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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29. 2023

베른, 제네바, 그리고 루체른

 - 스위스 여행 

베른은 정말 인상적인 도시였다. 


말 그대로 동화 속에 나오는 곳처럼 아름다웠고, 강물 색깔부터 하늘까지도 너무 인상적이었다. 오후 네 시에서 네시 반만 되면 문을 닫는 동네 가게들부터, 너무나도 정갈하고 깔끔하던 유스호스텔들까지. 


도시에서 부유함이 넘쳐흘렀다. 


지나가는 나를 양들이 구경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받았고, 



맑고 차가운 강, 그 가운데서 한적하게 카누를 타거나 , 집에서 바로 걸어 나와 수영을 하는 모습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나도 곰도 신났던 것 같다. 

거리를 신나게 거닐다가 들어간 한 음식점에서, 평생을 베른에서 살아왔다는 젊고 세련된 커플을 만났다. 그들은 내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너는 그런 것 같지 않아서 묻는다면서' 질문을 했다. 


왜 한국 사람들은 태양을 두려워해?? 

무슨 말인고 하니, 얼마 전 니스에 여행을 갔는데 그 아름다운 해변에서 어느 동양인 여자들이 양산을 쓰고 앉아 있더라 했다. 그래서 왜 태양 알레르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취업 면접을 앞두고 있어 살을 태우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응? 취업 인터뷰랑 살결이 하얘야 하는 건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이해가 가지 않는 그 베른 커플에게 그 한국인 여성은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한국은 까만 살결을 가지고 있으면 취업에서 불리해. 일은 안 하고 놀러 다닌다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야. 뽀얗고 깔끔한 살결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그 베른 부부는 내게 그게 진짜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태닝 한 피부를 '일 안 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겨서 취업에 불리한 거냐고. 


오 마이갓.. 국제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고..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막상 그 말이 무작정 틀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면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아, 그게... 설명하기 좀 복잡한데,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야. 


라고 넘기니,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너네 진짜 개고기 먹니?? 정말로?? 


아니 아니, 보편화된 건 아니라고. 예전 풍습이 그런 게 남아있는 거지 모두가 개고기를 먹는 게 아냐. 


너네는 정말 1년에 휴가 며칠 안 쓰고 일만 하니? 한국에서는 공부가 중요하다고 들었어. 공부든 일이든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할 수가 있어? 안 피곤해? 


난 어떤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내 케이스를 얘기해 줄 수 있었을 뿐. 

대화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참 씁쓸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겠지? 





제네바로 떠났다. 제네바는 굉장히 특별한 도시다. 프랑스어가 쓰이고, 무엇보다 UN 이 있는 굉장히 활동적인 도시였다. 

호수의 시그니처 같은 분수. 그리고 맑은 호수물과 새들. 


옛날 내 꿈은 외교관이었다. 그래서 UN 견학을 할 때 무척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어느 나라를 대표하여 저런 무대에 서서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대신하여. 물론 무산되었지만, 한 번 앉아 보았다. 


the representative of Republic of Korea. 


무더운 여름. 많은 국기 앞 분수에 앉아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면서 생각했다. 꿈이 있었다면, 더 노력했었어야지. 저 거대한 의자가 내가 좀 더 책상 앞에 진득하게 앉아 있었어야 함을 이야기하며 꾸짖는 것 같았다. 




루체른은 백조의 도시다. 백조들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먹이를 달라고 졸라댄다. 


루체른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몇 달째 계속되는 여행에 피곤했었는지, 며칠 내 그 좋은 스위스 숙소에서 잠만 잤다. 너무너무 피곤해서. 그만큼 나를 이완하게 해주는 도시였다는 말도 된다. 


너무 평온했다. 심심할 정도로.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빨리 떠나기로 한 이유는 '음식'과 '지루함' 때문이었다. 평온함도 일주일 이상 계속되니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계속되는 평온함은 평온함이 아니라 지루함이 된다. 
결국 평온함이라는 것도 '평온하지 않음'의 반대말인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마지막 떠나는 스위스 기차역에서 정말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독일로 국경을 넘으려고 스위스 화폐 단위인 프랑을 모두 독일 돈으로 환전하고 떠날 채비를 했을 때였다. 나는 소시지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돈을 이미 환전해 버린 터라 스위스 돈이 없었다. 그래서 가게 주인에게 유로를 받아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가게 주인은 완강하게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때, 내 뒤에서 그 실랑이를 보고 있던 한 여자가 소시지 값을 내주었다. 내가 너무 고마워서 이 빚을 어찌 갚지요?라고 묻자, 그 여자는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마도, 나중에,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갚으면 되지요. 
소시지 맛있게 먹어요 ~ 그리고 즐거운 여행 해요~ 


그렇게 그 친절했던 여자는 내 인생의 모토를 가르쳐주고 떠났다.  호의는, 돌고 돈다는 것.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선행의 대가는 , 바로 그 사람에게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돌고 돌아 이 세상에 돌아다닐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행복의 씨앗 하나를 뿌리는 것의 효과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사건이었다. 


그 스위스에서의 소시지 사건 이후로,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호의를 계산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온전히 세상에 녹아들어 결국 내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누군가를 따뜻하게 할 것이므로. 




#유럽여행기

#스위스여행기

#퇴사여행기

#베른여행기

#루체른여행기

#제네바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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