때마다 나무꾼은 금기를 어기거나 실수로 인해 평생을 처자식만 그리워하다 죽는다. 그는 수탉으로 태어나 날마다 하늘만 쳐다보며 ‘꼬끼오!’(꼭 가요!)를 외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옛이야기는 대부분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다더라’로 끝난다. 그런데 유일하게 주인공이 불행한 옛이야기가 바로 나무꾼 이야기다.



발문하기


1. 나무꾼이 어머니가 주신 호박죽(박고지 죽) 먹지 않고 인사만 하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면 어땠을까요?

 

2.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아들을 붙잡고 뜨거운 죽을 꼭 먹여야 했을까요?

   (여러분이 어머니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3. 내가 아들이라면 어머니와 처자식을 사이에 두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4.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5. 나무꾼의 아내 선녀는 왜 지상에서 살지 못할까요?


6. <나무꾼과 선녀>는 다양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어머니, 아들, 남편, 아내, 며느리의 관계를      

    과거 우리네 어머니들이 살았던 시대와 현재의 관점으로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좋습니다.


7. '어머니는 과거, 부부는 현재, 자식은 미래'라면 나무꾼이 어떤 삶의 태도로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8. 그림책을 보면 숫자 2, 3, 4가 상징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이 숫자들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9. 결혼이란 ___________이다. 왜냐하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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