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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리케인봉 Oct 25. 2021

고양이 티티는 어디로 갔을까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2001)


<고양이를 부탁해>를 세 번 봤다. 영화가 개봉했던 2001년, '와라나고' 운동이 나름 떠들썩하던 중학생 시절에 비디오 테이프로 한 번, 스무살이 됐을 때 노트북 화면으로 한 번, 그리고 삼십 대 중반이 된 최근 재개봉한 4K 리마스터링 버전을 영화관에 가서 봤다. 시청한 디바이스와 영상 스펙이 달라진 만큼, 세 번의 감상평은 꽤 달라졌다.


영화는 다섯 친구의 고등학생 시절로 시작한다. 인천의 황량한 부두에서 그녀들은 매 순간 깔깔대며 낡은 홋줄 위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어딜 봐도 스산한 뒷배경을 열심히 골라가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고 화면이 전환되면, 청춘은 끝나고 스무살이 시작된다. 혜주(이요원)은 길고 긴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증권사로 출근-아마도 비정규직으로-하고, 태희(배두나)는 답답한 가족에서 벗어나고 싶어나는 꿈을 꾸면서 장애인 시인의 시를 대필하며, 지영(옥지영)은 문자 그대로 무너져가는 집에서 연로한 조부모와 살고 있다. 비류(이은주)와 온조(이은실) 쌍둥이는 인천 어딘가에서 좌판 행상을 한다.


스무 살이든 서른 살이든, 인천의 여상을 나오든 뉴욕의 대학을 나오든 처음 사회에 내던져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혹하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행복했던 시절은 끝나고, 모두가 각자의 세상에 던져진다. 마치 누군가가 졸업장으로 엉덩이를 탁 때리며 자 출발! 하고 신호를 주는 것처럼. 누구나처럼 그들도 허겁지겁 각자의 레인을 찾아 달리기 시작한다.


혜주는 사회적 성공을 위한 욕망으로 가득하다. 언제나 이 구질구질한 1호선 지하철을 떠나서, 서울로 가는 꿈을 꾼다. 동경하는 회사 상사(문정희)의 자리에 몰래 앉아 성공의 꿈을 꾼다. 그래서 그녀는 이 구질구질한 고향과, 떡볶이 먹던 시절의 기억과 이별하기로 한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나름 능숙하게 받고, 라식 수술을 해서 외모를 가꾸며 기어코 서울에 자취방까지 잡았지만, '성공'의 길은 멀어 보인다. 사실은 혜주도 알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여자 직원들-아마 미래 혜주의 모습일-은 레인을 잘못 달리고 있는 혜주를 비웃고, 롤 모델이던 상사는 자신을 '잡일 하는 사람'으로 포지셔닝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욕망과 현실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혜주는 허세와 큰소리로 그것을 좁히려 한다. 결국 지쳐 쓰러진 혜주를 웃게 하는 것은 10대 시절의 친구 태희와, 자신을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찬용(오태경)임에도.


연로한 조부모가 누워 있는, 천장이 무너지는 집의 다락방에서 지영은 텍스타일 디자인을 습작한다. 그녀의 꿈이자 욕망이다. 그러나 그녀의 레인은 너무나 좁아서 발을 딛는 것도 힘들며, 오래된 판자집의 천장은 너무 부실하다. 디자인 습작을 가방에 넣고 당장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던 지영은, 길에서 고양이 티티를 발견하고 집에 데려온다.


고양이 티티는 즐거웠던 10대 시절이다. 그래서 지영은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 혜주의 생일 선물로  티티를 건넨다. 행복했던 시간의 기억을, 가장 많이 공유했던 친구에게 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혜주는 티티를 다시 지영에게 돌려준다. 스무 살 혜주에게 중요한 것은 인천에서의 행복한 기억이 아니라, 서울에서 쌓아갈 자신의 사회적 성공이다. 무신경하고 허세 가득한 혜주의 말은 지영에게  비수가 되고, 둘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둘 사이를 중재하려는 태희에게 혜주는 "예전에 친했던 게 뭐가 중요해? 지금이 중요하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친다.


그래서 지영은 티티에게 집착한다. 혜주에게서 되돌아온 마음에 스스로 상처입지 않기 위해서, 현재의 고통과 불안을 잊기 위해서 언제나 티티를 안고 자신의 디자인 습작마다 티티의 발 도장을 찍는다. 그것은 그녀의 아이덴티티가 10대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은 그런 나이다.


