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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25. 2023

이탈리아 베니스와 친꿰테레

여행을 하면 자아발견을 한다고들 하는데, 그 이유는 생각할 시간과 선택할 기회가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낯선 여행지에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소개해야 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수없이 질문을 받고 대답하고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진지하게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했다.


"Where are you from?"

"What's your name? "

"Why are you travelling alone?"

"How's your life in your country?"  


간단한 질문들이지만, 반복해서 이런 질문들을 받게 되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고, I'm from Korea, My name is TJ Kim.. 등의 틀에 박힌 답변을 떠나 뭔가 다른 대답을 하고 싶어 지기 때문에.


여행지마다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의 계속되는 틀에 박힌 질문에 언제부터인가 틀에 박힌 대답이 아닌 진짜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답을 내놓게 된다.  


Where are you from? - Well, I don't know.. 글쎄 나도 모르겠어.

What's your name?  -I'm TJ. Thomas James.

Why are you travelling alone? -To find something valuable in my life.

How's your life in your country? -It's too complicated to explain..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이방인들과의 대화는, 영어를 할 줄 안다면, 여행의 목적이 뭔가 관광 이상의 것이라면.. 바로 철학적인 것으로 옮아가게 되어 있다.  


"You're from Korea, but why are you travelling Italy alone???"


 왜 여기까지 와서 혼자 여행을 하느냐고?

나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 있고 싶었으니까. 다른 행성에 온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여행하고 실제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으니까.



책에서 그리도 많이 보아왔던 곳, 길 대신 해로가 있는 곳.. 베네치아.  


정말 길 대신 물이 있었다. 내가 점찍어 놓은.. 베네치아에 단 한 개뿐이 없다는 유스 호스텔로 가기 위해 열심히 길을 찾는데, 바로 건너편이 그 건물이건만, 건너갈 수가 없었다.. 길이 아닌 물이라서..  

내가 느낀 베네치아는.. 깔끔하고 우아한 신비로운 도시라기보다는..

냄새나고 퀴퀴한.. 뭔가 신비롭지만 지저분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였다.
 


물속은 탁하디 탁해서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고.

냄새는 냄새대로 고약해서 바다 냄새도 아닌 강물 냄새도 아닌 이상한 냄새가 났기 때문인데..  


그래서 최고의 공포영화는 베네치아에서 찍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이상한 생각도 해 봤다.

그만큼 좁고 구불구불한 소로가 많고, 그 사이로 물이 유유히 떠다니는 형상이랄까.



유명한 베키오 다리를 건너면서 참.. 신기한 도시라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건물을 짓고 정착할 생각을 했을까.. 아시아에서 쳐들어온 훈족 때문이라지.. 아마도..


물을 좋아하는 나는.. 바닷물이 조금 더럽지만.. 그래도 발을 첨벙거리며 좋아라 한다.



낭만이 있는 도시... 그러나 뭔지 모르게 우울한 도시..



지금은 화려한 유리공예나 관광상품들로 관광객을 끌어들여야 살 수 있는 도시..


가면이 유명한 도시답게.. 뭔가 음침한 가면을 쓰고 있는 도시 같았다.




그래도 나는.. 2박 3일을 머무르는 동안, 문을 열면 길 대신 바다가 보이는 호스텔에 앉아있길 좋아했더랬다.  


가끔씩 곤돌라를 타고 연인들이 지나가면서 내 약을 올리긴 했지만,

쥐 두 마리가 난데없이 물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고,

예고 없는 길거리 살인사건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도 했었고,

퀴퀴한 썩은 바다내음으로 내 환상을 일시에 불식시키기도 했지만...  

웬일이지? 다시 가고 싶다.

베네치아로 가는 길, 낯선 여행자의 질문을 받고 싶다.  


"Where are you from? What's your name?"  


그게 지금 현실의 나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반영해 주는 것일지도 모를 테니까.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정말 즐겁게 모든 것을 잊고 놀며 사람의 선한 본성을 깨달은 터키의 한 달 여행기도 있었고, 그 외에 많은 곳들이 모두 좋았지만..

지금 딱 내게 한 달이 주어진다면 다시 가고픈 곳이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지저분하고, 사람들도 불친절하고, 뭔가 문화 자체가 격하고, 어투 자체가 퉁명스럽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질서하고, 이래도 어찌 굴러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지럽고 혼잡하지만

그 안에 미묘한 질서가 있고, 나름의 생활방식이 있다.  


