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리케인봉 Jul 22. 2024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얼마 전 트윈스의 용병 투수 켈리가 마지막 등판을 했다. 아쿠아맨 같은 듬직한 체구에 장발, 팀에 헌신적인 에이스였으니 그의 별명이 ‘잠실 예수’였던 것도 참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29년 만의 팀 우승까지 함께한, 6년을 뛴 용병 투수와의 이별에 잠실은 눈물바다였다. 트윈스의 팬이 아닌(그래서 켈리를 굉장히 무서워했던) 내가 봐도 가슴이 짜르르할 정도였다. 덩치는 산만한 다 큰 남자들이 서로 헤어진다고 울면서 인사하다가, 우르르 모여서 헹가래 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야구이며, 한 팀이다.


야구는 개인 종목이면서 팀 종목인 아주 특이한 스포츠이지만, 결국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이다. 켈리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아는 선수였다. 그래서 성적 부진으로 이별하는 용병 선수에게 트윈스 선수와 팬들은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만남과 헤어짐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어릴 때는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는데, 최근에 오래 다닌 회사를 떠나 이직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그 회사 사람들과 언제든 등 돌리고 헤어질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별이 닥치고 회사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마중을 나오자 눈물이 울컥 났던 것이다. 그래서 찌질하게도 나는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등 돌려 걸어 나왔다. 나 이거 참.


오래 만나서 정이 들어버린 걸까, 알고 보니 서로 되게 잘 맞는 사이였던 걸까, 생각해 봤지만 이별의 순간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한 팀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좀 드라이한 성격이고, 늘 불만이 많은 사람이라, 어딜 가나 소속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타입. 친척들끼리 모여도 겉돌고(일 년에 몇 번이나 본다고?), 고등학교 동문이라 모이자 해도 코웃음치고(뺑뺑이 돌려서 진학했는데 무슨?), 동향이라고 하면 못 들은척하는(어차피 인류는 다 아프리카에서 왔는데?) 그런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 언제나 나는 스쳐 지나갈 사람, 이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가장 드라이해야 할 이별, 2년만 버티면 모두 스쳐 지나가야 할 군 생활의 마무리는 그렇게 깔끔하지 못했다. 부대에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정해진 만남과 헤어짐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느 팀에 가든 정말로 ‘원 팀’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일 수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을 스쳐가는 찰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나와 같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과 정말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전 05화 ABS와 터미네이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