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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Jun 26. 2024

첫째 아이의 뉴질랜드 적응기

심심해도 어쩔 수 없어

첫째 아이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을 한 달 다니고 뉴질랜드에 왔다. 뉴질랜드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분들은 어린 둘째보다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의 적응을 더욱 걱정하였다. 


첫째는 어떤 아이냐 하면, 하고 싶은 거나 사고 싶은 것은 바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고, 감정 기복이 있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개성이 뚜렷한 아이다. 학원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편의점 음식을 사 먹기도 하고, 주말에는 상점이 모여있는 번화한 곳까지 가서 마라탕, 탕후루, 음료 사 먹고, 올리브영에서 화장품 쇼핑을 하고, 코인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다이소에서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예뻐 보이는 예쁜 쓰레기들 사는 것이 취미인 아이였다. 


언젠가 학교에서 요리 실습을 한다고 했던 날은 매일 지각하던 아이가 새벽같이 친구들과 만나 학교 정자에서 떡볶이며 부침개며 여러 가지 요리를 직접 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는 버너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면서. 학교 꿈끼 발표에서는 코믹댄스로 친구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 친구들에게 우리 애 학교에서 어떠냐고 물어보면 코디미언 같다고 했다. 지난겨울에는 아파트 단지 비탈길에서 친구들과 눈썰매를 타다가 밤 9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새해를 맞이하는 12월 31일에는 친구들과 새해를 맞이하겠다며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 정자에서 밤 12시 넘게까지 친구들과 있었던 아이다. 한국을 떠날 때는 아파트 단지에 친구들이 몰려와 울고불고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첫 공개수업 때, 반 전체 친구들이 모두 발표할 때 부끄러워서 결국 끝까지 발표를 못해 학부모들이 쟤는 왜 발표를 안 하냐며 웅성웅성거리게 했던 아이인데, 몇 년 사이 어쩜 이렇게 변했는지 신기할 노릇이었다. 사실, 난 그런 변화가 싫지는 않았지만 걱정은 되었다.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핸드폰 사용도 많이 하고 거친 말도 사용하는 것 같고, 또 밤늦게 다니거나 번화한 시내에 갔다가 상급생들에게 안 좋을 일을 당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내심 뉴질랜드에서 조금 컴다운~ 하게 변하기를 기대했다. 


첫째 아이는 이곳 학제로 중학교 1학년이다. 첫 주 학교에 갔을 때, 처음에는 여러 친구들이 말을 걸며 관심을 보였지만, 곧 영어로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의 관심은 금방 식었고, 결국 혼자서 밥을 먹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니 집에 데려가라는 학교 전화를 받기도 했다. 아마, 다들 끼리끼리 어울려 놀고 밥 먹을 때, 자신은 혼자라는 스트레스 때문이었겠지. 혼자 밥을 먹기 싫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울먹이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한국인 친구 두 명을 사귀게 되어, 그 친구들과 같이 등교하교 플레이데이트(친구 집에서 노는 것)도 하고 친구 가족을 따라 일요일에는 교회도 간다. 학교에 안 간다고 안 하고 잘 다니는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하다. 이곳에서는 아이들끼리 돌아다닌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도 매우 제한적이고, 대중교통도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일단 유흥거리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또, 모든 게 비싸기 때문에 아이는 소비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첫째 아이는 하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나 베이킹을 하거나 친구들과 게임을 한다. 며칠 전에는 저녁에 칼림바 소리가 나서 봤더니, 아이가 혹시나 해서 한국에서 챙겨 온 칼림바를 어디선가 찾아서 연주하고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네가 많이 심심하긴 하구나. 


이 글을 첫째 아이가 보면 난리 날 텐데. 아이에게 브런치는 비밀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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