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하는 새끼

1장 : 파노플리(Panoplie)

by 빽지
파노플리(Panoplie) 효과

198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개념이다. 특정 계층에 속할 수 있다는 소속감을 얻기 위해 그것을 소비할 것으로 여겨지는 계층 및 집단과 같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에게 드러나 보이는 것(사치)에 민감한 소비자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심리 현상이며, 광고 마케팅에서 자주 쓰이는 전략 중에 하나로 특정 재화를 쟁취하였을 때 남들보다 외내적(+지적)으로 우위에 선 이미지를 그려보게끔 유도한다. 고가의 명품 패션 브랜드나 외제차, 스타벅스의 공간, 애플의 사과 로고가 ex다.


파노플리는 상류층을 갈망한다

마땅히 어울리는 사람이 특정 브랜드를 애용하거나 특정 위치, 계층,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면 매우 정상적인 상황이지만 모두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럴 리 만무하다. 파노플리 심리는 시기와 질투, 사치와 과시욕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순수하고 올곧은 자세를 기대하기 어렵다. 회사 측면에서 보면 대표적으로 명품 매장 직원의 갑질, 00유업의 대리점 갑질. 대형마트 본사 직원의 갑질이 많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 갑질러들은 크게는 회사, 작게는 바로 위 상사를 대신하여 손님, 점주, 직원들을 관리하는 대표 책임자 역할을 맡는다. 사절단과 같은 이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회사 평판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아무리 매니지먼트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앞세워 갑질이나 하고 있는 모습이 참 어처구니가 없다. 비판받아 마땅하나 방심하지 말라. '나는 안 그래'라고 생각하는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다. 소속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바로 옆 동료보다 고상한 짓을 한다고 자신까지 고상한 줄 알고 아래를 천대하는 멍청이의 이야기다.


'난 너와는 달라', '난 상사고 넌 부하직원이야', '난 회사를 대표하고 넌 그냥 일하는 사람일 뿐이야', '난 정직원이고 넌 계약직이야', '난 너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고 넌 나에게 부탁을 하는 사람이지', '난 돈을 주는 클라이언트고 넌 시키는 일을 하면 되는 대행사야'

회사의 이름을, 직급을, 위치를 앞세워 너보다 내가 위라는 것을 과시하는 사람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당신 위에 또 다른 거대한 무언가가 있을 텐데라고. 그리고 말하고 싶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 결국 누군가에 중간이라고. 자각하라고.


남보다 우위에 있다는 심리. 과거는 외면하고 아래를 보지 않는 심리. 위에서 보는 아래는 한 없이 저급하다. 그래서 파노플리는 상류층을 갈망한다.


위는 편하지만 중간은 힘들다

필자가 속해있는 업계인 광고대행사라는 곳은 갑을 관계에 항상 얽매여 있다 보니 을 마인드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광고주라고 항상 갑 마인드에 찌들어 있는 나쁜 광고주는 손꼽힐 정도인데, 인격을 무시하고 마치 미치광이 프레임을 씌워 조금이라도 자신이 귀찮게 되면 갑질이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다. 파트너로 움직여줘야 할 대행사 사람들이 광고주 한마디에 예스맨이 되면서 뒤에선 호박씨를 까는 을이란 구렁텅이로 스스로 다이빙한다.


갑을 마인드에 사로잡히다 보니 자신이 조금만 윗사람이 되면 무슨 보상심리인지 내부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광고주에겐 을이었다가 내부에선 부하직원의 상사가 되니까 자기들 입으로 미치광이라고 프레임 씌운 광고주보다 더 정신 나간 갑질을 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보자.


"광고주 요청 왔으니까 스토리보드 좀 그려서 디자인팀에 넘겨" - 지는 보지도 않는다.

"2시까지 보내야 하는데 언제 되니?" - 직접 물어보든가 아님 처음부터 데드라인을 말해주든가.

"이거 디자인 왜 이래? 카피 왜 이래!?" - 아까 스토리보드 때 제대로 중간 체크하든가.

"아씨, 광고주가 오타 발견했잖아. 조심 좀 해!" - 보내기 전 너도 검수했어야지 멍청아.


