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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07. 2023

첫째 아이, 그리고 친정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던 그 때,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첫째 아이가 생겼다. 거의 허니문 베이비였다. 그 때부터였다. 나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직 신혼이란 신혼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한 어리숙한 부부

처음 사위라는 사람을 맞이한 미숙한 나의 부모, 

게다가 첫 손주를 맞이하게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신 철 없는 친정 부모

거기에 사랑하는 아들의 여자를 맞이한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큰 딸이자 내 남편의 누이 


이들의 합주와 욕망이 얽히고 섥혀서 그야말로 '대합주' 를 이루어내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시끄러운 내멋대로 오케스트라 중,
첫째 파트는 우리 친정 부모님이었다. 

내 오빠는 24살때 죽었다. 내가 11살 때였다.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며 지옥 속에 살던 우리 엄마는, 11살 딸의 절절한 위로를 들으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엄마, 엄마 울지마, 그만 울어. 
내가 나중에 시집가서, 오빠 같은 든든한 아들 낳아 줄께. 


그 때 그 어린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내가 했던 말인데도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엄마가 밤낮으로 울부짖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지옥을 헤매이고 있는 엄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아서 그런 말로 엄마의 울부짖음을 잠재우려 했던 것일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어머니는 딸의 약속대로 튼튼한 '아들' 을 얻게 되었다. 


문제는 , 그 아들이 사실은 '나의 아들' 이라는 데 있었다. 


나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나의 아들을 엄마에게 맡기고 일을 나갔다. 국내 2대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나는 그 직장을 포기하면 절대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의 아이는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일을 하러 나가면서 커리어 우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즈음, 엄마와의 싸움이 잦아졌다. 


내 집에 들어와서 우리 집 살림과 첫째 아이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나의 친정 엄마와, 실제 그 집의 주인이자 아이의 엄마인 나와의 충돌이 잦아졌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 즉 할머니가 그 역할을 계속해서 헷갈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그 집의 주인이 자신이라 생각했고, 그 아이도 자신의 아이인 것 마냥 그 아이의 엄마와 양육방식에 대해 시시콜콜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간섭 정도에 그쳤다면, 아마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 도가 점점 지나쳐서, 급기야는 그 아이의 엄마인 '나' 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르게 되었다. 


애를 왜 이렇게 키우니? 
애가 모기가 물렸어 , 애를 어떻게 이렇게 방치하니? 
집안 살림이 이게 뭐니? 수건은 왜 바닥에 놓고? 
아니, 귀한 애를 왜 이렇게 막 키우니??? 
애는 이렇게 키우면 안된다. 
이런 거 먹이면 안된다. 
너는 애를 잘 못 키운다
나가서 일하고 돈이나 벌어라 


점점, 나의 위치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지 서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 집안의 주도권은 할머니가 쥐고 있었고, 아이의 엄마도 할머니가 되고 있었다. 

아이의 열이 나면 나는 아이를 돌보는 보모인 양, 할머니로부터 질책을 받았고, 

남편의 생일에는 할머니가 미역국을 대신 끓여 오셨다. 


어느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겉으로는 내가 아이의 엄마이자 남편의 아내였지만, 



실제 역할은 우리 엄마인 친정 엄마,
내 아이의 할머니이자 , 내 남편의 장모인 
우리 엄마가 내 삶과 가정의 주도권을 모두 쥐고 있었다. 


나는 그저 '좋은 직장 다니며' '돈 벌어오는' 제 2의 남편이나 다름 없었고, 

내 가정의 모든 대소사는 우리 엄마가 좌지우지 하면서 가정 내에서의 '엄마로서 ' '아내로서'의 나의 역할은 점점 없어졌다. 


그렇게 내가 가정 내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나의 엄마와 결별하더라도 내 자리를 되찾아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 날부터 나의 가정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친정과의 2년 동안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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