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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Jul 15. 2024

보육실습을 중도포기했다

실습하다가 허리 나간 후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지난 10월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10월, 나는 모 어린이집에서 보육실습을 시작하였다. 4학년 2학기였고,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진짜임) 장애영유아교사 선수과목을 전부 수강한 뒤 실습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솔직히 자신 없었다. 내가 체력적으로 열등하다는 사실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하지만 딱 실습 6주만 버티면 현장으로 가지 않더라도 사무직으로 취직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눈 딱 감고 한 달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나는 좀처럼 참을성이 없고 쉽게 포기하곤 하니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출처: Unsplash의 BBC Creative


나는 영아반에서 실습하게 되었다. 영아반은 반 전체에 매트를 깔고 좌식 생활을 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바닥에 앉아 생활한 첫 날, 나는 내가 보통 좆된 게 아니었음을 직감했다. 본래 허리가 약한 나에게 좌식 생활이란, 견딜 수 없는, 의지력으로 견디는 것이 불가능한 생활양식이었다.


옛 선조들은 어떻게 좌식 생활을 했던 걸까? 허리 아픈 개체는? 도태되었나?




어린이집은 집에서 15분 거리였으나, 귀가하면 바로 드러누워야만 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부실한 점심식사로 굶주린 채였지만, 식사하려면 최소 30분은 누워있어야 다시 앉을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난 서류 작업은 잘 했다. 보육일지를 순식간에 써버리고 다시 누웠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 왔다.


일주일 일하고 주말이 되자,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허리가 그냥 아픈 게 아니라, 좀 이상했다. 왼쪽 다리가 무거워서 다리를 절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한쪽 다리를 저는 건 그닥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과거 19년도에 아플 때도 골반이 뻣뻣해지며 걷기 힘든 증상이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엄지발가락에 감각이 없었다. 발목 아래가 내 살이 아닌 것처럼 무디고 얼얼했다. 또 종아리는 얼마나 땅기는지. 심상치 않았다. 좀 아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평소처럼 아픈 것인지 아니면 내게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난 후자라고 생각했다.


뭐야, 내 척추 돌려줘요...


퇴근하고 간단한 식사와 서류 작업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누워있어도 요통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감각 이상, 저림, 힘 빠짐 등의 증상만 늘어갔다. 난 겁에 질렸다. 통증의 트리거가 눌리면 다시 예전처럼 아프게 될지도 몰랐다. 그건 죽어도 싫었다.


부모님과 상의했다. 엄마와 아빠는 실습을 중단하라고 했다. 나는 싫어서 엉엉 울었다. 아프고 아파서 학교를 졸업하는 데 8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또 아파서 그 8년이 무용지물이 된다. 자격증이 없으면 졸업의 의미가 없는 학과. 20대 후반의 나이. 더 물러설 곳이 없는데.


그럼에도 6주를 버티는 게 불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실습 2주차, 왼발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대로 한쪽 다리를 쓰지 못 하는 상태가 되는 것보단 실업자가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양해 끝에 나는 보육실습을 중도포기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대학에서 연계해준 원이었다. 몸도 몸이지만, 대학과 어린이집에 민폐를 끼쳤다는 자괴감이 컸다. 책임을 지고 싶었으나, 도저히 몸이 받쳐주지 않았다.


결국 실습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실습을 그만두게 되었다. 실습을 위해 고르고 골랐던 앞치마와 덧신, 이름표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이제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아니 애초에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그런 물음이 꼬리를 물었다. 난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 자기비하적 예언은 반쯤 들어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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