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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티 Jun 17. 2020

트라이얼 앤드 트라이얼 2

운명의 라멘집

일련의 사건 이후 나의 구직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강한 트라우마로 인해 없던 외국인 울렁증까지 생길 것 같았다. 거기다 있던 돈 마저 거의 바닥이 보이니 그동안 철칙처럼 여겼던 오지잡은 포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자꾸 삐죽삐죽 들었다. 물론 후에도 몇 군데 이력서를 넣고 실제로 QVB에 괜찮아 보이는 카페에 트라이얼을 하긴 했는데, 반나절 동안 그냥 세워놓기만 하더니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끝내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굉장히 유명한 한인 음식점에서 바로 옆자리에 새로 차린 고깃집에 이력서를 넣고 트라이얼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한인 가게를 기피했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등바등 어떻게든 한인 일을 피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는 임금 문제였다. 노동자라면 사장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결국엔 나 잘되자고 일도 하는 건데, 당시 호주 최저임금이 세전 15불이었음에도 한인 가게는 평균적으로 시간당 현금 10불씩 지급했다. 심지어 가게에 따라 9불, 8불까지 내려가는 곳도 있었다면 믿으실까?


그리고 현금 지급이 더 낫지 않은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일단 세금 신고를 할 때 수입이 없다는 거짓말을 해야 하고 이로써 양심의 가책을 얻는다. 그렇다고 해서 현금 수익을 그대로 신고하면 세금이 떼이는 불상사가 나타나 실수령액은 시간당 10불 아래가 될 수도 있다. 즉, 이렇게 현금으로 임금을 지불한다는 것은 탈세를 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기다 임금 관련 제일 어이없는 갑질은 디포짓이라는 정책인데, 1-2주 치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묶어놓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직원은 3주 차부터 주급을 받는데, 이마저도 퇴사 시 문제가 없을 때나 받을 수 있고 직원 과실로 인한 퇴사의 경우 한 푼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여기에 유니폼이 있는 가게는 유니폼 비까지 직원에게 걷었다. 실제로 S의 경우 디포짓, 유니폼 비는 물론 밀린 임금이 쌓여서 3,000 달러 가까이 되는 돈을 퇴사 후에도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리고 특이하게 이 가게의 경우 시급도 최저에 꽤 근접했기 때문에 한 번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트라이얼을 갔다. 그런데 왠지 데자뷔 같지 않은가? 여기서도 나는 점잖은 버전의 '깽판'을 치고 나왔다.


일단 가게에 도착하니 젊은 매니저가 나를 맞아주었다. 간단하게 인사 겸 가게 투어를 했는데, 그 와중에 알게 된 것은 가족 운영 가게라는 것, 그리고 이 매니저는 이민 2세이기 때문에 영어가 편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썩 좋은 조합 아니었지만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색안경을 쓰기 싫어 일단 시키는 일이나 잘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쩜 이렇게 나쁜 예감을 딱딱 들어맞는지.


처음 맡은 일은 설거지가 갓 끝난 수저가 식기 전에 물기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본죽 알바와 엄마 가게에서 이미 연마한 기술이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빨리빨리, 그리고 반짝이게 열심히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직원이 나타나 누가 이런 식으로 하라고 가르쳤냐고 물었다. 시니어 급으로 보이는 20대 초중반 남성이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나 질문을 던져 살짝 황당하였지만, 정신을 차리자 뭔가 이상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저를 닦는 것이 왜 가르칠 정도의 일인지 궁금했고, 젖은 숟가락을 마른행주로 깨끗하게 닦아 가지런히 놓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궁금했다.


이 직원은 나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더니 사라졌고, 몇 분 후 나는 불필요한 지적으로 인해 불쾌한 마음으로 수저 닦기를 마쳤다. 다음 시킨 일은 주문받기 및 서빙이었는데 이번에는 가게 사모가 문제였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일을 발견하면 나타나서 앞뒤 없이 소리를 꽥 지르는 성미가 고약한 여자였던 것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일을 가르쳐 줄 생각은 전혀 없이 당장 일어난 실수만 지적하기 바쁜 형편없는 사장이었다.


결국, 이 가게는 어떤 체계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직원을 일 시키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에는 결단을 내렸다. 여기도 내가 깽판 한번 쳐주기로. 하지만 저번과는 달리 이성을 잃고 싶지 않아서 집에 가기 전 매니저에게 전달한 말을 머릿속에서 계속 정리했다. 트라이얼이 끝나고 매니저는 트라이얼 잘했다며 선심 쓰듯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나는 이때다 싶어 준비한 말을 했다. 너희 가게는 일하고 싶은 맘을 들게 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여기서 일하 않을꺼야. 그리고 몇 마디 묻는 말에 솔직히 답한 뒤 가게를 나섰다.


이쯤 되자 시드니는 정말 있으면 안 되는 곳처럼 느껴졌다. 현지인이나 동향인이나 다들 불쌍한 워홀러들을 착취하려는 나쁜 놈들 뿐이었다. 내가 인터넷에서 배운 호주는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생각했고 경솔하게 결정을 내린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구직에 임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에 찾은 집은 라멘집이었다. 일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나름 '원조' 일본 라멘집이었는데 구인 공고에 보니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았다. 일단 다문화 업무 환경이라는 점, 또 고객은 모두 현지인이기 때문에 영어를 연습할 기회가 충분해 보이는 것이 좋았다. 물론 꿈꾸던 오지잡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일하는 느낌이 날 것 같아 인터뷰가 잡히고 다시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인터뷰는 일본인 매니저인 H와 봤는데 젊은 30대 중반 남성으로 인상도 나쁘지 않고 친절했다. 인터뷰 중에는 아무래도 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받았는지 바로 트라이얼이 잡혔는데, 앞서 고배를 마신 이력 때문에 괜히 걱정되는 마음이 앞섰다. 거기다 시급도 세전 12불 정도로 최저에도 못 치는 시급이어서 약간 고민했지만, 그 마저도 이제는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에 일단 트라이얼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렇게 며칠 후, 트라이얼 날이 되어 나는 또 한 번 낯선 가게에 발을 들였다. 이 날은 가게 사장도 만날 수 있었는데 콧수염이 있는 4-50대 일본인 남성이었고 티브이에서 나오는 일본 순사처럼 생긴 남성이었다. 거기다 친절한 매니저와 다르게 호통을 소통으로 생각하는 이였기 때문에 일하면서 기분이 좀 꿀꿀하기도 했는데, 그것 외에는 따로 흠잡을 곳이 없었다. 무척이나 바쁜 가게였기 때문에 시간도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모두 처음 일하는 날 성심껏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전에 트라이얼 했던 가게들과는 다르게 나 자신이 가게에 왠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트라이얼 후 나는 구직에 성공했다. 매니저는 내게 바쁜 날이었고 처음인데도 열심히 잘해주었다며 같이 일해보자고 했다. 물론 순사 아저씨가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가게라는 생각에 나도 흔쾌히 수락했다. 그 후로 나는 3개월 좀 안되게 일하고 농장으로 떠나면서 가게를 그만뒀는데, 사실 이 가게와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시드니가 내 집이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걸 보면 역시 인생은 선택으로 만들어진 우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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