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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벼운 고래 Dec 02. 2019

몽골, 마지막 이야기

울란바토르


짹짹 소리와 말의 푸르륵 소리와 함께 아침이 찾아왔다. 밤보다는 날이 조금은 따듯해져 그리 춥지는 않았다. 부스럭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는 문을 나섰다. 밤새 온 눈이 하얗게 뒤덮여 발 밑에서 뽀드득거렸다. 기지개를 켜고 뒤로 돌아본 순간 어제 본 그 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햇빛이 눈을 반사해 다시 눈으로 들어와 반짝였다. 가장 높은 산 봉우리에는 안개를 품고는 보일 듯 말 듯 했다. 일행들은 각자 위치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다들 인생 사진 하나 건지겠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찍고는 커피 한잔과 함께 감상에 빠져 들었다. 



어젯밤 따뜻한 물의 여운이 남은 아침, 머리를 감으려 샤워실로 뛰어갔지만 역시나 아침에는 뒤통수를 뚫을 듯한 찬물이 나오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인상을 쓰고 숨을 참은 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감고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게르에 머무른 관광객들이 그제야 일어나 모두들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보통 이 시간 이면 아침 식사를 들고 와주던 타샤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마지막 밤이라고 타샤도 함께 술을 마셨는데 아직 일어나지 못했나 보다. 몽골사람들의 이미지를 깬 가장 큰 계기 이기도 했다. 어느 마트에 가든 보드카와 도수가 센 술을 팔고 있어 술을 즐겨 마시고 잘 마시는 줄 알았지만 타샤는 아니었다. 어쩌면 "몽골사람들은 술을 잘 마시는구나!"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걸 수 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같이 마셨기 때문에 다들 이해하는 눈치였다. 시간이 아주 조금 지나고 타샤는 얼굴이 부어있는 채로 샌드위치를 들고 왔다. 우리는 모두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한결 같이 우리를 챙기던 타샤의 처음 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샤가 준비해온 음식을 같이 먹으며, 오늘의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들었다. 오늘은 투어 마지막 날로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구경하고 캐시미어 백화점에 들려 쇼핑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새벽 1시 비행기를 탑승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마치고 모두들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이라 버리기 위해 가져온 옷들을 봉투에 담고 짐을 최대한 가볍게 챙기고는 푸르 공에 올랐다. 다들 너무 아쉬웠던지 출발하기 전부터 아무 말 없이 창문을 쳐다보기만 했다. 테를지 국립공원은 수도와 가깝게 있어서 오프로드는 짧게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프로드를 달려도 멀미를 느낀 적이 없었는데 며칠 만에 포장도로에서 달리니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2시간만 달리면 도착했기에 망정이지 더 달렸으면 먹은걸 다 게워낼 뻔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늘은 속세의 맛이 있는 시내의 한 KFC에 가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몽골은 수도를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다양한 브랜드들이 많이 있었다. 매장은 특별하게 몽골 특유의 분위기로 디자인할 줄 알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를 게 없었다. 맛도 우리나라의 다를 것이 없었다. 당연한 건가? 당연한 거겠지. 식사를 하며 타샤는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몽골인들의 눈이 좋다는 건 옛말이라고 한다.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눈이 많이 나빠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경 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조금만 올라가면 멀리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안경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할아버지들도 안 쓰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울란바토르가 내려다 보이는 자이승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는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다행히 건물에 이어져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했지만.. 자이승 전망대는 자이승이라는 산에 위치한 곳이다. 그곳에는 '자이승 승전탑'이 있는데 1932년 일본이 동몽골 지역을 침입하자 1939년 몽골이 소련과 힘을 합쳐 일본군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는 승전탑이라고 한다. 형형색색의 타일들로 그 당시 시대상을 담아낸 이야기가 둘러 쌓여있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한 공원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이태준 열사 기념 공원이다. 아마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이태준 선생은 몽골을 근거지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 이면서 의사라고 한다. 몽골에서는 유명한 위인이라고 한다. 의사였기 때문에 당시 몽골사람들을 치료해 몽골사람들에게는 '몽골의 슈바이처'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 외에 더 많은 공로가 있지만 사실 내가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태준 열사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는 것에 부끄러웠다.


