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심동체? 동상이몽 .
비록 그렇게 눈치가 너무나도 없게,
너 없어도 못 사는 건 아니고, 우리는 이제 만났을 뿐이고
예전 여자친구들은 굳이 마음 아프게 할 필요 없고
나와 지금 함께하는 건 너니까 자존감 낮게 기분 나빠하지 말라는
이상하고 요상한 이야기로 변명을 하면 할 수록 여자 맘을 갈기 갈기 찢는 남자였으나.
다른 장점도 많았다.
일단 내겐 다정했고, 꼬인 구석이 없었다. 심플하고 잘 웃고, 내가 의도하는 대로 잘 따라와줬다. 그리고 가장 크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두 가지 있었는데,
첫번째, 나와 웃는 포인트가 이상하게 같았다. 내가 크게 웃으면 그도 크게 따라 웃었다. 거의 어긋남이 없이 매번. 그래서 나는 내가 행복한 한, 이 사람도 행복하게 할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함께 재미있게 여행다니면서 둘이 잘 살 수 있겠구나.
두번째는, 내가 독신주의자였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었던 문제, 자신의 원가족으로부터 정신적 독립이 되었는가 의 문제가 있었다. 나는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독립이 된 사람, 만약 그것이 힘들다면 독립할 의향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여 새 가정을 꾸리길 원했다. 말 그대로,
기존 둥지를 떠나와 우리의 새로운 둥지를 만드는 것. 그게 내겐 결혼의 의미였다.
그러려면, 한국에서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특히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독립이 이미 되어 있거나 , 적어도 나를 만나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가 그래 보였다. 자신의 어머니는 어떤 여자와 자신이 결혼을 하든지간에 상관 않을 거라고, 니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며 쿨하게 반응했다 하셨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 남자의 툭 던진 말이 내 심금을 울렸다.
난, 끝까지 마누라 보고 살거야. 자식보고 마지못해 살지 않고 .
그 다음 달, 난 그 남자 집에 인사를 갔다. 그리고 말 그대로 결혼 허가가 아닌, '인사' 의 느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결혼 준비에 착수했다.
우리의 결혼은 조금 특이했는데, 모든 것을 우리가 정했다.
예식장, 결혼 날짜, 스드메는 어찌할지, 청첩장은 어찌할지,
웨딩 촬영은 없었다. 우리 둘의 셀프 스냅 사진으로 대신했다.
예단이나 양가 집안에 오가는 돈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양가 댁에 똑같이 200만원씩 한복 해입으시고 결혼식 오시라고 드리고, 축의금은 모두 결혼식 비용으로 충당하고 혹시라도 남으면 우리가 갖기로 했다. (남지는 않았지만)
대신, 양가 집에서 도움은 최대한 받지 않았다. 게다가 주례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랑 손을 잡고 동시 입장을 할 것이었다.
주례의 축사 대신, 우리 둘의 결혼에 대한 서약서를 읽을 예정이었다.
양가 집안이 합쳐지는 그런 전통적인 결혼식이 아닌,
그 남자와 나, 우리 둘이 진행하고 실행하는 결혼식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그 남자와 내가 모두 정하고 나서야 양가 부모님 상견례를 주선했다.
양가 부모님은, 둘이 잘 살기만 하면 된다고 이러한 결혼 진행에 아무런 불만이 없으셨다.
요즘 세상에 결혼은, 둘이 하는 거지 옛날처럼 무슨 가문의 결합도 아니고
그 남자의 집이 제사를 1년에 열 번 넘게 지내는 집이라는 걸 처음 알긴 했지만, 시어머니 되실 분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시며 말씀하셨다. 그 제사 내가 다 없애고 며느리한테 절대 물려주지 않을 거라고. 걱정 마시라고.
나는 그 당시에는 흔치 않던 이런 현대적이고 남녀평등적인 (?) 결혼을 하게 된 것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그리고 남편과 둘이 원가족으로부터 잘 독립해서 즐겁고 알콩달콩하게 살기만 하면 되겠다고 들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신랑 손을 잡고 동시입장하여,
신랑과 결혼 서약서를 읽고 그의 아내가 되었다.
물론, 모두가 동상 이몽이었음을, 그 결혼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각기 '다른 꿈' 을 품어왔다는 것을, 결혼 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혼 후에도 그 남자는 여전히 '도덕적이고' '올바른 말' 들로 여자를 서운하게 했고,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지만, 매우 성실한 남편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연애 시절 '열정 없음' 이라는 단점이 결혼 후에는 '변치 않고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남자' 라는 장점으로 변하여 안정적인 결혼 상대자로서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