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에게 병원을 다닌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만히 들어주던 친구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이미 6개월 전부터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다. 의외였다. 대학시절에 알고 있던 현이는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고 인간관계도 좋았다. 통통 튀는 말투와 행동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고 나는 그런 현이를 꽤 부러워했다. 현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현이는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몇 번인가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전혀 몰랐던 사실에 속이 쓰려왔다. 밝은 면모 뒤에는 현이만의 아픔이 있었다. 엄마와 언니 사이에서 오래도록 감정적인 노동을 해왔던 현이는 조금씩 스스로를 잃어갔다. 인간관계란 생각보다 깊이 얽혀있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가까운 사람은 더욱 그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기꺼이 바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일이 지속되면 언젠가 마음에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고 같은 방식으로 아팠다. 그래서인지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아서. 그도 아프기에 어쩌면 나를 이해할 것 같았다. 그날 우리의 대화는 저녁이 올 때까지 길게 이어졌다.
내 주위에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친구들이 있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갈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곁에 있다. 그들에게 처음 우울증이라고 털어놓을 때에는 긴장됐다. 혹시나 나를 너무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못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이미 다들 어딘가 아픈 중이었다.
우울증, 공황장애, 감정조절장애, ADHD. 병명도 다양했고 증상도 제각각이었다. 우리가 제각각인 것처럼 비슷하지만 다르게 아팠다. 각자 나아가기 위해 병원을 다니고 상담을 다니고 약을 먹었다. 그들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내 등을 떠밀어 주는 기분이었다.
치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십 년을 방치해 둔 결과 신경치료부터 간단한 때우기까지 해야 할 치료가 많았다. 최소 두 달은 부지런히 병원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무섭다는 이유로 병원 가기를 미룬 내가 미워졌다. 치아 엑스레이를 찍고 검진을 마친 뒤 급한 신경치료부터 시작했다. 신경을 죽이고 충치를 제거한 후 인공 이빨을 씌워야 했다. 주사 공포증이 있어 마취만으로도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 곁눈길로 얼핏 본 주사기의 바늘이 너무너무 굵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들 것 같이 생긴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가운데만 뻥 뚫린 초록색 천이 얼굴을 덮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입만 벌리고 있자니 불안증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두 손을 마주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 밖으로 조명 빛이 새어 들어왔다. 어릴 적 본 영화에서 외계인에게 납치 당해 생체 실험을 당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번뜩 떠올랐다. 미리 발라 둔 마취약에도 주사기가 잇몸 살을 파고드는 느낌은 생생했다. 목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마취약이 퍼지고 점점 입 안의 감각이 없어졌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고 질끈 감은 눈을 떴다.
무시무시한 드릴 소리에 몸이 절로 굳었다. 하지만 마취가 잘 되었는지 치료를 하는 동안 통증은 없었다. 신경을 죽이고 드릴로 충치를 긁어냈다. 임시 치아를 만드는 동안 잠시 기다려야 했다. 거울을 들고 가운데가 뻥 뚫린 이빨을 보니 우습기만 했다. 주사에 겁에 질렸던 게 조금 전인데 이빨을 보고 웃고 있다니. 세상 참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울 것 같던 마음에 피식피식 웃음이 피어올랐다. 분명 다음 치료에서도 주사를 보고 겁을 먹겠지만 그래도 한 번 해봤으니 덜 무서울 것이다. 그렇게 계속 치료를 하다 보면 썩은 자리는 조금 더 하얗게 되어 있을 것이다.
내 병도 충치처럼 도려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정신병이라고 뭐 다를 게 있을까 싶다. 어쩌면 우울증도 이렇게 무서운 마음을 견뎌내고 치료하다 보면 다시 새하얀 나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썩어 곪은 마음을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없다면 도려내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면 되었다. 사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닐까? 살면서 한 번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잠시 주저앉았고 일어날 힘이 없을 뿐이다. 나는 조금씩 상처를 도려내고 새살이 돋기를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