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가는 열차를 탄 기차 안에서, 나는 한 명의 백인을 만났다. 굳이 백인이라 칭한 이유는 그가 흑인 한 명과 같이 동행해서 눈에 확 뜨였기 때문인데, 그 흑인은 유난히 몸집이 크고 험상궂게 생겨서 그 희고 검은 두 명이 내 옆과 앞 좌석에 앉아 내게 어디 가냐고 말을 걸었을 때, 나는 살짝 졸았다.
스위스로 가. 어릴 때부터 동화책에 나오는 나라 같아서, 내 생에 힐링하러 꼭 가보고 싶었거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 백인은 내게 자신은 몽트뢰?로 간다며 거기는 꼭 가봐야 한다고 적극 추천을 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이 앞에 앉은 자신의 덩치 큰 험악한 흑인을 보고 움찔하며 지나가자 나를 보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참 무지해. 겉만 보고 판단하지.
저 사람은 겉은 검지만, 속은 아주 하얗다고.
나도 그의 덩치와 Black 한 색깔에 잠깐 겁먹었던 터라, 지금은 하얗디 하얀 가지런한 이빨을 내놓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그 '속이 하얀' 그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내가 너무 겉모습에 쉽게 이끌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스위스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겉보기에 정말 너무나도 찬란했다.
맑고 푸른 잔디밭하며, 깨끗한 공기.
꿈에 그리던 알프스. 기차를 타고 다니며 너무너무 좋았다.
동화책 여주인공처럼 누워서 뒹굴러 보기도 하고,
밝은 웃음을 되찾아 맘껏 웃기도 했다.
여기서는 단체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들과 잠깐 합류해서 같이 다녔었는데,
그들의 여행이 잠깐 무엇을 위한 것인가.. 생각해보게 했다.
여행은 많은 다른 목적과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관광, 시야를 넓히기, 나의 내면을 만나기, 친구들을 만나기, 추억 쌓기, 가치관을 확장하기... 등등
그런 점에서 30대와 20대의 여행은 같은 곳을 여행하더라도 목적이 다를 수 있구나를 느꼈다.
나의 여행은 내 내면을 만나고,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었지만,
20대 친구들의 여행은 말 그대로 세계를 만나는 여행이었다.
그 어떤 것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서 있는 각자의 위치가 다르므로.
난 그들의 밝은 젊음, 깔깔대며 끊임없이 눌러대는 셔터 소리가 좋았다. 내 20대에는 왜 저런 활기참이 없었을까, 잠시 그들을 부러워하다, 내 사진도 끊임없이 담아주는 그들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20대인 그들과 함께 다니며, 나의 20대를 추억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알프스에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그림 속에서.
그리고, 한 여름인데도 조금 추위를 느꼈던 것 같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같이 깔깔대고 놀고, 사진 찍고 즐겁게 뛰어다니다 보니 내 삶에서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느껴졌다.
즐거운 시간들, 그것이 심하게 결핍되어 있었다.
또한 친구들, 이 없었다.
같이 다니는 시간을 쓰는 동료들 말고,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 말이다.
그것도, 내 주변에 내가 마음을 열려고 마음만 먹으면 들어줄 사람들이 많은데, 왜 마음을 닫고 살았을까를 고민해보게 했다. 나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내 그 답을 찾아냈다.
혼자 있고 싶어서.
왜냐하면,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에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내 진정한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상대가 일어나서 나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아니면, 그저 동정으로 연민으로 듣다가 '아 맞다 내 일이 아니지' 라며 잊어버릴 것 같은 허무함이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태도들로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 날 밤, 숙소에 돌아와 어린 친구들이 찍어준 해맑과 즐거웠던 나의 사진들을 보면서, 아름답고 청명했던 스위스 풍경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 그만큼 , 너무도 소중하여 쉽사리 내놓지 못했던,
차마 잊힐까 두려워 꽁꽁 숨겨놓았던 나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혼자 가슴속에 꽁꽁 동여매어 놓았으나, 사실은..
진정으로 이해받고 중요하게 여겨지고 싶은 깊은 욕구가 있음을,
그 알프스에서 20대들과 함께 젊게 뛰놀며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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