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엄마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남편과 시어머니께 전적으로 의지했다.
남편은 다정했고, 시어머니 또한 우리 엄마와는 달리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 그래서 나는 둘째를 임신했을 때 힘든 몸을 이끌고, 친정 대신 시댁에 2주씩 내려가서 밥을 얻어먹고 몸을 겨우 쉬이곤 했다.
하지만, 시댁은 시댁인지라 맘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던 건 사실이었으나, 시어머니는 다른 여느 시어머니와는 다르게 밥을 차려주시고, 먹어라 먹어라 다정하게 대해주시고 안타까이 여기셨었다. 남편과 비슷한 성품이어서 내가 이런 성품에 반해서 결혼했나 싶을 정도로 그저 따뜻하게 느껴져 '내 엄마'였으면 좋았겠다. 라며 남편을 내심 부러워했다.
그러나, 시댁은 시댁이다.
결혼으로 인한 계약관계일 뿐, 진정한 나의 가족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시댁은 신랑의 가족임을.
나에 대한 그 다정함이 깨지기 시작한 시점이, 어머니가 생각한 그 '바운더리' 를 내가 넘는 순간이었다. 즉, 내가 우리 친정 엄마와 독립을 위해 결별 과정을 겪고 있는 기간, 내가 신랑과 나의 새로운 세계를 위해 결혼했다는 것을 우리 친정엄마에게 알리는 기간이었다.
시어머니의 바운더리는 아들의 결혼이 '아들과 며느리' 그 둘만의 세상인 그것이 아니었다. 그 둘의 세계에 시댁 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과 시댁 식구들과 친척들까지 끈끈하게 한 가족으로 묶이는 어떤 그런 대가족의 개념이었다. 대부분의 모든 부모님 세대가 그렇듯이,
우리집에 며느리가 들어온 것이었다.
내가 우리 친정과 독립을 꾀하자, 그 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시어머니의 간섭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를 내 친정 어머니와 화해하게 하려고 계속 설득 아닌 설득과 관리, 체크를 해오셨는데 참다 못한 나는 어느 날 정중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어머니, 걱정하시는 맘은 알고 있지만, 이건 제 친정 어머니와 제 문제에요.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것 만큼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냥 제게 맡겨 주시면 좋겠어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거든요.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서운해 하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니가 알아서 잘 하겠지, 니 엄마인데 니가 어련히 잘 하려고, 그런데 사람으로 다친 마음, 사람으로 치료해야지 어쩌겠니. 전문가들이 다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웬만큼 하고 엄마한테 집안 살림 좀 봐달라 해라.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사람으로 다친 마음, 사람으로 치료하는 건 맞지만, 그것을 위해 내가 더이상 희생할 마음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
그 대물림을 나의 대에서 끝내기로 결심했기에.
엄마를 위로하는 역할은 내 선에서 끝내야 내 자식들에게 넘어가지 않을 터였다.
그 뒤로 시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예전 살갑던 관계에서 조금 변해갔다. 나는 시어머니의 간섭이 조금씩 불편해졌고, 시어머니는 무언가 자신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 며느리가 불편해진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어느날 부터인가 시어머니는 계속해서 '친구 며느리' 이야기로 내 상황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 며느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어머니 주위에 내 상황과 너무 똑같은 며느리들이 많았고, 그들에 대해 어머니가 공격을 퍼붓기 시작해서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날 가장 가슴 아픈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꽃혔다.
친정 엄마의 분노를 한바탕 얻어먹고 난 날이었나, 너무 힘들지만 나는 독립을 해야겠고 몸이 힘들어 버거워하니 신랑이 시어머니를 호출해서 우리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내 친구 며느리가, 그리 유별나단다. 오죽하면, 지 친정 엄마랑 그리 사이가 안좋단다. 얼마나 애가 별나면 지 엄마랑 사이가 안좋겠노? 안그나? 지 친정 엄마랑 사이 안좋고 안볼 이유가 뭐가 있느냐 말이다. 애가 그리 별나니 내 친구가, 그냥 자기 인생 살라고 애들 놓고 나가버렸음 싶단다. 그냥 애들은 내 친구가 아들하고 키우면 되지, 그 별난 며느리가 뭐가 이쁘겠노. 안 그러켔나 애가 그리 별나면?
그냥 애 놓고 나가서 지 새 인생 찾았음 싶드란다. 요즘엔 다 그러칸단다.
며느리가 뭐가 이쁘겠노, 사실. 내 아들한테 잘하라고 잘해주는 거지. 안 그나?
앞에 앉은 친정 엄마와 사이가 안좋아져 연락도 못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똑같은 상황에 처한 '친구 며느리' 이야기를 하며 내 두 눈을 쳐다보며 강력한 동의를 구하시던 그 날,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 버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아이들은 내가 키워내는 경험을 아무리 힘들어도 직접 해내기로.
친정, 시댁 그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아이들의 엄마는 내가 직접 되기로.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고되더라도 말이다.
만화를 아이들과 보다가 마음속에 든 생각.
저 못생기고 뚱뚱한 자두 엄마가 되더라도,
우아하지 못하고 , 생활에 찌들더라도
일단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야겠다.
그렇게, 살림 못하는 여자의 살림기, 육아 못하는 여자의 육아기, 고난이 시작되었다.
지금 보면 어쩌면 행복, 어쩌면 행운일 그런 , 그 당시에는 너무도 힘든 모든 것이 처음인 경험들로 일색인데다가 기댈 곳 하나 없는 힘든 여정이었다.
나의 사회적 이름, 성취, 그리고 나의 이름을 모두 버리고
"ooo 엄마" 로 살아가는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건, 결코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장도 없고, 소속도 없고, 그저 '누군가의 엄마'로서의 익명의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아이는내가끝까지키워낼께요
#이를악물게된순간
#엄마가될께
#내가정의주인이되기로
#그날굳은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