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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지 Apr 21. 2024

각자의 문해력은 다르니까.

광고 기획자로 살아남기 1. RFP 해석하기

모든 일의 시작은 첫 단추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부터입니다.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우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간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고 막바지에 가서 갈아엎거나 의도와 다른 결과물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도 있죠. 첫 단추는 어떤 프로젝트든 그 성패를 좌우할 수 있으므로 시작 단계에서부터 정확성과 완성도를 기해야 합니다.


광고회사는 광고주로부터 RFP라는 제안요청서를 받아서 일을 시작합니다. RFP 내용에는 광고주가 진행하고자 하는 특정 과제에 대한 요구사항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과제의 목적과 목표, 시기, 예산, 광고의 형태, 브랜드 또는 제품/서비스 컨셉과 가치, 톤앤매너 등 과제에 따라 제안서를 작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광고회사에겐 광고주의 RFP가 일을 시작하는 첫 단추의 역할을 합니다. 추가로 RFP가 전달되는 동 시기에 OT 회의를 하기 마련인데요. 이때 광고주가 생각하는 중요한 부분들과 의지치들을 교감을 통해 감정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후, 팀원들끼리 모여서 제안서에 담겨야 할 내용을 파악하며 지향점과 지양점들을 구분하는 작업을 합니다. RFP를 통해 광고주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것임과 동시에 팀원들의 의견을 처음부터 모으는 작업입니다. 추후 의견들이 프레임 밖으로 크게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죠.


그러나, 현업에서는 RFP를 해석하는 부분을 스킵하고 바로 본격적인 방향성이나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한 작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모두가 현업 종사자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런 건지... RFP는 알아서들 볼 거고 준비도 알아서들 해오겠지란 암묵적인 룰이 발동하는데요. 십중팔구 의견일치가 안 되는 상태에서 제안서를 작업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각자의 프레임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진지함을 앞세우고 싶고, 누군가는 재미를 앞세우려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각자가 다를 수 있습니다. 광고주가 A,B,C 전부 동일한 포션으로 중요하다 했어도 누군가는 A에 힘을, 누군가는 B에 힘을 더 주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이미 머릿속에 한 편의 광고가 나온 경우입니다. RFP의 대략적 느낌적 느낌만 이해하고 "아, 이런 거 해달라는 거구나. 이런 거 하면 재밌겠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그 무엇도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선 허점투성이 밖엔 되지 않습니다. 팀원들의 동의를 얻을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기사의 헤드라인만 보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했다 하는 것과 같죠.


RFP 해석 없이 바로 방향성 회의나 아이디어 회의로 넘어갔을 때 현업에서 매우 높은 확률로 발생하는 상황들을 크게 세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 예들은 공통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RFP를 봤지만 보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치중되었다는 것입니다. 광고주가 광고회사에게 보내는 일종의 고민을 멋대로 나의 중심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관점이 잘못되었죠. 광고주의 고민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하는데,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키는 것에만 치중이 되어 있습니다. 문해력이란 단어를 해당 글 제목에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문해력은 다릅니다. 그래서 이를 서로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한 것이죠.


첫 번째의 경우, 진지함을 앞세울 수도 있고 재미를 앞세울 수도 있죠.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여태껏 광고주가 어떤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철수란 친구가 내성적인 사람인데, "사람 많은 곳에서 프러포즈를 해보면 어떨까" 제안하는 것은 친구의 성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이죠.


두 번째의 경우, 광고주를 아예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비싼 돈 주고 간 코스 요리 집에 오이는 못 먹으니 빼달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종업원이 저희 가게는 오이가 들어간 요리가 시그니처니까 드셔보시라 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먹어보지 뭐..."가 먼저 생각날까요? "왜 내 요청을 무시하지?"가 먼저 생각날까요?


세 번째의 경우는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대충 광고주가 원하는 내용일 수 있으나 그 속에 상세한 부분들이 빠지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제가 겪은 일입니다만, 광고주는 업계의 클리셰를 탈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제안서와 크리는 그럴싸하게 보였겠지만 디테일한 카피를 놓쳤었죠. 광고주는 이리 질문했습니다. "업계 클리셰를 탈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기에 그에 맞는 크리를 보여주신 것 같은데요. 카피는 업계에서 지나치게 전형적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흔히 광고업계에선 전략이나 방향을 잡고 그 이후에 컨셉이나 테마를 잡아야 한다고 합니다. 혼자 일하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팀단위의 움직임에선 틀렸습니다. RFP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작업을 선행하지 않으면 크나큰 오차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광고주가 원하는 제안서이냐, 내가 하고 싶은 떼쓰기냐가 되는 것이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관점을 바꾸고 광고주의 입장에서 논점을 정확하게 짚어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같이 이해하는 작업은 필수로 있어야 하고요.


문해력이 저하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그 글과 말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개인감정이나 주관대로 지나치게 앞서 나가 단정 지어 버리는 것 때문입니다. 광고주의 입장에서 논지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려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문해력이죠. 퍼스트는 무조건 이것이어야 합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RFP나 OT에서 끝내지 마시고 따로 광고주와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렇게 물어보세요. "저희 팀 내부에서 따로 한번 더 RFP와 OT 내용들을 정리하는 자리를 가졌었는데요. OO내용이 RFP 전체를 관통하는 부분인 것 같더라고요. 맞나요? 그리고 제안 내용과 큰 상관은 없어 보이지만 문뜩 궁금해졌습니다. OO내용을 말씀 주신 이유가 과거에 이런 경험이 있으셨던 것 같고 앞으로 나올 서비스도 이렇게 예상되는데요. OO까지 기대를 해볼 수 있는 것인가요?"


"그게 바로 저희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생각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제안 기대하겠습니다."



광고주가 광고를 만들고 싶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때깔 좋고 좋은 광고? 굳이 광고대행사를 통해서 만들어야 할까요?


감정적 연결. 광고주를 이해하려고 하세요. 고민을 듣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광고가 훨씬 쉬워지고 기획이 입체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 힌트는 RFP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머리나 인터넷에 있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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