전망대에 내려와 시내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는 골목 곳곳에는 한식집이 조금씩 보였다. 몽골에서 한식집을 보니 이상하게 한국에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체감했다. 우리는 쇼핑을 하기 전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향했다. 울란바토르 중심에 위치한 이 거대한 광장은 커다란 동상이 위치해 있는데 몽골 '혁명의 영웅' 담디 수흐바타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광장이라고 한다. 이 광장의 이름은 칭기즈칸 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2013년 이전까지는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불렸다가 2013년 몽골 정부가 칭기즈칸 광장으로 공식 명칭으로 지정했다가 다시 2016년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동상의 주인공인 담디 수흐바타르는 1911년 몽골군을 시작으로 1921년 7월에 울란바토르에 인민정부를 수립하고 몽골의 독립을 선포한 사람이라고 한다. 몽골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1990년 민주화가 이루어졌는데 개국공신이자 독립영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왜 하필 울란바토르였는지에 대해(썰?) 들었는데 담딘 수흐바타르가 수도를 정하려고 가던 도중 말이 그 자리에 소변을 봐서 그 자리로 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광장 뒤쪽에는 크고 기다란 건물이 위치해 있는데 몽골의 국회의사당이라고 한다. 국회의사당에는 커다란 칭기즈칸 동상이 있는데 양옆으로 그의 아들과 손자의 동상이 있었고 앞에는 개국공신 장군의 동상이 있다. 가까이서 보면 생각 이상으로 동상이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는 역사박물관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그 앞에 역사박물관을 따로 지었다고 한다.



광장 건너편에는 백화점이 있었다. 캐시미어 상품을 파는 백화점이었는데 공장이 바로 옆에 있어 값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백화점은 여느 백화점과 다르지 않게 밝고 화려하고 깔끔했다. 사실 나는 캐시미어에 관심이 없었는데 부드러운 재질을 만져보고는 왜 캐시미어를 사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일층에서 조금 가다 보면 가공전의 양털을 만져볼 수 있는데 까칠하지 않고 굉장히 부드러웠다. 사실 여행 전에 쇼핑은 생각도 없었는데 막상 오니 뭐라도 하나 챙겨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결국 목도리 두 개를 구매하고 기념품을 사기 위해 아웃렛으로 향했다.


"아울렛 전경"


아웃렛은 1층에는 식료품을 2층에는 백화점과는 다르게 정말 몽골 향이 나는 물건들을 잔뜩 팔았다. 큰 낙타 인형은 물론이고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이라던지 심지어 전통 방어구와 무기를 전시해 팔기도 했다. 모형인 줄 알았는데 진짜라고 한다. 칼과 활이 있었는데 칼보다는 화살촉이 어마 무시하게 생겼다. 그 옆에는 축 늘어진 모피가 있었는데 이것도 진짜였다. 여우부터 시작해 밍크(?), 늑대, 호랑이도 있었다.


가짜만 봐오다 진짜 모피를 보니 섬뜩하게 느껴졌다. 모피는 발톱과 수염까지 붙어있어 약간의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전통의상을 팔기도 했고 팔찌, 라이터, 뿔로 깎아 만든 단도도 있었는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만년필이었다. 붉은색 케이스에 붉은색 몸통을 가진 만년필은 마음에 쏙 들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바리바리 기념품 사고 나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타샤는 저녁에 샤부샤부는 어떠냐고 물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좋아했다. 샤부샤부 집은 유명한 곳이었는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가운데 원이 돌아가는 상에 모두들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특이한 것은 이런저런 고기를 주문했는데 소, 양 외에도 말고기와 낙타고기도 함께 나왔다. 다들 소 외에 다른 고기들은 먹기를 주저했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움에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실 뭐가 무슨 고기인지 모를 정도로 맛이 비슷비슷했다. 마지막에는 그냥 가까운 고기만 집어먹어서 무슨 고기를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육수 때문인 지는 몰라도 양의 비린내도 나지 않아 좋았다. 다만 작은 만두가 있었는데 그 만두는 양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저녁을 먹은 후에 밖으로 나와 근처를 조금 돌아다녔는데 날씨가 추워지니 거리도 조금은 을씨년스러웠다. 지금까지 몽골을 다니면서 언제나 따듯하고 탁 트인 풍경만 보다 차와 사람이 뒤엉킨 도시로 오니 다시금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첫 여행지였던 몽골은 마냥 편안한 여행도 아니었고 마냥 좋은 풍경만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항상 맛있는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좋은 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몽골의 매력은 그것들을 온전하게 즐기는 "느림"에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일상에서 빠르게 걷고 뛰는 사회에서 "느림"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빠르게 걷는 행동부터 생각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빠르게 이뤄져야 하는 사회에서 몽골은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느림"을 온전하게 느끼게 해주는 여행이었다. 


 우리는 정들었던 타샤와 푸제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SNS를 팔로우하며 한국에 놀러 오면 보기로 했다. 내년이면 따로 사업장을 낸다고 한다. 우리가 느꼈던 타샤의 정성과 노력을 보면 그는 분명 성공할 것이다. 에너지 넘치고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노력은 우리의 여행을 빛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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