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가즈링 촐로
다섯 번째 아침은 유난히 날씨가 급격하게 쌀쌀해져 있었다. 그래도 파카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후리스 한벌을 챙기고는 다음 여행지로 출발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주유를 하거나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내릴 때마다 날씨는 더욱 겨울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듯했다.
한 마을에 들려 장을 보기로 했다. 주차를 하는데 주차 한편에 뭔가 쌓여있는 걸 발견하고 자세하게 보고 식겁한 일이 있었다. 눈이 쌓이고 녹은 거처럼 보이는 뭉텅이가 보였는데 양가죽이었다. 그것도 가공되지 않은 아주 생 양가죽이었다. 왜 길거리에 저렇게 가죽이 쌓여있는 거지 생각할 때 즈음 다른 트럭에는 수많은 가죽들 쌓여있었다. 혹시 여기서 가죽을 사고파는 곳이 있는 건가 싶었지만 마트에 들어서는 순간 알게 됐다. 마트 1층에는 정육점이 있었는데 건물 자체가 싸늘하고 우리나라의 정육점과는 다르게 냉장고 없이 오픈되어 있는 정육점이었다. 가림막 없이 동물들의 고기를 널어놓고는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곳에서 가죽을 벗기고 가공하여 파는듯했다. 고기만 파는 게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내장까지 팔고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하기 충분했다. 냄새가 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생고기 특유의 섬뜩한 피비린내가 오래 머물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저녁에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다른 마트에 들어가 재료들을 고르고 술을 고르던 중이었다. 그런데 고기를 사고 온 타샤는 우리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남겼다.
"오늘은 술 안 팔 거예요.. 몽골에서는 매달 1일 에는 술을 팔지 않아요"
국민의 건강과 가족들과의 화합을 위해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순간 일행은 패닉에 빠져 장바구니에 담은 술은 하나씩 꺼내며 아쉬움을 나타내듯 느릿느릿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음악 좋은 술이라는 삼위일체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에 큰 충격에 빠져 버리고는 했다.
어쩔 수 없이 여행지로 다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는 찬바람이 아주 쌩쌩 불고 있었다. 그때 나는 슬리퍼에 후리스 딱 한벌만 입고 있었기에 캐리어에 있는 옷을 꺼내고 싶었지만 나의 캐리어는 가장 아래 바닥에 깔려있었기에 꺼내 달라고 하기 미안했다. 그나마 위로가 됐던 건 투어는 짧게 끝나기에 끝나고 차로 돌아와 숙소에 가서 꺼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여행지는 바가가즈링 촐로라는 곳이다. 화강암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이 산의 초입에는 옛 집터가 보인다. 이곳은 원래 불교사원 터라고 한다. 과거 불교가 탄압받던 시절 사원이 파괴돼 되고 위협은 받는 승려들이 이곳으로와 지켜온 산이라고 한다. 그중 자와담딩이라는 사원이 있던 곳이 있는데 자와 담딩이라는 승려가 머물면서 명상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이 지키고 있는 신성한 곳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오랜 시간 바람에 깎여 거친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마친 잘 구워진 식빵처럼 보였다. 산의 정상에는 수많은 돌탑들이 쌓여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들려 이곳에서 소원을 빌고 간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추워서 주머니에서 손을 뺄 수 없었기에 누구도 돌탑을 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타샤의 안내를 따라 동굴로 향했다. 산 주변에는 수많은 동굴이 있는데 옛 몽골은 중국에 지배를 받던 시절 수정 채취를 위해 마구잡이로 뚫어놓은 것들이라고 한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가치가 없는 수정들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 동굴에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고 했다. 19세기에 존경을 받던 스님이 동굴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 그 후 한참 뒤에 추위를 피해 동물들과 함께 동굴로 피신했다가 사망한 남성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유명하지 않은 이야기였는지 타샤도 자세하게는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아주 좁은 동굴로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길부터 어두컴컴해 위험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들어가고 아니 동물들이 가끔 왔다 갔는지 배설물 냄새가 나기도 했다. 비가 오면 비가 차올랐을 텐데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비가 많이 왔을 때 한번 무너졌다고 한다. 그래서 안쪽까지 들어가는 길은 매몰돼 구경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모두 둘러본 후 캠프로 향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왔다. 게르에 도착하니 바람이 엄청나게 불기 시작했다. 빠르게 짐을 모두 게르로 옮긴 뒤 침낭을 꺼내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몸을 조금 녹인 뒤 점퍼를 꺼내 입었는데 진작에 꺼내 입을 걸 후회했다. 기모가 들어간 바지까지 입으니 완벽하게 바람이 차단되어 게르 밖의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감기 기운이 돌기 시작해 늦은 뒤였다. 잠깐의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니 일행들은 하나같이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결국 나도 침낭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타샤가 저녁 먹으라는 소리에 깨어난 일행은 게르 캠프 식당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식당에 도착하니 타샤와 푸제는 큰 냄비에 들어있는 고기를 그릇에 하나둘 꺼내고 있었다. 오늘의 저녁은 몽골의 전통음식인 허르헉이다. 양고기를 감자와 당근을 넣고 끓인 음식이다. 특이했던 건 돌을 구워 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잡내도 사라지고 더욱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커다란 고기를 한점 집어 입에 넣었다. 다행하게도 내가 아는 그 양고기 향은 많이 느껴지질 않았다. 다만 아주아주 질겼기 때문에 뜯으려고 한 참을 애를 써야만 했다. 세 번 정도 끝에 고기를 뜯는 데 성공했지만 입안에서 씹히질 않아 한참을 씹어야 했다. 조금만 부드러웠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결국 젓가락을 버리고 손으로 뜯어먹어야 했다.
추운 날씨에 따듯한 고기와 육수를 먹으니 감기 기운이 내려가는 듯했다. 맛있게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다들 춥고 피곤해서 인지 일찍 잠에 들었다. 너무 추워 샤워는 못해도 세수는 하고 자야지 생각하며 샤워실로 들어가 물을 틀고 손을 대는 순간 손가락에 구멍이 날듯한 고통이 스쳤다. "에이 이정로라고?" 그렇게 세 번을 손으로 온도 체크하고 나서야 손에 살짝 물만 묻히고 게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흙냄새 나는 물이나 짠맛 나는 물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국 생수로 이를 닦고 물티슈로 얼굴과 발을 닦고 술을 못 마신다는 아까의 아쉬움은 사라 진체 그날 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에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