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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18. 2023

그토록 그리던 도시, 로마 그리고 남부 도시들

- 친구와의 동행 

꿈에 그리던 로마에 도착했다. 


소매치기가 득실득실 많다는 곳, 가장 매력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 콜로세움과 판테온이 건장하게 서 있는 곳. 무엇보다 외로웠던 그리스 여행을 끝내고, 내 친구가 한국에서 오기로 하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한 곳.  드디어 로마에 왔구나.. 난 사실 파리와 로마를 오기 위해서 이 긴 여행을 시작한 거나 다름없다. 


이대로 차일피일 미루다 가는 평생 못 갈지도 몰라..라는 다급한 마음. 죽기 전에 '천지 창조' 꼭 봐야 해.  

그렇게 오랫동안 꿈꾸던 도시, 로마에 도착했다. 


터키에서 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로마는 그 도시 자체가 유적이다. 또 다른 느낌의 웅장함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어떻게 한 도시 전체가 이렇게 통째로 유적일 수 있는지 가는 곳곳마다 역사가 말 그대로 '살아 숨 쉬었다'. 



으슥하다 싶은 밤길도 이상하게 친숙하고..

콜로세움을 보면서 아이고~탄성이 그냥 나온다.. 내 생각보다 더 크고 웅장했다. 


그리고, 상상보다 더 아름다웠다. 


내가 죽기 전 꼭 방문하고 싶었던 도시,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찬미하는 도시.. 로마다. 

나는 어느새, 꾸밈없는 밝은 웃음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친구가 함께 머무는 3박 동안, 우리는 자전거 나라의 투어를 신청했다. '철인 3종 경기'라 불린다는 바티칸 투어, 남부 환상 투어, 그리고 로마시내 투어. 그 첫날 바티칸 투어. 투어는 내 체질에 맞지 않지만, 시간이 짧게 방문한 친구와 함께 많은 곳을 돌아다녀보기로 결정하고 빠르게 훑어보기로 했다. 


바티칸에 들어가자마자 커피를 먹으며 부푼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냥 뛰어놀면서 사진 찍느라 바빴던 듯. 




난 원래 사진을 많이 찍는 것보다 눈에 담아두는 걸 선호하는 편이지만, 여기서는 순간순간이 아까운지라 사진 찍는 데 엄청 열중했다. 


물론, 한 컷에 담기지 않는 웅장한 건물들과 그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사진에 담아두는 건 한계가 있었지만.. 


몇 천 년 전의 조각상들을 내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죄송) 



아직도 그립다. 내 묵은 체중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듯한.. 

파란 하늘.. 



웅장한 성 베드로 성당.. 



건축물에 압도당한다.라는 느낌. 

로마는.. 며칠 머물다 갈 곳이 아니구나..... 머릿속으로 내 일정을 긴급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정말 놀라운 곳이야...  난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었는지... 

친구와 밤 게스트 하우스에서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내일에 마음이 또 가득 설레었다. 


두 번째 날, 남부 투어. 폼페이 , 소렌토, 아말피 해안, 포지타노를 하루 만에 훑는 힘든 코스. 어제 하루종일 바티칸 투어를 받느라 살짝 지쳤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정말 맛있는 1유로짜리 카푸치노가 있어서 금세 원기 회복된다.  


13년 전, 이탈리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국제 브랜드가 몇 개 있었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커피 전문점, 피자헛 같은 피자 전문점이나 아이스크림 전문점 (배스킨라빈스 같은..)을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커피, 피자, 젤라토의 원산지가 이탈리아기 때문에 맛이나 가격에서 경쟁이 안되었기 때문이겠지.  

로마 떼르미니 역 내가 좋아하는 MONO 커피숖의 1유로짜리 환상 카푸치노.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차를 타고 폼페이로 향하는 길. 저 멀리 문제의 화산 '베수비오' 산이 보인다. 

사람들은 저 산이 활화산인지 모르고 그 밑의 동네 폼페이에 마을을 이루며 살다가 참변을 당했다. 

하나의 큰 도시를 덮어버린 산 치고는 너무 잔잔하고 고요해 보이는데...  


멀리 보이는 산이 베수비오 산. 폼페이의 메인 광장에서 본 전경. 도시가 놀라울 정도로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이상하다는.. 음식을 팔던 바, 화려한 목욕탕, 마차가 다니던 거리의 바닥에 패인 자국들, 창녀촌에 그려진 음란한 그림과 낙서들까지, 옛사람들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사람의 신장이 약간 작다는 것뿐. 죽을 때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한 남자. 허리띠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전에 사진으로 볼 때와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더 강렬했다고나 할까. 


