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 현실주의 & 디스토피아
현실주의 & 디스토피아
현상황과 상태를 인정하며 그에 입각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는 태도. 현실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빠른 대처. 그러한 경향. 이상주의가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다면 현실주의는 그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을 제시한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란 말처럼 녹록지 않은 현실이란 거대한 부정에 스스로 고개를 숙인다. 현실과 이상은 공존하기에 발전해 왔지만 현실만 생각하면 자존감은 낮아지고 살아가는 이유와 명분이 사라진다. 디스토피아.
어쩌겠어, 이게 현실인데
현실과 타협할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따른다는 것을 증명한다. 현실주의자라고 이상을 철저하게 무시하지 않는다. 자신을 부정하게 돼버리는 거니까. 현실도 여러 번 부딪혀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지 않나. 찢어지게 상처도 나보고 머리도 깨져보니 '아, 이러다 내가 죽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때 포기를 배우고 현실 아래 자신을 보호한다.
이상주의자들이 논쟁을 즐긴다면 이들은 평화를 즐긴다. 자신의 평화만을 위해서라면 뭔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지만,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사회와 직장 그리고 그 안의 조직에서 평화를 귀찮음으로 변환하여 조직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니까 문제다. 보호 본능은 자신을 향해야 하는데 해결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상대에게 현상황 유지를 돌리고 돌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 늘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안돼", "이건 광고주가 멍청해서 이해를 못해", "이건 괜한 짓이야", "지금도 괜찮잖아?" 본인이 한번 노력하면 될 것을 주저리주저리 환경 탓을 한다. 이상주의자가 자신으로 하여금 환경을 바꾼다면, 현실주의자들은 철저하게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자신 또한 움직이지 않는다.
현실 vs 이상
현실주의자들은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안다. 본인이 편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다. 가끔 보면 똑똑한 것 같은데 조직에서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비칠 때가 많다.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 요즘 말로 고인물이라고 하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구성원들은 윗사람에게 배워야 할 부분들이 많다. 그렇다고 먼저 다가가기엔 실례가 되지 않을까 망설이는 경우를 나중 가서 대화해보면 하소연에 가깝게 말한다. 먼저 나서서 움직이는 리더형 관리자를 원하지만... 미안해. 현실주의의 고인물들이 너무 많아. 그렇다고 현실적 방안 제시 없이 모든 걸 위에서 해주길 원하며 때 쓰는 구성원도 잘못이다.
믿고 따르는 국장님이 계셨다. 반대 성향에 끌린다는 것이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현실적인 성향이 강한 분이셨다. 그래도 늘 믿고 지지해 주었기에 서로가 발전을 위해 도우며 공존했다. 모든 일이 잘 풀렸을 때는 성취감에 눈이 멀어 보지 못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시기, 같이 담배를 피우면 늘 주위 탓 환경 탓을 하는 국장님과 싸우는 날이 많아졌다. 사이가 나빠져 대화를 안 하는 날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공동의 목표는 같았기에 몰아붙이니 씻을 수 없는 상처의 말을 나에게 했다.
- "나도 이제 지친다. 빽지야. 나라고 오죽하겠냐! 너 이럴 거면 나가!"
- "예?..."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기에 가차 없이 다음날 사직서를 책상 앞에 탁하니 놓고 나왔다. "저 나갑니다."
이 분 때문에 현실적인 사람은 무능력하다는 정의를 내렸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죽했으면, 얼마나 여러 번 현실에 깨져봤으면~이라며 이해하려 한다. 내가 아는 상황보다 모르는 상황이 많을 테니까. 크게 보면 모두가 같은 상황이라도 개개인으로 보면 이해의 정도, 생각, 쌓아온 성향 등에 따라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려 하는 쪽이 바보다. 서로가 도움이 되는 존재라 생각했지만 그건 단지 내 생각일 뿐이었다. 나는 국장님에게 불편한 존재였던 것이다. 가끔 생각이 나는데 좀... 죄송하다.
좀 움직여라
일을 할 때, 무언가 정체된 상황이나 의문이 들면 서로가 논쟁을 펼치기 마련이다. 조직 내 대화에 있어 공감은 배제한다면 논쟁 후 결과는 해결책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쟁은 제로로 돌아간다. "응.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하지만~" 꼭 뒤에 하지만, 그러나, 근데, 상황이, 이래서 저래서 탓하기 바쁘다. 차차 바꿔보자? 차차 바뀐 적 본 적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으면, 인정하였으면 '그래 다시 한번 제시해볼게'라고 하고 하면 깔끔하다. 상대가 여러 번 경험해봤기에 방어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는 건 알지만, 당사자는 이야기로만 들었지, 실제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가능성을 품는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X만아'를 보여주어 당사자를 납득시키거나 반대로 '어? 바뀌네?'가 되면 서로에게 좋은 것 아닌가.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 줘야 서로가 믿고 따를 수 있다.
현실주의자들의 경험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차가울 정도로 냉철한 판단은 보고 배울 점이 많지만, 현실이란 거대한 벽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힘을 합하면 벽을 넘을 수도, 부술 수도 있다. 어쩌면 현실이란 벽을 보여주기 위해 다 같이 갔더니 이미 사라지고 없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