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링 엘스
3번째 아침이 밝았다. 전날의 과음 때문인지 유난히 몸이 무거웠다. 타샤가 아침식사로 토스트를 해주었는데 이상하게 느끼할 것만 같았지만 배를 든든하게 채운다는 점에서 좋았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속이 메스꺼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다음 여행지는 4시간 정도만 달리면 되는것이었다. 짐을 싣고 떠나는 차 안은 모두 기절한 듯 잠을 청했다. 중간쯤 왔을때 눈을 뜨니 푸른 하늘에 보지 못한 좁은 길을 통과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좁지는 않았는데 가리는 게 없는 몽골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이번 점심은 식당이 아닌 초원의 라면이었다. 10월에 보기 힘든 푸른 풀들을 조금은 볼 수 있었다. 언덕 같은 곳이었는데 저 멀리 오늘의 여행지인 헝거 링 엘스가 보였다. 길게 늘어선 사막을 보며 먹는 라면은 군대에서 행군 후 먹는 라면보다 맛있었다. 남자라면 알 것이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국물까지 완벽하게 끝낸 후 한 시간 정도 더 달려 우리가 묵을 캠프에 도착했다. 하루가 갈수록 게르 캠프는 시설이 더 좋아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화장실이 깨끗한 게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물이 쫄쫄 나온다는 것만 빼면 호텔과 다름없었다.
게르에 짐을 풀고 두 시간 정도 쉰 후 사막에 올라가기로 했다. 게르 주변에 정자 하나가 있었는데 모두들 거기에 앉아 책을 읽거나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듣거나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사막에 오르기전 낙타 체험을 하기 위해 모두들 모여 있었다. 정말 놀라웠던 건 생각 이상으로 낙타의 크기가 컸다는 거다. 도로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컸다. 초식동물이지만 그 크기를 보니 타기 겁이났다.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하던지 타기 꺼려졌지만 막상 타고나니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낙타를 한 시간 정도 타고 주위를 돌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내 뒤에 있던 낙타가 내 다리에 자꾸 코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간지러워서 그렇다고 한다. 오기 전에 낙타에 대해 들었는데 침을 조심하라고 했기 때문에 혹시나 침을 뱉을까 봐 내 뒤의 낙타를 경계하며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침을 맞는 일은 없었다. 또 한 가지 낙타의 발은 굉장히 납작하고 두꺼웠다. 때문에 또각또각 소리 나는 말과는 다른 소리를 내기도 했다. 체감시간이 30분 정도 된 듯했지만 돌아오니 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뒤의 낙타 신경 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나 보다.
그리고 헝거 링 엘스 사막에 오르기 위해 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렸다. 이번 여행지인 헝거 링 엘스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몽골에서 첫번째로 큰 사막이라고 한다. 관광지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라고 한다. 타샤가 말하길 사막 언덕에 올라가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멀리서 볼 땐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도착하고 나니 어마어마하게 높은 모래언덕이 있었다. 정상에서 타고 내려올 썰매를 각자 하나씩 가지고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러닝을 취미로 하는 맏형은 쉬지 않고 올라가 타샤와 함께 가장 먼저 올랐다. 역시 러닝이 취미인 사람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뒤에서 두발로 걷기 시작해 네발로 걷기 시작했다. 아니 걷는다기보다 기어서 올라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따샤는 우리 일행이 지금까지 올라온 사람중 가장 짧은 시간에 올라왔다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다들 운동 하나씩은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괜히 뿌듯했다.
겨우겨우 올라가 한숨 돌린 뒤 주변을 돌아봤을 때 눈앞에 펼쳐진 모래는 석양과 함께 붉은 바다처럼 보였다. 바람에 날리는 모래는 파도마냥 피부에 따갑게 치고있었다. 살면서 사막 풍경을 보았다는 것은 내 생에 최고의 행운이었다. 몽골 여행을 하면서 몽골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 들었던 곳이었다. 긴 시간 동안 시선을 돌리며 천천히 감상할 수 있었다.
석양이 질 때 즈음 하나둘씩 썰매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올라올 때와는 다르게 가파른 길이었다. 막상 내려가려니 무서웠다. 올라오면서 다른 사람이 타는 것을 봤는데 빠른 속도로 내려오다 넘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썰매에 올라 양발을 브레이크 삼아 내려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넘어지더라도 시원하게 내려올걸 후회가 되기도 한다. 사실 몇 번 넘어지기도 했다. 내 마음대로 가지는 않더라. 몽골을 여행하면서 가장 크게 웃었을 때였다. 먼저 내려간 일행은 내려오는 나를 보며 깔깔 웃으며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큰 모래산을 내려오니 해가 거의 다 지고 있었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조합이 들뜬 마음을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듯했다. 한번 더 올라가고 싶었지만 다시 올라간 자신은 없었다. 아마 한번 더 올라갔다면 내일은 근육통에 고생할것이 분명 했기때문이었다.
모두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게르로 돌아와 모래를 털기 시작했다. 다 털었다 싶으면 귀에서 나오고 또 다 털었다 싶으면 주머니에서 나오기도 했다. 아무리 털어도 털어도 계속해서 나왔다. 결국 샤워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일행중 한명은 씻다가 갑자기 물이 끊겨 축축한 몸으로 한동안 있어야 했다. 결국 사온 생수로 머리를 대충 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물이 나오긴 했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일행과 나는 불안한 마음에 빠르게 씻을 수밖에 없었다. 씻은 후에도 다음 날까지 모래를 털어야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의도하지 않게 모래를 수집해올 수 있었다.
그렇게 밤이 찾아오고 사온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를 하고 와인과 샹그릴라를 마시고 보드카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술을 안 먹은 날이 없었다. 오늘은 정말 적당히 마셔야지 다짐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따듯한 게르에서 간단히 문만 열면 보이는 밤하늘을 두고 술을 안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알딸딸한 눈에 별을 담고 하나 둘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