통일된 스카이라인. 옛 고전이 살아 숨 쉰다. 이건 분명.. 그저 옛 조상 덕택에 먹고산다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다. 자신들의 전통을 이만큼이나 지켜내 줬다는 것에 대해 나는 이탈리아 인들에게 감사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무수한 세월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었던 역사로 볼 때,  그들의 조상들이 어떤 견고한 역사를 이뤄놓았다 해도, 후손들의 의식이 없이는 지켜내기 불가능한 그 어떤 것이라는 느낌.


 

조상 덕을 보고 살려고 해도, 그만큼의 노력은 필요하다.

그들에겐 로마에 이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있었기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내겐 그들의 '과거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존경스러웠다. 진짜 왕년이 있어봐야  훗날 '내가 왕년에~'라고 부르짖는 눈꼴시련 자랑질도 할 수 있는 법.. 그들에겐 정말 찬란한 과거가 있었고, 그것을 지켜내어 '아름다운 현재'를 만들어 관광객을 끌고 있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느낌.

어느 골목에 들어서면 완벽한 중세.

어느 골목에 들어서면 완벽한 현대.

화려하진 않은데, 소박하게 뭔가 기이한 느낌.. 집 지붕 위에 종 치는 두 사람의 석상(오른쪽 사진)

참.. 신기하다.



이런 느낌을 온 국가에서 뿜어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페루자 지방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고, 친퀘데레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느꼈다면..

베네치아에서는.. 신기한 세상을 만난다.


 

관광객으로 점철되어 있고, 앉을 곳이 없어 자릿세를 내야 하는 내겐 조금은 피곤하고 불친절한 도시였으나...  

그들은 역사를 selling 한 덕분에 지금 현재 관광객을 어마어마하게 끌어들이며 수입을 올린다.


그때는 지저분한 도시라며 한시바삐 떠나고 싶어 했으나,

지금 다시 그리운 것을 보면.. 뭔가 여운은 깊게 남겼었나 보다..  


우리가 징그럽다며 쫓아내고 학대하는 비둘기..

그들은 사랑하며 보살피고 있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도시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걸로 보면 비둘기를 괴물 보듯 하는 서울은 최악의 심리상태를 가진 불행한 사람들만 가득한 곳인가..  

도시의 비둘기가 균이 많되, 마음이 깊게 병든 사람들만 할까.... 싶다..  


그 도시에서.. 나는 내 내면의 알 수 없는 슬픔을 발견했었다. 그리고 베네치아의 불투명한 바닷물처럼 안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아 무서워했다. 그리고는 곧, 그것이 베네치아의 음침하고 큼큼한 바다내음 때문이라며 원인을 돌리고는 등져 그 도시를 떠나왔다.  


지금 가면 그 도시는  햇빛 찬란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지는 않을는지..

도시는 여행자의 심리상태에 따라 감상이 변하기 때문에..  날씨보다 중요한 것이 여행자의 심리상태다..  




친퀘떼레로 가는 기차. 다섯 개의 아름다운 마을로,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청정 구역.  사람들이 거의 당일치기로 갔다가 간절하게 하루만이라도 묵고 싶어 하는 지역이길래 난 2박 3일로 여유롭게 둘러보기로 했다.


해변에 아름답게 자리한 세 번째 마을 CORNIGLIA. 기차를 타고 멍하니 가다가 갑자기 나타난 눈부신 해변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더랬다. 와아...... 혼자 보기 정말 아깝다.....



내가 묵기로 한 세 번째 마을은 인적이 드문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내려서 바라본 역의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다정하게 느껴져서 앉아서 한참 바라봤다.. 내가 바라던 고요함.


이탈리아에는 유적지만 있는 줄 알고 있었으나, 천혜의 아름다운 곳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친퀘떼레.. 가슴이 탁 트이는 광경을 보고 있으니 혼자 싱글벙글 잘 찾아왔다는 생각에 스스로 기특하다.



알록달록 예쁜 집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별 특징 없는 집에 불과한데,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그 자체로 특징 있는 마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데, 모여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왠지.. 다정한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가방을 내려놓고 산책을 나간다. 가는 곳곳마다 눈이 땡그래지는 풍경들.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산과 꽃들. 폐까지 뚫고 들어와 온몸을 신선하게 하는 맑은 공기.


바다로 가서 수영하고 싶어서 해변을 찾았으나, 근처의 해변으로 가는 길은 계단이 부서져서 출입금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뒤로하며 돌아서고 있었으나.. 나는 바다가 필요했다.


부서진 계단 까짓 거, 내려가면 되지.


총총 난간을 붙잡고 내려간다.


