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나'라니. 일개 국민이 대통령으로부터 자연인으로서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받는 바가 과연 있을까. 하물며 지구 반대편에 사는 재외국민으로서야 말할 것도 없겠다. 반대의 경우는? 반도의 남녁으로부터 얼마가 떨어져 있든지간에 '힌 표'라는게 있으니 국민은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일상에서야 상호 상관관계는 너무나 멀다. 아주 오랜 옛날 구중궁궐 저 깊은 곳에 전설과도 같은 신비한 존재여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는 교실에 들어서면 칠판 위에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때는 어딜가나 우러러봐야 하는 위치에 '대통령 각하'가 있었고 그 존재는 늘 우리 삶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캐나다에 사는 동안 모국의 대통령이 내 삶에 훅 등장(?)하는 때가 몇 번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 열기가 뜨겁던 때, 나역시 재외국민의 입장에서 관심을 가졌었다. 그 어느날, 직장에서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너네 나라에서는 요즘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냐?"
허걱, 아...엄...에또...그러니까 설레무니... 나는 급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쓰바, 나는 주입식 교육의 수혜자로서 이런 주관식 질문에 약하다고! 거기다 영어로 해야한다면? 아, 누군가 지나가다 나를 향해 넘어져 줬으면 싶었다. 이 모두가 대통령 탓이야.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탄핵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누가 납득하겠냐고.
그런 넌센스를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한 대통령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이역만리에 살며 열심히 살아가는 재외국민을 힘들게 하는 대통령은 나쁘고말고. 그는 결국 권좌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날, 아직 잠을 떨구어 내지 못한 얼굴을 매만지며 라디오를 틀었다. 익숙한 새벽 다섯시 뉴스를 알리는 시그널이 끝나고 뉴스가 시작될 때. 엥? 그런데, 이거슨? 나으 모국어가 아닌가??? 캐나다 공영 방송에서 왠 한국어? 그들은 그날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한 정상회담을 첫 뉴스로 다뤘고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대목으로 시작한 것이다.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전혀 뜻하지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들리는 모국어는 사뭇 뭉클한 법이다. 집을 나서서 운전을 하는내내 왠지 모를 훈훈함의 여운이 느껴졌다면 너무 비약일까.
시간이 지나 우리 모두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다. 무관하게 갈 수 있었는데 나로선 기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정치중독? 내가? 너무도 특이하고 이례적이라서, really? seriously? 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다가 그만 늪에 빠져버린 형국이었다. 한국의 정치뉴스에 과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어느날 결심했다. 한국 뉴스를 끊기로.
흔히 해외에 나가 사는 사람들 꼴불견 1위로 꼽히는 게 바로 이런 경우로 알고있다. 해외에 살면 거기서 적응하고 살 궁리를 해야 마땅한데 몸은 그곳에 있으면서 맨날 한국 정치 뉴스 들여다보고 빠삭하며 이러쿵 저러쿵 말 많은 사람들. 철학자 강신주의 말도 떠올랐다. 흔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해결하지 않아도 될 정치문제에 몰입한다고.
한국 뉴스를 끊기로 한 것은 처음은 아니었는데 끊었다가 다시 피우기를 반복하는 흡연자처럼 내가 그랬었다. 음력 설을 계기로 다시 한번 굳게 결심한 터였다. 나는 모르는게 나은 정도를 넘어서 기꺼이 모르고자 하는 것이며 나아가 몰라야만 한다! 보고 있으면 욕하면서도 본다는 막장드라마처럼 재미를 느끼는 가운데 동시에 열불이 난다. 아무튼 내 정신은 진작부터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결심 후 고작 며칠이 지났을뿐인데 한참 지난 것 같다. 묘한 허전함이 있기도 하고 한가한 평화도 느껴졌다. 아들과 밥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럼 엄마 카이스트생 이야기도 모르겠네?"
"어 몰라. 무슨 일 있어?"
사연인즉슨, 현 대통령이 참석한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삭감된 R&D 예산을 복원시켜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재빠르게 되물었다.
"근데 또 입 틀어막았어? 들고 나갔고?"
정확히, 바로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나는 어찌 그리도 잘 아는 것인가.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일인데도 말이다. 아직 물이 빠지려면 멀었다. 나는 더 몰라야 한다. 애써 눈 가리고 귀 닫고 더욱 적극적으로 모르고 싶다 철저히 모르련다아~~!
우습게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대통령의 행보에 밀착되어서 빠삭해본적이 내 평생 처음이다.
No thank you, Mr. toxic presid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