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를지 국립공원
실직적으로 마지막 투어 날이 밝아 왔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감기 기운은 코에서 머리로 올라왔다. 골골대던 아침을 생각하니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을 먹었는지 모를 것들을 먹고 출발 준비를 했다. 차에 들어가니 추운 기운이 몸 전체로 퍼지는 듯했다. 다행하게도 푸르 공에는 히터가 있었는데 따듯한 바람이 나오는 히터 라기보다는 엔진의 열을 이용해서 따듯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차에 탑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매생이 마냥 풀어져 잠에 들었다. 타샤는 그런 우리의 사진을 찍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다시 보고는 한참을 웃었다. 타샤는 우리가 걱정되었는지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우리에게 아주 솔깃한 제안을 했다. 피자나 햄버거 먹는 게 어떠냐고 한 것이다. 우리는 그 순간 눈을 번쩍 뜨고는 여러 입이 한입이라도 된 듯 외쳤다. "좋아요!" 피자가게에 들어서자 우리나라의 아웃렛과 비슷했다. 이마트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입구에는 음식점이 있고 더 들어가면 다양한 잡동사니들을 팔고 있었다. 화장품은 물론이고 휴대폰 가게 장신구 가게 그리고 금은방처럼 생긴 곳도 있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트가 있어 밥을 먹고 마지막 장을 보기로 했다. 피자가 나오자 어마어마한 크기에 다들 놀랐다. 큰 조각을 하나씩 들고 는 첫날 샀던 핫소스를 뿌려먹었다. 피자는 특별한 맛이 나진 않았지만 남김없이 해치웠다.
식사를 마치고 장을 보는데 우리는 제일 먼저 어제 먹지 못한 술을 가장 먼저 골랐다. 이번에는 맥주는 기본이고 샹그릴라와 와인도 함께 사고 간단하게 안주거리를 사고는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 여행지는 테를지 국립공원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은 수도와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테를지 공원은 몽골사람들도 휴가 때면 자주 놀러 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시설이 아주 잘되어있었다. 테를지 국립공원은 몽골에서 보기 힘든 산림도 함께 존재했고 기암괴석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큰 강까지 있어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입구에 들어서고 조금 올라가다 보면 거북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큰 바위를 볼 수 있다. 큰 바위 앞에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독수리가 앉아있었다. 우리는 한 명씩 두꺼운 장갑을 끼고는 독수리를 팔 위에 얹혀볼 수 있었다. 독수리를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발톱이 아주 무시무시했다. 그런데 내가 그것보다 두려워했던 건 혹시나 날카롭고 큰 부리로 나를 쪼진 않을까 걱정됐지만 길들여진 독수리라 그런지 아주 순하고 점잖은 모습이었다. 독수리를 얹고 나서는 팔을 위아래로 흔들면 독수리는 중심을 잡으려 날개를 펼치는데 이때 사진을 찍어야 한다.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는데 파닥파닥 소리보다는 펄럭 펄럭 소리가 날 정도로 길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 모습을 보는데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높이 자유롭게 날아다녀야 할 새들이 그곳에 묶여 관광객을 기다리는 모습이 조금은 슬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초원에서 머무를 게르로 이동했다. 비는 하루 종일 내리며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땅이 넓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날씨가 원래 그런 건지 한순간에 겨울이 찾아오는 몽골이었다. 우리는 게르에서 몸을 녹인 뒤 승마투어를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섰다. 한 명씩 말을 기다리며 내 차례가 왔을 때 지금까지 봐왔던 어느 동물보다 위협적이고 무서웠다. 말을 탈 때는 주의사항이 있는데 말 뒤쪽으로 걸어가거나 오른쪽으로 타거나 내리지 말라고 한다. 말이 놀라기 때문에 뒤쪽에 있다 말발굽에 맞을 수도 있고 오른쪽으로 내리다가 갑자기 날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에 올라가고 나니 안정적으로 탈 수 있었던 낙타와는 달리 매우 좁은 안장처럼 느껴졌다. 중심을 잘못 잡으면 떨어질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심지어 내가 탑승한 말의 고삐는 너무 짧아서 제대로 잡기도 힘들었다. 모두가 탑승한 후에 대장 말을 탄 타샤가 길잡이로 나섰다. 타샤는 5살 때부터 말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능숙하게 말을 타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말들도 언어로 알아듣는 건지 주인 말만 듣는 건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츄!"라고 말하면 앞으로 가라는 뜻인데 입에서 단내가 날정도로 "츄"를 외쳤지만 내 말은 절대로 듣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포기를 한 덕분에 주변의 풍경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을 타면서도 걱정은 계속됐다. 내 앞으로 먼저 가는 말이 방귀를 계속 뀌는 것이었다. "설마 저러다 똥 사는 거 아니겠지"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이내 그만두었다. 그 이유는 말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질뻔했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중심을 잡고는 중심 잡는 것에만 집중하고 풍경만 바라보았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그날의 날씨는 매우 좋지 않아 안개가 많이 끼어있었다. 그런데 그것 또한 그것대로 풍경이 좋았다. 제일 아쉬움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카메라에 담았지만 담기지 않는 그런 풍경이었다.
투어를 가기 전에 타샤는 게르에 장작을 가져와 난로를 지펴줬기 때문에 게르 안은 무척이나 따듯했다. 그런데 내 침대에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분명 문을 닫고 나갔는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떡하니 내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그대로 두고 쪼그려 누워 쉴 수밖에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몰라도 밖을 보니 비에서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몽골의 날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첫눈을 맞기 전에 몽골에서 첫눈을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날이 좋지 못한 날이 훨씬 운치가 있었다. 그리고 정말 가장 좋았던 이유는 아주아주 추운 겨울, 눈까지 내리니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싶었는데 정말 내 마음이라도 알아챈 듯 아주 따듯한 아니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왔다. 그 간 뒤통수를 뚫을 것만 같던 찬물을 벗어나 마음까지 녹여버리는 따듯한 물을 마주했을 때는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일행들은 돌아가며 장작을 계속 넣으며 따뜻한 물을 끓여 각자 차를 타거나 커피를 타 마시는데 문득 "힐링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꼈다. 내일 아침이면 눈이 쌓인 테를지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도 어김없이 술과 함께 밤이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