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job 조은 Apr 13. 2024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이 이야기가 더 많이 이야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이 브런치북을 책으로 내보기 위한 미팅을 다녀왔습니다.


이 브런치북은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이 단호한 문장으로 시작해 봅니다. 이거 하나는 굳건해야 여기서부터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글을 보고 있을 전문 교육을 거치고 인턴에 레지던트 실습까지 겪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어떤 분, 로스쿨에 들어가 법전을 달달 외우고 몇 번을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신 어떤 분은 어쩌면 억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그분들의 모든 노력과 경험을 충분히 존경한다는 점을 밝혀봐요. 저라면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자기의 그라운드에서 오늘도 자기만의 노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떠올려 보면 생각해 보면 곧 팀으로 갈 저를 위해 팀과 팀원의 정보를 잘 정리하여 공유해 주시고., 이제까지 했던 일들의 히스토리를 한 달 전부터 커피챗을 하며 조금씩 알려주던 팀장님도 조직문화의 전문가였고, 우리가 가진 자원을 끊임없이 파고들며 한 줄의 카피로 만들어내던 에디터님도 마케팅 전문가였죠. 주소를 붙이지 않는다고 위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주소가 생기면 만날 수 있고 이름을 붙이면 부르거나 기억할 수 있죠. 강한 의지나 뛰어난 기억력이 없다면 주소 없고 이름 없는 어떤 것은 일시적인 느낌으로 끝나고 맙니다.


하지만 있다면?

그러면 알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집니다.

저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면 같을 줄 알았는데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볼 수 있는 게 많아졌습니다. 봄에는 이런 모습, 여름에 비가 오면 이런 감각, 가을에는 이런 냄새, 겨울에는 이런 느낌 처음에는 시각만 가지고 이곳을 느끼다가 다층적으로 감각이 쌓이고 애정이 생기고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곳을 처음 오는 사람들에겐 보이는 것만 보일 것입니다. 그건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전문가'라는 말을 해체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해체해서 다시 한번 샅샅이 보고 재구성해보고 싶습니다.




편집장님께서 미팅으로 자리에 앉으셔서 책으로 내보고 싶었던 이유라며 건네신 말은 이랬습니다.

"N잡러나 사이드나 이런 것들을 위한 책들은 많아도 회사에서 하는 일을 좋아해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을 내보고 싶었어요."



이 브런치북의 앞선 챕터에서는 전문가는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 직종과도 다르고 단순히 그 일을 오래 하거나 반복한 숙련가와도 다르다며 비교를 통해서 전문가를 해체해 보았고, 전문가가 그동안 사회에서 당연하게 대우받았던 이유는 '소명의식' 때문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또 전문가는 자기 태와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전문가'라는 말을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는 전문가라는 말에 힘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에게도 내적 동기부여의 힘을 주고, 사회에서도 다시 한번 전문가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거나 오용되지 않고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전문가'라는 말이 가진 아름다움을 여러분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 말을 가지게 될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의 진짜 아름다움은 말이 만들어지는 과정, 모순, 의문을 통해 드러난다고 했나요?

오늘은 미팅을 한 김에 원래는 풀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처음의 마음과 생각의 과정들을 중간 회고처럼 풀어보고자 합니다.





 







1. 결혼을 하는 건 쉽지 '잘' 하는 게 어려워.

왜 전문가가 되어야 하나요?


친구와 어느 날 했던 대화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대화의 물꼬를 짚어보면 "왜 그렇게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해 놓고 헤어지는 걸까?"였습니다.


정말 왜 헤어질까 그걸 짚고 짚다 보니 '사랑이 부족해서'로 시작했던 대화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갔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요? 결혼이 뭔지를 모르고 해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해서요.