살아있는 동안 '제대로 살아야지' 
시간이 내게 많지 않아. 


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러면 '제대로 사는 것'은 무엇일까... 내 나름의 정의는 '응당 느껴야 할 감정들을 솔직하게 느끼고, 표현해도 되는 감정들은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사는 것'이다. 즉, '나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고, 자신에게 솔직하게 사는 것'이랄까.  


현실에서 살다 보니, 가장 둔화된 것이 바로 이거였으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사회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내가 원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남이 내게 바라는 것을 내가 바라고 있다고 오해하고, 부모님이 내게 바라는 것을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것, 남들이 내게 바라는 것,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기대. 이것들을 고려하지 않을 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걸 알아내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물론 현실에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역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사회나 외부로부터 온 것인지 항상 생각하며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은 필요하다. 또한 사회와 외부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을 충족한다고 해서 내가 정말 행복해질 것인가.. 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노력도 항상 해야 한다.  


나폴리 바다를 보면서 생각했다. 


모든 외부 요건들을 모두 뺐을 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 다시 현실로 돌아갔을 때, 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롭게 내 생각을 지켜낼 수 있을까.  


물론. 왜냐하면.. 지금까지 나는 착한 외동딸, 공부 잘하는 학생, 일 잘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사회적 역할은 충실했으나, 그다지 마음의 여유로움은 느끼지 못하고 뭔가 끊임없이 결핍되고 빠져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뭐가 빠져있지?라고 한참을 고민해 보니..


 정작 '나'라는 인간이 내 삶에서 빠져있었다.. 

내가 원하던 걸 한 번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못했구나, 남이 원하는 대로만 살았었구나.. 

내가 원하는 걸 하니, 모든 걸 버리고 떠나와도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구나. 



소렌토, 아말피를 지나 포지타노.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의 밀애장면이 파파라치에게 포착되어 유명해진 곳.  와아~ 난 포지타노가 정말 마음에 든다. 이런 걸 절경이라 하는 거지!  


정말 눈부시다. 아름과 '너무 예쁘다~~~'를 연발에 연발.  


한눈에 봐도 그림 같은 집들이 그냥 좌라락~ 산자락에 붙어있다. 비싼 펜션들이 줄지어 있는 듯. 

개인적으로는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의 리조트들보다, 포지타노의 저런 집들이 더 예쁘고 좋다.  


화려한 색감의 그림들이 걸려있는 갤러리들도 많고, 예쁜 샵들도 많아서 눈길 떼기가 어렵다.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내가 계속 느낀 것. 


'육체는 아름답다. 올바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 느낌의 시초가 된 아름다운 여자 나체 그림. 관능미 짱! 이탈리아에서는 왠지 이런 게 '야하다' 보다는 '너무 아름답다' 또는 '자연스럽다'라는 느낌.  


나도 이때부터 조금 과감해진 듯? 내 몸을 이용해서 맘껏 놀기 시작했다. 유머와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자유로운 이탈리아.  


온몸의 틈이 보일세라 꽁꽁 싸매고 다녔던 터키에서 입었던 옷도 벗어버렸고, 이제 파격적인 유럽 옷을 한 벌 장만해서 입고 다녀볼까?라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 아~~~ 자유롭다.  


포지타노에서 하루 더 보냈으면 좋겠다.. 나중에 신혼여행 이런데로 오면 정말 좋겠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던 정말 아름다운 곳.  


물론, 열심히 살았기에 이런 시간이 꿀맛같이 달콤한 거겠지. 지중해의 바람은 정말 산들산들 부드럽더라.  


이탈리아 사람들은 스스로의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돌아오는 길. 정말 예쁜 석양을 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사진을 찍어대자, 가이드분이 말씀하신다. 

"사진에 안 나와요. 그냥 눈으로 보세요."  


그러네... 내 생애 최고로 예쁜 노을을 본 날인데, 사진에는 저렇게 흐리멍덩하게밖에 안 찍히네.. 

그래도 내 마음에 잊히지 않는 노을을 남긴 이탈리아 고속도로.


#유럽여행기

#퇴사여행기

#이탈리아여행기

#로마여행기

#이탈리아남부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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