대행사에서 정말 있으면 안 될 내부 광고주의 모습이다. 모든 잡스러운 건 아랫사람을 시키고 자신은 메일만 보내는 정신 나간 상사들의 모습이다. 나비효과처럼 되돌아와 얽혀있는 내부 인원 전체를 마비시킬 때도 있다. 그러면서 항상 꼭 이런 사람들이 "우린 파트너야~ 수평문화야~'를 팀원들에게 외치고 다니는데, 회사의 이념은 저래도 이 사람은 갑을에 찌들어 정신이 피폐해졌기 때문에 절대 믿어서는 안 될 말이다. 공사 구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적으로 친해졌다고 당신에게 일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지시하기 위한 꾀일 뿐이다. 이 꾀에 속으면 정신이 들기 전까지 그의 수발 노릇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오히려 진짜 파트너와 수평문화를 아는 사람들은 상호존중이 수반되는 일 그 자체. 공적인 관계로만 당신을 대한다.


이렇듯 직급으로 누르는 건 한없이 편하지만,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귀찮아진다. 갑을이라고 생각하면 명확한 위치가 생기지만, 파트너라고 생각하면 챙겨야 할 부스럼들이 많아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매 순간순간마다 생존하기 위해, 편하기 위해 상대와 격을 나누고 상대보다 우위에 소속되어 있다고 자위하며 남을 하찮은 나의 을이라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읽고 문제점을 파악한 사람들이라면 중간의 의미를 눈치챘거나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파노플리 심리에 현혹되어 위만 바라보지 말고 아래도 바라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항상 위아래 교집합 소속, 중간임을 분명히 자각하자.


중간이 늘 저지르는 실수

2018년 10월 24일, 이국종 교수님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닥터헬기' 출동과 관련한 고충을 이야기하셨고, 무전기 지원에 대한 한 이야기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어디 기관장님이나 청장님, 장관님 같은 분들은 안된다고 하시지 않으세요. 그분들은 이런 일은 금방 지원해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중간 선에서 다 막힙니다. 누구도 안된다는 사람이 없는데 실제로 전혀 안되고 있습니다. 오만가지 이유를 대면서 핑계가 돼서 찍어 누릅니다."


'와~ 온 사회와 직장생활에 적용되는 핵심 문제점을 꼬집으신 거 같은데?' 라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이 글의 제목이고 핵심인 항상 중간이 문제인 것이다. 중간은 항상 아래 또는 요청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취합된 의견을 위 또는 결정권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이어야 하는데, 항상 위만 바라보고 위만 대변하는 사람으로 착각하며 마치 본인이 결정권자가 된 마냥 행동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 많다. 예를 들어 보자.


"충분히 필요한 건 알겠는데, 우리가 먼저 일 벌이지 말자" - 늘 똑같은 제안이네요. 거긴 아이디어가 없나요?

"기획의도는 좋은데 위에서 컴팩트한 거 좋아하니까 타이틀만 가져가자" - 무슨 의도로 이렇게 쓰신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왜 자꾸 B라고 그래? 위 생각은 A라니까!" - 요청사항 제대로 파악 안 되셨으면 연락을 주셨어야죠.


직장생활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미스다. 의도가 이롭든 아니든 간에 '내가 너보다 그 사람을 잘 아니까 내 말대로 해'라는 커뮤니케이션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 윗사람의 안위를 생각하다 되려 자신이 공격받는 상황이다.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 아래에서 해준 일을 그대로 위에 토스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능력이 없으니까. 제대로 된 중간이라면 아래에서 준 의견을 자신이 한 번 더 벼르고 거른 후 위에다 충분한 설명을 통해 설득을 시켜야 한다.


뭐가 그렇게 눈치가 보여서 윗사람의 안위를 생각하는지, 그 사람을 건들지 않아야 당신의 연봉이 올라가는지,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 남 걱정하다 되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받아 자신만 낙오될 수 있다.


항상 중간. 결국 중간.

사람이라면 남보다 좋은 환경에 놓이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한 본능이다. 그러기 위해서 위를 갈망하고 목표로 하는 순수한 가치 추구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직장 내만 예를 들어도 내가 대표이지 않는 이상 자신을 기점으로 위와 아래 집단이 있고 항상 자신은 그 중간에 소속되어 있음을 직시하자. 위만 대변하지 말고 아래도 대변하는 중간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갑질 이슈를 다시 되짚어 보자. 비판받아 마땅하나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고 있던 게 아닌 지...


영화 알라딘에서 항상 술탄의 위치를 탐내고 권력을 탐내며 아랫사람은 개무시하는 자파에게 술탄이 한 이야기가 있다.

Remember! your place.

나의 주제를 알고 항상 나의 위치를 명심하고 최선을 다하며 발버둥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