결혼은 두 사람이 지독하게 얽혀서 살아가는 생활인데 '결혼식' 정도를 결혼으로 생각했거나, 내가 정말 결혼을 하고 싶은지 결혼이 맞는 사람인지, 또 내가 원하는 사랑의 결실은 결혼이라는 형태가 맞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던 것 아닐까 하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과연 "결혼을 한다"는 말 앞에 이런 고민들이 놓여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요즘은 그걸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 흘러들어온지 모르겠는 단어가 삶에 숙제처럼 놓일 때만큼 공허하고 부담스러울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결혼' 역시 그렇지요. 그런 건 빠르게 해치워도 계속해서 미뤄도 불만족스럽죠. 그래서 저는 단어가 인간의 삶보다 먼저 놓이는 것을 경계하고 싶습니다. 강박이 선택을 앞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생각을 그대로 '전문가'라는 단어에도 가져옵니다.

모두 전문가가 될 수 있지만 그게 모두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문가'가 되겠다는 것 역시 내 생활에 일이 지독하게 얽혀도 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되는 문제입니다.

결혼을 '잘' 하겠다는 것에는 어쩌면 이런 의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하고 싶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 앞으로도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깨뜨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람과 관계, 맥락에 따라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뭐든 잘하죠.


그리고 '잘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본능이지만 사랑을 계속하겠다는 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지금은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사랑하게 태어나 있습니다.

사랑의 결실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사랑의 결실이 쉽게 퉁쳐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것을 사랑할 수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일을 사랑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어떤 사랑을 내가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어떻게 계속해나갈 것인지 언젠가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에게 나아갈 힘을 주기도 하는 것이죠.

우리는 시간을 보내면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시간이 간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어떻게 쓴다는 밀도니 깊이니 이런 건 상관없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냥 가기도 하기 마련이니까요. '내가 나아간다'라고 표현하려면 내가 선택해야 합니다.


결혼을 안 해도 되는 것처럼 전문가가 안되어도 됩니다. 하지만 저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되었으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프레임에서 '전문가'라는 단어를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오래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일은 다를까요? 처음에는 '전문가'라는 단어에 기대더라도 결국 어느 순간에는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내가 강박적으로 따르거나 갖고 있거나 담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게 알고 보여줘야 합니다. 일에 대한 내 사랑은 이렇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보여줘야 합니다.

전문가라는 말은 결실이 아닙니다. 시작입니다. 전문가가 되는 것은 그래서 결혼식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묵묵히 지켜나가야 하는 약속입니다. 제 프레임워크는 그저 힌트가 될 수가 있겠네요. 서로가 가진 일에 대한 힌트를 나누며 함께 풀어나가고 싶다면 우리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2. 보여주는 대로 보고, 아는 만큼 느낀다.

전문가는 자기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커피와 술을 '잘한다' 하는 가게들이 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한 잔 뒤의 풍경이 한 잔을 완성한다는 점과 원두노트나 메뉴판이 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커피 한 잔, 술 한 잔이 주는 진짜 가치를 아는 전문가인 것이죠.


<엔트러사이트 서교>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특별한 커피가 있습니다. 바로 '공기와 꿈'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목적 없이 하늘을 응시하다가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고 나면 내가 보는 것, 느끼는 것이 강렬하게 감각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아닌 대상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듭니다. 엔트러사이트만 줄 수 있는 경험입니다.



출처 ⓒ blimp / (순서대로) 엔트러사이트 1층, 엔트러사이트 3층, 엔트러사이트 외부 전경



그런데 왜 이곳에 와서 공기의 꿈 한 잔을 하며 책을 보면 모든 것이 더 강렬하게 받아들여질까요?

커피 맛이 제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맛일까요? 아니면 이 커피에는 다른 커피에는 없는 엄청난 환각제라던가 각성제가 들어있을까요?


아닙니다.

