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재택근무의 위험성
영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오기 전,
코로나 덕택(?)에 일본에서 다니던 회사에서 풀 재택근무로 일을 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남편의 영국행이 확정되었고, 그만둔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부장님께 상담을 했더니,
영국에서 프리랜서로 일 해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하여 정말 운 좋게도 영국에서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부서가 바뀐 것도 아니고, 내가 영국 땅으로 온 것 말고는 변동 사항이 없었기에,
별로 변하는 게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본 내에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줄었다.
일본과는 시차가 7-8시간이나 있어, 내가 일을 시작할 아침이면 다들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 고객 대응이 필요한 일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던지 하는 일들이 늘었다.
고객 대응을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물질적으로 못하게 되어 버리니 참 서운했다.
남들이 들으면 참 좋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10-20분 정도 일본 쪽과 화상전화로 업무 파악/지시를 받고 그 이외에는 딱히 나를 책상에 묶어두는 일이 아니라 자유도가 엄청나게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 치이는 일이 없어서 사회생활로 받는 스트레스가 제로인 게 최강의 장점.
일하다가도 스트레스받으면 장 보러 나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고 와도 눈치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근데 나는 무지 외롭다.
일본에 있는 팀원들이 보고 싶고, 그나마 다행히 현재는 남편도 재택근무 중이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곧 있으면 남편도 오피스에 출근을 해야 하고, 그땐 정말 벽보고 말하면서 일해야 할 판이다.
딱히 회사를 가도 말을 많이 하는 건 아니었지만, 영국에서 락다운도 겪고, 1년간 사회생활 다운 사회생활을 못한 나는 일상적인 대화, 친숙한 얼굴들이 그립다.
이래서 몇 달 전에는 심각한 클럽 하우스 중독에 빠져 2달 정도를 거의 클럽 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했다.
몇 주 정도는 랜덤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이도 한계가 있는 터라 요즘은 음악만 틀어놓고 일하다가 망상에 빠진다던지 하는.. 궁상을 떨고 있다 ㅋㅋ
솔직히 내가 이렇게 사람을 고파 할 줄은 몰랐다,
내향적인 성격이고 완전 집순이 중에 집순이인 나는 웬만하면 약속도 안 만들고 집에 있으려고 하는 사람인데, 1년간의 재택근무는 나를 조금은 바꿔놓은 듯하다.
그래서 이직을 생각해야 하는 건가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 편한 직장 왜 그만두냐 라는 게 우리 남편의 의견, 나도 극히 동감한다.
이보다 편해질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을 계속하면 영국에서 혼자 벽만 보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언젠가 영국을 떠날 것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든다. 그리고 이 느낌은 소심했던 나의 30년을 돌아본 결과 백프로다.
이렇게 까지 생각하면서도 영국에서의 취업이 망설여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영국에서 산지 1년이 되었지만, 기나긴 락다운 덕에 정말 집에서"만"살았던 1년이었다.
문화적 차이, 영국식 영어 등 거의 뉴스나 유튜브 등을 통한 간접적인 것 들이었고, 직접적인 경험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영국에서의 취업이 조금은 모험처럼 느껴진다.
아직까지 클린 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영국 현지에서 취업을 하는 것으로 더 마음이 기울었다.
소심이의 영국 적응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