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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리스는 어디에 - 아테네

by 파랑새의숲

피레우스 항구에 새벽 1시에 떨어졌다. 배 시간이 그렇게 되어 있길래, 아테네로 가는 차편이 많겠지... 했으나!

아무것도 없다...

택시를 타야 한다. -_-;

간신히 20유로나 주고 택시를 타고 아테네로 향하는 길. 택시 기사 아저씨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정치 썩을 놈들, 도둑놈들, 정치를 그따위로 해서 지금 그리스 금융 위기가 온 거 아녜요. 지들은 돈 쌓아놓고 살면서 Fuck! "

.... 무서웠다. 차도 엄청 막히고, 빵빵 거리는 차들에 복잡한 시내.


숙소를 잡으러 여기저기 다녀봐도 싼 곳은 방이 전부 찼다. 힘들게 물어 물어 간 Student & travellers inn.

내가 방 있냐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손님과 주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엄청 흥분한 주인은 손님의 얼굴을 주먹으로 쳐 버렸다...... 뭔 일이래.. 이게.... 왜 주먹질이야 이 야밤에..


손님은 경찰을 부르라고 난리다. 나는 멀뚱히 겁먹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흥분한 주인은 미안하지만 오늘은 손님을 못 받겠다고 씩씩거리면서 미안하다고 한다.


새벽 2시경, 배낭 멘 어리바리 배낭객은 그렇게 아테네 거리에 버려졌다. 어쩔 수 없이 하룻밤 50유로나 하는 호텔에 들어가서 씁쓸한 마음에 맥주를 들이켜고 잠들었다. 어째.. 시작부터..


이 도시는 화난 사람들로 가득한 것 같지...?


아침에 일어나니 내 방에서 아크로 폴리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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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 왔으니 제일 먼저 가볼 곳은 아크로 폴리스. 대리석 기둥은 참 튼튼하고 웅장하나, 날이 정말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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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극장. 그런데 보수를 너무 심하게 해 놓아서 그런지, 새것 같다.

나는 터키의 닳고 닳은 원형 극장이 더 끌린다... 원형 극장을 그렇게나 좋아하는데도, 저 안에는 들어가 앉아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시내가 모두 내려다보이니 참 좋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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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항상 나왔던 그 파르테논 신전.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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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사 중이다. 그리고.. 사진 한 컷에 다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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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진 한 컷으로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웅장한 것을 기대했었는데, 이런.. 사진에 너무 잘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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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언덕, 아크로 폴리스에서 내려다본 아테네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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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문명의 시작점이 되었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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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은 사각. 기둥 많은 성냥갑같이 생겼다. 왜 이렇게 감흥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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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서 올려다본 아크로폴리스는 조금 신비롭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그런가 파르테논 신전 밖에 없다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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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되어 닳은 석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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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무 덥고, 이상하게 감흥이 없었다... 뭔가.. 허전해. 그리스가 이게 다는 아닐 것 같은데..

아테네는 무덥고, 사람들이 화가 나 있고, 정신없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라며 수블라키를 먹을 때만 잠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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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빠져 허전한 마음에 상수형에게 전화를 해서 조잘조잘 더워 죽겠다고 수다를 떨고 나서야 기운이 조금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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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라는 이미지를 꿈꿔왔구나. 꿈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니 조금 허무하더라.

사람들도 생기가 없이 그냥 서울의 바쁜 도시인들이다...

뭘 보냐고. 내가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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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들만 남은 제우스 신전. 기둥 하나가 저~엉~ 말 크다. 고대에는 웅장한 신전이었음을 기둥의 크기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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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웅장함은 이제 다 어디로 갔나. 그리스에는 그런 허무함만 감돌았다.. 난 오랫동안 그리스를 꿈꿔 왔는데..


그 환상이 벗겨지는 순간이랄까. 아테네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답고 신비한 도시가 아니었어..

제우스 신전을 보며 가장 좋았던 건, 바닥에 기어가는 30년은 더 되어 보이는 늙은 거북이를 발견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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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다. 빨리 로마로 가고 싶다..라고 종종거리며 로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만을 학수고대했으나, 비행기에서 100 mil 넘는 내 새 화장품들을 고스란히 모두 뺏겨버렸다. 정찰가로 20만 원어치는 뺏긴 듯.


규정을 어긴 건 나이기에 할 말은 없지만,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드라이한 말투, 그리고 내 가방을 말없이 뒤지는 태도가 나를 더 열받게 만들었다. 가방에 있는 걸 다 꺼내보라고 명령하듯이 시킨 후 빤히 쳐다보는 눈을 콕 찔러 주고 싶더라. 그러니 "It's not allowed."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럼 어쩌라고?"로 대응했다. 역시 감정과 태도 문제다...


환상과 현실은 이렇게 다를 수 있다.


기대하지 않았으나 여행할수록 놀라고 즐겁고 다양한 볼거리, 사람들의 친절함으로 나를 놀라게 했던 터키.

정말 기대했으나 뭔가 포장되고 인위적이라 그리스인들의 특유의 장사 속에 속은 것 같다는 느낌의 그리스.

나는.. 터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기대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사람.
겉만 화려하고 뭔가 텅 빈 것 같은 사람이 되긴 싫다.


이를 악물면서 그리스를 떠났다.

안녕, 다시는 아테네는 안 올 거야. 환상 깨 줘서 고마워.


#세계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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