아마 제가 공기의 꿈이라는 단어가 주는 메타포에 매료되어서가 첫 번째일 것이고, "공기의 꿈 주세요"라며 그걸 주문하면서 선택하고 말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서가 두 번째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다 피상적인 거고, 무엇보다 이 [공기의 꿈]의 설명을 보았기에 그런 감각이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깊은 하늘이라는 말에 엔트러사이트의 하늘을 한 번 보고, 가시적인 사물보다는 하나의 감정이라는 말에 사물을 들여다보는 감정을 한 번 보고, 근원이나 몽상이라는 말에 흘러가는 감정이나 기분, 뭉쳐져 있는 결합 덩어리나 완벽해 보이는 어떤 상태에 괜히 한 번 시선을 둡니다.



출처 ⓒ 엔트러사이트 홈페이지 / [공기와 꿈] 커피 설명




마지막으로 원두노트에 이리저리 적힌 플레이버를 보면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캐슈너트 맛은 느껴지네 하고 두 번 먹었을 때는 진짜 자몽 맛도 있는 것 같아 하며 느낍니다.


전문가란 것도 그런 것 아닐까요.

좋은 커피집에는 꼼꼼한 원두노트와 애정 어린 커피 설명이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찐맛집에는 'OO의 효능' 같은 것들이 아주 길게 붙어있다고도 하죠. 누구는 뭐라 해도 내 일의 의미와 쓸모, 맛이나 느낌, 가치만큼은 내가 가장 잘 알기에 풀어주는 것 그래서 그것을 보여주고 느끼는 것.

물론 보여준 후에 그것을 볼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지는 내 몫이 아닙니다. 어쩌면 예측하지 않은 상대방의 반응까지가 진짜 나의 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전문가라고 하면 '영업 비밀'이나 '권위'와 같은 말로 정보를 숨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물론 어떤 반응이 올지 몰라 숨길 수도 있고, 영업 비밀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한혜진 씨나 진짜 맛집이라는 한 할머님의 인터뷰를 떠올립니다.


"어차피 알려줘도 이대로 못해."



출처 ⓒ 데빌스런웨이 한혜진 인터뷰




여러분은 과시와 자기표현의 차이를 아시나요?

없는 걸 있다고 하면 과시이고, 있는 걸 있다고 하면 자기표현입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있는 걸 있다고 해도 과시라고 합니다. 그런 논리에 말려서 그때부터 겸손의 스탠스를 취하면 이도저도 아닌 채로 모순만 생깁니다. 그런 잘못된 오해를 선 긋고 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카페에 있는 원두노트를 볼 때마다 느낍니다.


오늘도 카페에 가셨나요?

그렇다면 원두노트를 보면서 생각해 보세요. 이 원두도 자기가 어디서 왔고, 어떤 맛이 나는지를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데 나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을지요. 그런 맛이 실제로 나는지 하나씩 짚어보면서 몇 모금을 마셔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그리고 커피 전문가라고 하면서 그런 것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카페에 믿음이 가는지도요. 또 가끔 특별한 이름을 가졌거나 커피만을 위한 공간이 있는 카페를 가면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도 관찰해 보세요. 길게 말하지 않고 느끼게 하는 게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요. 전문가가 되고자 한다면 숨기기보다는 나를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저는 카페에 갈 때마다 다시 생각합니다.








3. 이 길의 끝은 무엇일까?


저는 기술이 발전될수록 좋은 건 선택지가 아니었던 것도 선택의 영역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불어 나와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의 이야기까지 알 수 있다는 점 역시 임팩트가 큰 변화입니다.


수렵, 채집을 해야만 자기 먹을 것을 겨우 구하던 인간이 이제는 먹을 것이 넘쳐나서 재분배에 대해 논하는 장면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격차가 커서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이제는 총량으로 봤을 때 뭐가 다양하거나 넘치지 않아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또 나와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의 이야기까지 알 수 있다는 점도 꽤나 멋진 변화입니다. 물론 그것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해와 존중, 연결의 폭이 넓어진 것도 맞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을 위하지 않는 기술의 발전만큼 공허한 것이 어디 있나 라는 해봅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의 섬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술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것이거나 인간이 내가 아닌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해주는 중요한 연결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 역시 그렇습니다.


