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에도 종류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통증과 내가 알지 못 하는 통증. 나는 몇 년간 섬유근육통으로 고생하면서 전자의 통증을 무시하는 요령을 터득했다.
내가 알고 있는 통증의 예시는 이런 거다. 손목 바깥쪽의 쓰라린 신경통, 잠을 못 자고 피곤하면 생긴다. 허벅지가 쑤시는 통증, 오래 앉아있으면 생긴다. 허리의 뻐근한 둔통, 역시 눕지 못 하고 오래 활동하면 생긴다. 뒤통수의 경추성 두통, 목을 마사지하고 자세를 바로잡으면 나아진다. 그 외 어깨 무릎 손가락 관절통 등등.
내가 전부 겪어보았고 나아진 경험이 있으니, 또 언젠간 낫겠지 낙관할 수 있다. 사실 작년에도 여기저기 관절통으로 보호대와 소염진통제 신세를 지긴 했으나 크게 겁먹지 않았던 이유가 그거였다. 그런데 이 통증은… 뭐지?
그때 나는 통증의 분류에 한 가지 종류가 더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겪어보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통증.
10분만 앉아있어도 엄지발가락부터 시작해 왼쪽 다리의 감각이 점차 사라졌다. 저리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고 잠들기 전에는 불타는 것처럼 쓰렸다. 딱 배꼽을 기점으로 그 아래 하반신은 전부 아팠다. 통증은 대중 없이 변화하고 옮겨다녔다. 맞아,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내가 이 브런치를 딱 만들 무렵에 그렇게 아팠다. 처음 올린 글에 이런 단락이 있었다.
허리에서 꼬리뼈로, 꼬리뼈에서 골반으로, 골반에서 허벅지, 종아리, 발, 어깨, 목… 탈진한 마라토너의 다리처럼 근육통과 경련을 느끼다가도 돌연 대상포진 환자처럼 허벅다리가 불타는 듯한 신경통을 느꼈다. 룰렛을 돌려서 당첨 칸에 화살표가 걸리듯, 아침에 일어나면 룰렛을 돌려 무작위로 고른 것처럼 대중없는 통증이 찾아왔다.
미친, 재발은 안 돼. 제발요….
앉아서 밥도 먹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서서 잠깐 밥을 입에 넣다가 허리가 아파지면 누워서 쉬고, 다시 서서 밥을 먹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은 아예 누워서 고구마나 감자만 먹었다. 식사도 하지 못 할 정도였으니 일상생활은 당연히 모두 정지되었다. 하루에 도합 30분도 앉을 수 없었다.
뭐라도 챙겨먹으려고 간단한 요리를 하고 나면 허리가 아파서, 누웠다가 식은 밥을 먹어야 했다. 마침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재발하여 먹는 대로 쏟아내는 중이었다. 위대장이 그저 통로인 것처럼.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 하니 체중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허리디스크가 터진 거라고 생각했다. 디스크 탈출증과 너무나도 유사한 양상의 통증이었다. 다리로 이어지는 방사통, 허리와 엉치의 통증, 감각 저하와 힘빠짐.
병원은 지긋지긋했지만, MRI를 확인하고 뭐든 치료를 받아야할 것 같았다. 집 근처에 척추관절전문병원이 있었다. 목, 허리를 본다는 의사로 예약했다. 의사는 엑스레이상으로는 괜찮아보이지만, 증상이 디스크와 유사하니 MRI를 찍어보자고 말했다.
MRI 판독 결과, 내 디스크에는 놀랍게도 별 문제가 없었다.
약간의 섬유륜 파열이 있으나 신경다발을 누르는 방향으로 파열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퇴행성 디스크가 있는데 심한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이 정도로 아플 허리가 아니다, 일단 진통제를 먹어보자는 의사에 말에, 나는 진통제 2주치를 바리바리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문제가 되는 요통부터 조금 가라앉히고 싶었다. 도수치료를 받고 침을 맞으며 나는 허리병자의 정석 루트를 따르기 시작했다. 정선근 교수의 유튜브를 찾아보고 <백년허리>를 읽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며 침상안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