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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벼운 고래 Nov 13. 2019

몽골, 네 번째 이야기

욜링암


네 번째 새벽 아침 친구가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매일 보던 일출을 보고 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난히 그날 아침은 몸이 무거웠다. 빨래판에서 잔 듯 등이 온몸이 쑤셨다. 눈만 껌벅껌벅거리며 손짓으로 저리 가라고 휘저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시 잠이 들려 눈을 감았지만 일부러 그랬는지 문을 활짝 열고 나간 일행 덕분에 잠이 다시 오지 않았다. 결국 손을 목발 삼아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짜증이 났지만 나가는 순간 짜증은 맑은 공기가 폐를 관통하면서 한숨으로 섞여 나왔다. 그제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무리가 없었다.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게 타샤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다음 여행지로 출발했다. 타샤는 가이드 일을 하기 전에 몽골 유도 국가대표선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침에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 날은 유난히 출발시간이 늦어져 1시 정도에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은 만두를 먹었는데 우리나라의 찐빵 만두 같이 생긴 만두였다. 역시나 안에는 양고기만 들어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만두에는 양 냄새가 나지 않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만두와 식감은 비슷하지만 향이 특이해 한입 베어 물고 음미해볼 수 있었다. 조금 짜증이 났던 건 식당에 파리가 많아 식사시간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오른손은 만두를 왼속은 파리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의 대부분이 일층 혹은 이층짜리 건물이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을 하려던 순간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몽골의 화장실은 보통 건물 내부에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타샤에게 화장실을 물어보니 200투그릭을 지불하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근처에 가니 아슬아슬하게 나무판자 사이로 볼일을 봐야 하는 푸세식이었던 것이다.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코를 찌르는 냄새부터 낡은 판자 사이에 보이는 어두컴컴한 구덩이가 내게는 너무나도 큰 공포였다. 참을 수 있다 스스로 최면을 끊임없이 걸고 나서야 남은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초원에 수많은 염소들이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다. 어쩔 수 없이 10분 정도 기다렸다 가기로 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염소를 볼 날이 얼마나 있을까. 가까운 길부터 멀리 있는 길까지 염소 천지였다. 그렇게 염소를 구경하다 이상한 소리가 자꾸만 들려왔다 "북, 북, 뿍" 염소들이 볼일을 보는 소리였다. 아주 많은 염소들이 약속한 듯 번갈아 가며 우스꽝 스러운 소리로 연주하기도 했다.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이 나타나 염소들을 몰아내어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염소 떼'


그렇게 3시간을 더 달리고 나니 오늘의 여행지 입구가 보였다. 입구에는 다행하게도 괜찮은 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큰일을 해결한 후 10분 정도 더 달려 오늘의 여행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의 여행지는 욜림암이라는 곳이었다. 욜 링암은 살아있는 먹이만 사냥해 먹는다는 "욜"이라는 수염수리가 사는 계곡이라고 해서 욜 링암이라고 한다. 가파른 계곡에 아주 높이 사는 새로 몽골에서는 두 번째로 큰 새라고 한다. 욜 링암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말들이 아주 많았다. 욜 링암 코스는 말을 타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걸어가는 걸 선호했다. 초입에 들어서자 바람에 톱밥처럼 생긴 것들이 흩날렸다. 그것들의 정체를 알고 나니 숨을 쉴 수 없었다. 말은 초식동물이다 보니 말들이 먹고 나오는 것들이 마르면 마른 풀잎처럼 날리기 일쑤였다. 맞다. 말똥이다. 욜 링암에서 제일 먼저 기억나는 것들 중 하나다. 아무래도 말을 타고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인지 우리가 가는 길마다 말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사실 이때가 제일 불쾌했다. 그래도 지뢰 찾기라도 하듯 땅 한번 보고 경 치한 번 보고 번갈아가며 밸런스를 맞춰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욜이 사는 둥지를 찾았지만 너무 멀어 찍지 못했다'


그곳을 지나다 문득 전쟁영화가 떠올랐다. 소수가 다수에 맞서는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계곡 같았다. 다수의 병력이 좁은 계곡을 지나갈 때 계곡 위에서 급습하는 그런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가파르고 좁은 길목이 계속됐다. 얼마나 높고 가파른 계곡인지 계곡으로 인해 햇빛에 닿지 않는 얼음은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고 한다. 계곡 곳곳에는 흰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있는데 그곳이 욜이 사는 둥지라고 한다. 욜은 하늘을 보며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너무 높이 날아 정말 점만 해 보였다.


'몽골은 카메라에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계곡을 안쪽으로 갈수록 산양이 한 두 마리 보였다. 그런데 산양은 타샤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찾아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타샤가 알려주는 위치를 쳐다봐도 위장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질 않았다. 카메라를 확대해 찾아 겨우겨우 찾아볼 수가 있었다. 역시 몽골사람들의 눈에는 위장한 양들도 피할 수가 없었다.



계곡 끝자락에 가니 손바닥 만한 돌들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높게 쌓인 그 돌들은 옛날 몽골에서 전쟁시 병사들이 출전에 앞서 자신만의 돌을 주워 한 곳에 하나 둘 쌓는다고 한다. 그 돌을 쌓고는 전쟁이 끝난 후에 무사히 돌아오면 자신이 올린 돌을 다시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 돌은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와 같은 것이었다.


'초록빛을 띠는 돌이 가장 눈에 띄어 이걸로 결정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우리나라에서 돌탑을 쌓고 소원을 비는 것과 비슷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건 돌을 쌓고 기도하며 돌탑 주변을 세바퀴도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 돌을 하나씩 주워 올려놓고 돌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눈에 띄는 초록빛을 띠는 돌을 올려놓고 세 바퀴를 돌았다. 세 바퀴를 도는 건 짧은 시간이지만 소원을 빌며 도는 그 세 바퀴는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들어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돌탑 근처에는 몽골 전통의상을 입은 할아버지가 계셨다. 욜 링암에서 주은 돌, 동물뼈를 깎아 만든 조각품을 팔고 있었다. 내 눈에 띄었던 건 돌을 작게 깎아 만든 팔찌였다. 끈을 꼬아 돌을 하나씩 끼워 넣은 간단한 팔찌였지만 돌에 새겨진 낙타, 말, 게르가 마음에 들어 세 개나 구매했다. 일행 중 한 명은 매끈한 돌에 양을 새겨 넣은 기념품을 샀는데 할아버지는 이름을 새겨 넣어준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귀가 나빠 타샤가 번역을 해주기 위해 귀에 대고 말해야만 했다. 멋들어지게 이름을 새겨 넣은 일행은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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