저녁 바다... 맑고 깨끗한, 아무도 없는 나만을 위한 바다가 펼쳐진다...

자리를 잡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과거의 모든 기억들이 섬광처럼 한 커트 커트 지나간다.



나는 과거의 기억들을 잘 씹어 소화하고,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세상에 맞추기 위해 쌓아왔던 거짓의 나 말고, 진짜 내가 좋아하고 신나서 깔깔거리는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멀리 왔다.


차가운 저녁 바다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면서 혼자 좋아서 갈매기 눈이 된다. "행복해...."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아주 간단한 것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낀다. 지금 발에 와서 닿는 시원한 감촉의 파도에 평온하면서도 행복해서 한참 앉아있었다.


행복이란, 즐거움이 아닌 그저 지금 그대로 온전함과 괜찮다는 느낌임을,
그때 알았다.




해가 서서히 지고 있다. 혼자 느끼는 바다는 생각보다 외롭지 않다. 혼자 고요한 마음속에 침잠한다.

꼭 파도가 내 힘들었던 순간들을 깨끗이 씻어 벗겨내려 가는 상쾌한 기분이다..

그리고는 아무 잡념이 없는 행복한 상태.. 를 경험한다.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생각이 멈춘다.

그리고 내 앞에 놓여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아름답다...'라고 되뇔 뿐.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 있었을까? 시간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해가 바다뒤로 넘어가는 움직임을 서서히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무색하다. 저기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보트 위의 다정한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내가 봤던 수많은 바다 중, 가장 아름다운 바다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내가 내려왔던 저 부서진 난간을 다시 타고 올라간다. 조금 더 깨끗해진 마음으로.


난간을 조심조심 타고 올라가, 역을 지나친다. 조용하고 고요하지만 외롭지는 않은. 이상한 아름다운 역.


내일은.. 맑은 바다에서 수영을 해봐야겠다.라고 중얼거리며 돌아서던 길.

바다를 마주할 때는 몰랐었는데,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외로웠다.

혼자 걷는 길 풍경이 너무 예뻐서. 또는 혼자 보기 아까워서...

그리고 그날 밤은 정말 푹 깊은 잠이 들었다.



둘째 날,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길을 따라 오늘의 아름다운 산책길을 나섰다.

아 ~ 싱그러운 꽃들 좀 보시게~ 안녕??



바다에서 신선놀음 하고 있는 두 사람. 정말 부럽다. 나도 저런 요트 위에 둥둥 떠다니고 싶다.

아찔한 흔들 다리를 지나면서 혼자 즐거워서 또 한 번 꺄아아~~




바다를 끼고 걷는 아름다운 길. 두 번째 마을로 이어지는 산책로.. 환상이다.

한 두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살짝 만들어 놓은 산책로... 상쾌한 바닷바람과 깨끗한 나무들..



그리고 짙은 코발트 빛 바다.


나 혼자 봐야 하다니.. 내 친구들, 엄마 아빠,  강아지 방울 아롱이.. 내가 같이 보고 싶은 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지나간다. 이럴 때는 나 혼자 이런 곳에 와 있다는 게 너무 아쉽다.



그들에게도 이런 좋은 풍경, 아름다운 순간을 만끽하게 해 주고 싶은데... 제자리에 서서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짙으면서도 밝은 코발트 색 아름다운 바다. 색깔이.. 정말 청명한 것이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바다. 그냥 첨벙 뛰어들고 싶은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스킨 스쿠버를 즐기고 있는 여자가 눈에 띈다. 눈물 나게 부럽다..

그리고 산책 중에 만난 독특한 해수욕장(?)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는 듯한 풍경. 나도 풍덩 빠져들고 싶었지만.. 조금 머쓱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혼자 놀기엔 별로 적당한 곳이 아닐 것 같아서..


걷고 걸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구불구불 산비탈을 걸어 올라간다.



그리고 내가 묵는 동네.. 또다시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예쁜 집들..

기분이 좋아져서 꽃에 뽀뽀해 줬다. ^^ 내 마음속에 사랑이 넘쳐난다. ♥



내가 불행할 때는 세상이 더없이 일그러져 보이더니, 내 마음이 아름답고 즐거우니 세상이 아름답다.

사실 세상은 아름답기도 하고, 일그러져 추악하기도 하다. 우리가 일부분만 보며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기를 하고 있을 뿐. 세상은 내 마음속에 담겨있고, 내 시선과 관점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꼭 혁명이나 개혁 같은 거창한 것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이탈리아여행기

#유럽여행기

#퇴사여행기

#친퀘떼레여행기

#베니스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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