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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10. 2023

엄마와 딸, 그 힘든 독립

  - 두 여자. 

엄마, 이제 내 살림 내가 할께. 
엄마는 다른 사람처럼 '손님' 처럼 오셔서 대접 받으세요. 
제 살림에 간섭 그만 하시구요.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온 날, 엄마는 폭발하셨다. 

아마도 '손님' 이라는 말 때문이었을 것 같다. 니가 어떻게 나를 밀어내냐며, 네 아이를 키워주고 집을 돌봐주고 너에게 헌신한 나를 '손님' 취급하느냐며 난리가 나셨다. 


물론, 우리 친정 엄마의 이런 난리 배경에는 우리 가족의 힘든 사연이 있다. 

우리 엄마는 막내딸이 11살일 때, 다 키워놓은 24세의 건장한 청년이었던 아들을  잃었다. 어이없게. 

그 이후로 매일 매일을 지옥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 어린딸의 인생이 남아 있어 힘든 하루하루를 붙들고 살아내고 있는 중이셨던 와중에, 첫 '아들같은' 손주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찰나였다. 


바로, 그 때. 딸이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면서, 엄마에게 '비켜달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니!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엄마의 모든 말들이 아프게 가슴에 박혔다. 

너무나도 죄송했다. 너무 큰 죄책감에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이면 험한 꿈에 깨어났다. 

하지만 너무나도 밉고 싫었다. 내 삶을 이렇게 방치해둔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가져가버린 엄마가. 


그러나, 나는 찾아야 했다. 

내 아이의 '엄마' 자리를. 

그리고 내 남편의 '아내' 자리를. 


진정으로, 내가 있어야 할 나의 자리를
나는 찾아 되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그 힘든 시간들을 남편을 붙들고 버텼다. 

내 아들을 보면서 버티어 냈다. 

사회적 역할, 커리어적인 면으로서는 한 발 물러나지만, 그렇게 내 아이의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한 뼘 더 인간으로서는 성장하는 길일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그 시절 경험하기로 선택한 것은 


내 아이의 '엄마'가 되는 길, 바로 그 경험이었다. 


아이를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못하는 살림을 다시 배워 누군가의 '아내'가 되며, 못하는 요리를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직접 먹이는 것. 매번 반찬은 맛이 없고, 살림은 서툴고, 육아는 더 서툴러서 엉망진창인 초보 엄마에 초보 살림꾼이었지만, 내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것. 


내 가정을 내 스스로 일구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경험이었기에, 엄마와의 독립은 불가피했다. 

매일 울고불고 딸에게서 버림받았다 생각하는 친정엄마를 이를 악물고 버티어냈다. 

그래도, 내 살림에는 이제 더이상 간섭하지 않도록, 내 남편과 나의 삶에 더 이상 너무 깊이 들어오지 않으시도록, 이제 조금 한 발짝 물러나서 '예의바르게' ' 어렵게' 행동하시도록 만드는 거리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쓰느라 탈진할 지경이었다. 


한국에서는 참으로 더욱 더 힘든, 이런 '엄마와 딸' 의 애착관계. 

내가 이제껏 했던 이별 중, 그 어떤 사람과의 이별보다도 더 힘든 것이 바로 '우리 엄마'와의 이별 , 이었다. 


이별은 관계의 재설정을 의미한다. 

물론, 남녀간의 이별은 서로 '남남'이 되는 것으로의 관계 재설정을 의미하지만, 혈연간의 이별은 적당한 거리를 찾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나의 삶의 주도권을 침해받지 않을만큼의 거리를 찾고 서로 인정하고 합의하기 위한 '그 거리'를 위한 이별을 했다. 


그리고, 만 2년이 넘게 걸렸다. 

엄마가 딸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데. 사랑으로 포장된 통제욕을 놓는 데. 

딸이 엄마를 놓아주는 데.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포장된 또다른 엄마에 대한 통제욕을 놓아버리는 데. 

만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딸은 딸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무엇을 하든, 그저 행복하게만 살아라. 


마지막 인사같이 느껴질 수도 있던 그 말에서, 나는 이제 우리가 다시 만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는 딸에 대한 집착을 놓았고, 딸도 엄마에 대한 집착을 놓았다. 

그동안 두 여자가 각자의 환경에서 좀 더 성장하여 이제는 서로 엄마와 딸이 아닌, '두 여자' 로 인간적으로 다시 관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딸은 엄마를 다시 만날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찾아갔다. 

예상대로, 관계는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서로에 대한 통제 욕구가 잦아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려는 마음이 좀 더 깃든 관계가 되었다. 

 

딸은 자기 삶에 통제권을 되찾았고, 

엄마 또한 자기의 진짜 삶으로 되돌아갔다. 

두 여자가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며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림출처: 네이버 이미지> 



하지만, 여자가 넘어야 할 산은 친정 엄마 뿐이 아니었다. 

둘째를 낳고 , 다른 문제가 다시 더 큰 문제로, 더 어렵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엄마와딸

#친정엄마

#애착관계

#딸의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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