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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17. 2023

나의 그리스는 어디에 -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 새벽 1시에 떨어졌다. 배 시간이 그렇게 되어 있길래, 아테네로 가는 차편이 많겠지... 했으나! 

아무것도 없다... 

택시를 타야 한다. -_-; 

간신히 20유로나 주고 택시를 타고 아테네로 향하는 길. 택시 기사 아저씨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정치 썩을 놈들, 도둑놈들, 정치를 그따위로 해서 지금 그리스 금융 위기가 온 거 아녜요. 지들은 돈 쌓아놓고 살면서 Fuck! " 

.... 무서웠다. 차도 엄청 막히고, 빵빵 거리는 차들에 복잡한 시내.  


숙소를 잡으러 여기저기 다녀봐도 싼 곳은 방이 전부 찼다. 힘들게 물어 물어 간 Student & travellers inn. 

내가 방 있냐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손님과 주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엄청 흥분한 주인은 손님의 얼굴을 주먹으로 쳐 버렸다...... 뭔 일이래.. 이게.... 왜 주먹질이야 이 야밤에.. 


손님은 경찰을 부르라고 난리다. 나는 멀뚱히 겁먹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흥분한 주인은 미안하지만 오늘은 손님을 못 받겠다고 씩씩거리면서 미안하다고 한다.  


새벽 2시경, 배낭 멘 어리바리 배낭객은 그렇게 아테네 거리에 버려졌다. 어쩔 수 없이 하룻밤 50유로나 하는 호텔에 들어가서 씁쓸한 마음에 맥주를 들이켜고 잠들었다. 어째.. 시작부터.. 


이 도시는 화난 사람들로 가득한 것 같지...?  


아침에 일어나니 내 방에서 아크로 폴리스가 보인다.  


아테네에 왔으니 제일 먼저 가볼 곳은 아크로 폴리스. 대리석 기둥은 참 튼튼하고 웅장하나, 날이 정말 덥다..  


원형 극장. 그런데 보수를 너무 심하게 해 놓아서 그런지, 새것 같다. 

나는 터키의 닳고 닳은 원형 극장이 더 끌린다... 원형 극장을 그렇게나 좋아하는데도, 저 안에는 들어가 앉아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시내가 모두 내려다보이니 참 좋긴 하다.  


교과서에 항상 나왔던 그 파르테논 신전.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공사 중이다. 그리고.. 사진 한 컷에 다 잡힌다....  


난 사진 한 컷으로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웅장한 것을 기대했었는데, 이런.. 사진에 너무 잘 잡힌다.  


높은 언덕, 아크로 폴리스에서 내려다본 아테네 시내.  


그 옛날 문명의 시작점이 되었던 지역.  


신전은 사각. 기둥 많은 성냥갑같이 생겼다. 왜 이렇게 감흥이 없지..?  


내려와서 올려다본 아크로폴리스는 조금 신비롭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그런가 파르테논 신전 밖에 없다는 게 아쉽다.  


정말 오래되어 닳은 석상들.  


하지만 너무 덥고, 이상하게 감흥이 없었다... 뭔가.. 허전해. 그리스가 이게 다는 아닐 것 같은데.. 

아테네는 무덥고, 사람들이 화가 나 있고, 정신없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라며 수블라키를 먹을 때만 잠시 행복.  


뭔가 빠져 허전한 마음에 상수형에게 전화를 해서 조잘조잘 더워 죽겠다고 수다를 떨고 나서야 기운이 조금 회복된다.  


나는 그리스라는 이미지를 꿈꿔왔구나. 꿈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니 조금 허무하더라. 

사람들도 생기가 없이 그냥 서울의 바쁜 도시인들이다... 

뭘 보냐고. 내가 신기해?  


기둥들만 남은 제우스 신전. 기둥 하나가 저~엉~ 말 크다. 고대에는 웅장한 신전이었음을 기둥의 크기가 말해준다.  


그런데, 그 웅장함은 이제 다 어디로 갔나. 그리스에는 그런 허무함만 감돌았다.. 난 오랫동안 그리스를 꿈꿔 왔는데.. 


그 환상이 벗겨지는 순간이랄까. 아테네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답고 신비한 도시가 아니었어.. 

제우스 신전을 보며 가장 좋았던 건, 바닥에 기어가는 30년은 더 되어 보이는 늙은 거북이를 발견했을 때였다.   


지루하다. 빨리 로마로 가고 싶다..라고 종종거리며 로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만을 학수고대했으나, 비행기에서 100 mil 넘는 내 새 화장품들을 고스란히 모두 뺏겨버렸다. 정찰가로 20만 원어치는 뺏긴 듯. 


규정을 어긴 건 나이기에 할 말은 없지만,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드라이한 말투, 그리고 내 가방을 말없이 뒤지는 태도가 나를 더 열받게 만들었다. 가방에 있는 걸 다 꺼내보라고 명령하듯이 시킨 후 빤히 쳐다보는 눈을 콕 찔러 주고 싶더라. 그러니 "It's not allowed."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럼 어쩌라고?"로 대응했다. 역시 감정과 태도 문제다... 


환상과 현실은 이렇게 다를 수 있다. 


기대하지 않았으나 여행할수록 놀라고 즐겁고 다양한 볼거리, 사람들의 친절함으로  나를 놀라게 했던 터키. 

정말 기대했으나 뭔가 포장되고 인위적이라 그리스인들의 특유의 장사 속에 속은 것 같다는 느낌의 그리스. 

나는.. 터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기대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사람. 
겉만 화려하고 뭔가 텅 빈 것 같은 사람이 되긴 싫다. 


이를 악물면서 그리스를 떠났다.  

안녕, 다시는 아테네는 안 올 거야. 환상 깨 줘서 고마워.


#세계여행기

#그리스여행기

#유럽여행기

#아테네여행기

#퇴사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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