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고뇌
삼십대 후반이 되니,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의무들이 많아졌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생기고 나의 결정과 지원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의무들에 내 힘을 이백프로 쏟아내 더 잘 해내고 싶은데 결국은 포기해야 하거나 성에 차지 못한 경우가 종종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할바에는 그냥 시조조차 안하는 게 좋지 않겠냐 싶으면서도, 그래도 해보고 싶은 마음, 하다보면 어떻게든 길이 생기겠지 하는 마음으로 늘 발을 들여놓는다.
어릴 때 학교 잘 다니고 공부 하고 잘 놀기만 하면 좋았던 그때가 참 심플하니 좋았단 생각이 든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 엄빠표 홈스쿨 교육, 집안 가꾸기, 집안의 건강한 식습관 등등 갖추어 나가고 싶은게 많았다. 아이를 위한 시간은 나에게 최우선순위로 잘 지켜왔지만, 시간 투자가 많은 만큼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한 듯 하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건지.. 가끔 나도 잘 모르겠다
딸로서
4기 암 투병 중인 엄마와 상심한 가족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정보력과 인맥을 총 동원해 남들이 다 가는 길이 아닌 장기적으로 엄마를 위해 가장 좋은 길이라 믿는 방법으로 우리는 1년을 잘 지내왔지만, 정말 이 길이 맞는 건지.. 이러다가 갑자기 엄마가 나를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닌지 두렵곤 한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 사람 같지만 사실 엄마는 생사를 오가는 투병 중인데..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가끔 나는 내가 지금 이렇게 해외에 나와 성공하겠다며 executive coaching을 받을 때인지, 6살 딸래미랑 중국어 공부를 할 때인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복잡해지곤 한다.
업계 15년차 리더로서의 나
더 높이 더 큰 책임을 맡아보고 싶다는 도전적인 마음 한편에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 보다 "내가 지금 그걸 해야할 때인가?" 라는 질문이 늘 더 앞선다. 늙으신 어머니는 먼 한국땅에서 아프고, 어린 딸래미와 지금 이 시기에 함께 쌓아가야 할 것은 많고... 내가 성취욕 & 명예욕에 휘둘려, 아픈 엄마를 두고 비윤리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리더쉽, 영향력 있는 롤모델이 되는 것, 큰 조직을 이끌어가는 것에 대한 코칭을 인텐시브하게 받으면서 나는 더욱 동기부여되고 반 강제적으로 그 방향으로 움직여져가고 있다. 내가 구지 나서서 "제가 지금은 제가 그런 fancy한 리더쉽을 운운할 상황이 아니거든요" 라고 말하고 제지 하지 않으면, 이대로 언제라도 금방 뭔가 이루어져버릴 듯한 상황이 되버렸다.
나라는 인간 한사람만 보면
과거 임신중독 이후 여전히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혈압이 큰 폭으로 날뛰고 안정이 안되고 두통이 생긴다. 나도 이렇게 머리 터져 죽는 것은 아닌지 무서울 때가 있지만, 수 많은 우선 순위 안에서 꾸준한 유산소운동은 종종 뒤로 미루어지곤 해버린다. 오랜 다개국어의 꿈은 부족하나마 딸래미와 조금씩 해가는 중이지만, 내 스스로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속도가 더디다. 교회의 밴드 활동, 교사, 공동체 모임 진행 및 발표 등 하고 싶은 일들은 선택적으로 하거나 대부분 포기하고 최소화한지 오래다. 회사 밖의 나, 집 밖의 나를 챙길 시간은 없어진다
이 모든 무게감이 가끔 나를 짓누를 때가 있다. 다 잘할 수 없는데, 다 내 손에 움켜쥘 수 없고 다 잘 할 수 없는데... 내 스스로를 가혹하고 매몰차게 몰아세우지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가끔 벽에 몰려세워져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오늘도 깊은 숨을 내쉬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Take it easy....
모든 것이 다 잘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