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다고 다 되나 어디
예전에 초등학교 앞에서 혼자 자취했었는데, 여러 장점이 있었다. 일단 동네가 꽤 안전한 편이고, 택시를 탔을 때 위치를 설명하기 편하고, 일요일 오전에 아이들 노는 웃음소리에 잠에서 깰 수 있다. 그건 정말 없던 인류애도 생기는 소리다.
그 학교에는 야구부가 있었다. 참새만 한 꼬마들이 유니폼을 입고 진지한 표정으로 야구를 하고 있는 게 너무 귀여워서 학교 앞을 지나갈 때마다 괜히 운동장을 한 번씩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 언젠가 한 번은 일요일 오전에 알루미늄 배트가 공 때리는 땡땡 소리에 깨어나서, 그래 오늘은 연습 경기 구경이나 할까, 하고 초등학교 스탠드에 멀찍이 앉아 있던 적이 있다. 혹시나 5번 타자 꼬마가 2루타를 치는 순간 번뜩이는 영감이 나를 찾아오고, 소설가가 될 결심을 하고, 급기야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마라톤을 하고 아내와 둘이 고양이를 키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형적인 백수의 공상을 하면서.
평화로운 백수의 공상은 한 타석만에 깨졌다.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한 투수가 결국 안타를 얻어맞자, 뒤편 감독 의자에 앉아있던 감독이 바로 시합을 중지시키더니 마운드로 올라왔다. 오, 투수 교체인가? 했는데 감독이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라 얼어붙어, 얼른 주변을 살폈다. 운동장의 아이들도, 뒤편 천막에서 구경하고 있던 학부모들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얼어붙은 것은 나뿐이었다. 감독의 질책이 끝나자, 경기는 재개됐다. 투수는 다시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천 년대 초반까지도 학교폭력의 주범은 교사였다. 그들은 사랑해서 패고, 안 사랑해서 패고, 기분 나빠서 패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이 나뻐, 그래서 패고 하는 공공의 적이었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삼촌은 나를 비웃었고, 70년대에 운동부 생활을 했던 아버지는 삼촌을 비웃었다.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무슨 조례니 하는 것도 생기고, 이제 군대에서도 때리면 큰일 나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뭘 본 건가?
해태 타이거즈는 프로야구 사상 최강의 팀이다. 19년 동안 아홉 번이나 우승했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성적과 정치적, 역사적 의미를 빼고 해태 타이거즈의 문화 중 가장 자주 회자되는 것은 ‘군기’다. 군대도 아닌 프로야구팀에 왜 군기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로들의 증언은 여튼 그렇다. 아주 강력한 규율과 팀워크를 바탕으로, 자율적인 야구를 했기 때문에 최강이 됐다는 얘기다. 하기사 전설의 슈퍼스타 이종범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해태 시절 빳다 맞던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워낙 재미있는 분이라 주변에선 뒤집어지고 본인도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에는 엄청나게 괴로웠을 것이다. 이종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맞아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고 있다.
빳다와 제구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공을 던질수록 어깨가 강해진다고 믿는 것과 같은, 만화를 너무 많이 본 사람들이 빠져있는 지난 세기의 허상이다. 나는 나를 구타했던 교사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한다. 나 같은 학생들이 수 천은 될 테니 그들은 다 잊었을 것이다. 뉴스를 보면 요즘도 군대에서, 회사에서, 심지어 태권도장에서도 다양한 방법의 폭력이 아주 난리가 난다. 우울하다.
해태 타이거즈가 최강팀이었던 것은, 그저 그 시대의 야구천재들과 근성 좋은 투수들이 호남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고, 김응룡 감독과 상성이 맞았기 때문이다. 선후배 간의 규율과 빳다 때문이 아니다. 그 초등학생 투수가 좋은 선수, 즐거운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