앞서서 자기표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같은 사람이고 같은 표현을 했는데 어떤 곳에서는 저보고 급하다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추진력과 힘이 좋다고 합니다. 누구는 저를 제대로 밀어주고 누구는 저를 멈추게 합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첫째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 둘째로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추진력과 힘이 있다는 평가와 함께 제대로 밀어주는 사람이면 가장 좋죠. 적은 연차에도 “힘이 있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게 맞죠”라며 큰 프로젝트를 맡겨주고 아낌없는 지원과 점심식사를 함께해 줬던 대표님이 생각납니다. 그때의 제가 그걸 감사하게 받을 수 있었던 건 비유를 하자면 ‘나는 운전자’라는 인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책임감 있게 목적지로 가야만 하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는 건지, 그곳에 가기 위해 이 정도 힘이면 되는 건지 그걸 내가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멈추는 것도 나에게 힘을 주기 위함일 수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아나요. 트랜스포머 기능이나 믿을만한 동승자를 태워주기 위함인지요. 그걸 모르고 달리는 것만이 운전자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사고 나기 마련입니다. 운전자의 진짜 할 일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는 것이더라고요. 태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그랬습니다.

 

전문가가 되는 길이라면서 들어가다 보면 결국 그것이 내 안으로 향하는 길임을 알게 되는 때가 옵니다.

저는 초입이지만 많은 선배들을 보며, 또 전문가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알게 된 것입니다.


밖으로 난 길은 한편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이요.









닫힌 결말

“일이 있어서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있어서 일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모두 전문가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프레임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일이 내 인생에 지독하게 얽혀있다면, 지독하게 얽혀볼 만큼 좋고 잘하고 싶다면 전문가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부터 사회가 정한 정해진 학교과정에서 영재 소리를 들어야만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을 조직화하여 자기의 그라운드에서 전문가가 되는 그런 일들이 삶에서 더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전문가가 됩시다!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한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꺼내봅니다.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던 이 욕구 5단계는 알 겁니다.


메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전문가가 되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유능한 사람인 걸 쉽게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전문가가 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몇 번 물어도 부족한 질문을 또 합니다. 위 문단의 이유 중 하나인가요. 그렇다면 메슬로우의 욕구 2-4단계에 해당합니다.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충족되면 언젠가는 그다음 욕구가 나를 부를 것입니다. 배고플 때는 당장 어디서든 배를 채우는 일이 중요한 일인 걸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은 어떤 음식을 먹을지를 신중히 고를 수도 있고, 한 끼 식사가 주는 의미가 큰 사람은 내 체질과 오늘의 날씨를 고려해 최고의 식사를 내게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모든 욕구는 행복을 향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전문가에 대한 고민을 지금부터 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조승연의 탐구생활 <정동선 뇌과학자 편> / 행복의 3가지 조건



행복한 전문가 어려운가요?

행복의 3가지 조건을 살펴봅니다. 매일매일 더 나아질 수 있고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는 유능성이 있으면 자율성이 생기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어야 연결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교집합이 될수록 안정적이고 커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냥 전문가 말고 행복한 전문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내가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도 행복해질 테니까요. 어렵다면 내 일로 어떻게 영향을 미쳐야 내 일의 대상이 행복해질지 그것부터 생각해 보는 겁니다.

혹은 나는 언제 좋은 향과 맛을 내는 사람인지, 그건 어떤 향이고 어떤 맛인지 그걸 생각해 보고 치열하게 적어보는 겁니다.

그럼 일할 맛이 날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알아봐 줄 사람은 알아봐 줄 겁니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자기의 맛을 내는 커피 한 잔과 그 맛을 알아봐 줄 수 있게 적어둔 카페 한 편의 원두노트가 있다면요.



또한 제가 좋아하는 대흥 한 카페의 원두노트입니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 광고에 뜬 것인데 광고만큼 인간의 욕구를 긁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전 04화 '자신'감이 중요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