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간단하게 엑스레이를 찍었다. 디스크 문제처럼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전부터 신세 지던 물리치료사 선생님에게 찾아가 일주일에 2번씩(이나!) 도수치료를 받았고,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운동도 집에서 열심히 따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운동이라기보다는 간단한 스트레칭에 가까운 거였지만.
어쨌든 몸의 근막을 이완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소염진통제를 계속 복용하자 통증은 호전되었다. 감각 이상도 서서히 나아져서, 12월 무렵에는 예약해두었던 신경외과 진료를 취소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아진 통증하곤 별개로 나는 몹시 초조했다. 앞으로의 인생 계획이 백짓장이 되었다. 주변인들은 잠시 쉬면서 몸을 정비하라고 했지만, 쉬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소속된 곳이 없어서 불안했다. 대학생도 아니고, 알바생도 아니고, 취준생도 아니라는 게 힘들었다. 남에게 날 소개할 때 뭐라고 말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무턱대고 알바를 구했다. 동시에 취업 관련 프로그램을 알아보았다.
그게 1월 경이었다. 알바몬과 알바천국에 이력서를 써대며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신청서를 넣었다.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이모티콘 제작 수업을 신청하고, 블로그 체험단을 다니며 매일 포스팅했다. 자격증을 따고, 토익 문제집을 풀고, 국내 여행 일정을 잡았다. 주 4회씩 수영을 다니고 매일 8천 보를 걸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의욕적이랬다. 갓생을 산다고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만회하고 싶었던 것 같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있을 자격이 없으니까(사실이 아님).
꽉꽉 찬 캘린더
그렇게 산 결과, 2월 초부터는 허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졌다.
재발의 기미가 읽혔으나 나는 애써 무시하며 일상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이 생기면 공포심에 잠을 설치고 항불안제를 털어넣었다.
그렇게 무서우면 좀 쉬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쉬어도 불안하고 움직여도 불안하다면 움직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왜 그랬을까.
예정해둔 여행을 가던 시점엔 이미 오래 앉기가 어려워져 있었다. 2월 중순, 이상고온이 전국을 덮쳐 유래없이 따뜻한 겨울날이었다. 나는 4시간 걸리는 기찻길 내내 도무지 앉아있질 못 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결국 일어나 화장실 앞을 서성거리고 열차의 복도를 걸으며 시간을 떼웠다.
여행을 다녀오고 반쯤 탈진했으나, 할 게 많았다. 국취제 상담을 마치고 학원을 알아보았다. 하루에 학원 두 군데를 상담하는 일정.
첫 상담을 무사히 마치고 두 번째 학원에서 앉아서 상담을 받던 도중, 심상치 않은 통증이 느껴졌다. 허리 중간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으로 앉아있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서서 상담을 받았다. 당장 4월이 개강인 수업이었다.
그때까진 어떻게든 되겠지. 낙관하며 일정을 강행하던 벌을 받는 듯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돌아오는 내내 주저앉고만 싶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뉘였지만,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 큰일났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