그러나 내 길이라고 생각했던 레인은 점점 좁아지다니 결국 뚝 끊겨버린다. 10대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혜주에 의해서 한 번, 그리고 결국 집이 무너져 조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한 번. 무너진 세상 속, 갈 곳과 할 말을 찾지 못한 지영은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입을 다문 채 태희에게 티티를 맡기고 경찰을 따라 장례식장을 떠난다. 그리고 소년분류심사원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태희는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태희는 언제나 친구들 사이를 중재하고, 모임을 주최한다. 그녀는 라식 수술을 한-마치 성공을 위한 욕망에 눈이 먼 것처럼- 혜주의 눈이 되어 주기도 하고, 연락을 끊은 지영의 집에 찾아가 지영의 할머니와 만두를 먹기도 한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찜질방처럼, 질식할 것처럼 답답한 집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태희의 삶이다. 그러나 결국 태희도 깨닫는다. 영원할 것 같던 10대 시절의 친구들은 모두 교복을 벗고 각자의 옷으로 갈아입었다는 것을. 각자의 욕망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태희는 자신의 레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한다.


한참 생각할 때, 남동생이 찾아와 자신은 공부를 하고 형은 아기를 목욕시키고 있으니 이 집에서 유일하게 노는 사람인 태희가 아빠의 만두 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각하느라 바쁘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태희는 심부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무너져버린 지영의 집을 보며 문득 자신의 레인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태희는 고양이 티티를 비류 온조에게 맡기고, 혜주와 지영을 화해시키려 노력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 등 돌린 지영을 찾아간다. 연락을 끊고 잠적했던 지영의 집으로 찾아갔던 것처럼, 태희는 지영을 면회해서 "난 니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였대도 니 편이야" 라며 지영의 손을 붙잡고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온다.


중학생 시절 비디오 테이프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가장 마음이 갔던 사람은 태희였다. 배두나 배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자유를 꿈꾸고,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레인을 향해 친구의 손을 잡고 같이 떠날 수 있는 태희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비류와 온조는 묘하게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로 보인다. 그녀들은 왠지 세상에 발 딛고 있지 않다. 미신을 전해주는 화교 혈통 친구들. 대륙에서 내려와 인천에 정착했던 백제 설화의 주인공처럼 그들은 나머지 친구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최종적으로 고양이 티티를 맡아 기른다.


고양이 티티는 <초록물고기>(이창동,1997)에서 막동이(한석규)가 죽음의 순간 떠올리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수의 시대를 상징하는 '초록 물고기'와는 다르다. 그녀들은 고양이 티티를 한 번씩 맡아 돌봄으로, 더 이상 10대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고양이 티티는 상실의 상징에 가깝다. 그래서 태희는 티티를 우리의 신화적인 인물, 늘 인천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비류 온조에게 맡기는 것이다.


태희와 지영은 떠난다. 두 사람은 티티를 안전한 곳에 맡겼기 때문에 10대와 이별하고 20대의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다. 여기에는 없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여기보다 더 나을 나의 레인을 찾아 떠난다. 영화 마지막에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굿바이' 자막은 고양이 티티에게, 우리 모두의 10대에게, 그리고 상실의 시대였던 스무 살 시절에게 고하는 안녕이다.


스무 살 시절 노트북 화면으로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혜주의 불안과 허세, 그리고 지영의 고독과 열등감이 자꾸 눈에 보여서 착잡한 기분이었다. 나는 골방에 누워 이장혁의 <스무살>을 반복해 들으며 내게 찾아온 이 이상한 감정을 이해하려 애썼다.


삼십대 중반이 된 지금, 4K 리마스터링으로 영화를 보자 많은 것이 보였다. 앳된 배우들의 얼굴이, 불독맨션과 자우림의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는 장면이, 오래 전 인천의 풍경들이,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보였다. 분명 이십 년간 많은 것을 잃어온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화질이 좋아진 만큼 기억이 안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양이 티티는 어디로 갔을까. 분명 내게도 티티가 있었는데 나는 누구에게 맡겼었나. 어디선가 잃어버렸을까. 혹시 스스로 버린 걸까. 애초에 출발선에 서기는 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태희처럼 혼자 책을 읽으며 담배를 피워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다시 이 영화를 볼 수 없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화질이 좋아질수록 기억은 점점 흐릿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https://youtu.be/pTAoaPDfueM


https://youtu.be/3rKSzvCuk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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