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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Jan 01. 2024

대망의 프랑스, 니스

프랑스다 드디어. 

나는 기차를 타고 스위스에서 독일 뮌헨으로 잠깐 넘어갔다가 그 무표정한 사람들에 깜짝 놀라 다시 서유럽으로 돌아왔다. 독일 사람들이 싫다는 것은 아니고, 무표정한 것이 싫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는 내겐 따뜻한 햇살 같은 , 미소 짓는 도시와 지역이 필요했다. 


니스는, 그런 곳이었다. 
따스하게 내게 웃음 짓는 곳. 
우여곡절 끝에 잘 왔어.라고. 


너무 눈부시게 푸르르게 아름다웠다. 날씨가 좋았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날 그 니스의 바다는 내 생애 봤던 가장 최고의 바다로 주저 없이 꼽힌다. 그때의 놀라움과 감흥이란 잊을 수가 없다. 


어떻게 바다와 하늘 색깔이 이렇지? 


너무너무 놀랍고 감동적이어서, 여기서 양산을 쓰고 앉아있었다는 한국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저들 사이에서 태닝을 하고 싶어 졌기 때문에. 


또한, 이곳은 색채의 향연으로 내 마음속에 모든 에너지들을 불러일으켰던 곳이다. 


앙리 마티스 , 색채의 화가인 그의 박물관으로 가는 길, 한 명의 거지가 구걸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두려운 표정으로 그냥 지나치려는데, 한 명이 익숙하다는 듯 지나가며 그 거지의 바구니에 돈을 넣어 주며 밝은 미소와 함께 외쳤다. 


Ca va? 


프랑스어로 잘 지내냐, 오늘 어떠냐는 아주 캐주얼한 인사였다. 아마도 자주 지나가며 그 노숙자에게 돈을 주며 인사하는 듯, 아주 익숙한 그 밝은 미소와 제스처에 나는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왜 두려워했을까? 

'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 '자신이 없기에 두려워한다'라는 말처럼, 나는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그를 두려워했을 것이지만, 그에게 밝은 미소와 작은 돈을 전달하는 그 지나가던 행인에게 인사하며 밝아진 노숙자를 보며 내 삶의 태도를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도착했던 앙리 마티즈 미술관은 수리 중이어서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내 삶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색채였다. 


니스에 와서야 나는 꺠달았다. 내가 이제까지 얼마나 무채색으로 활기 없게 살아왔었는지를 말이다. 나는 항상 검은색, 회색, 흰색의 옷을 입고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액세서리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머리도 항상 검은색으로 염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나는 '순수하다'라고 믿고 있었지만, 아니, 정작 내 내면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 깨달았다. 


빨간색이 움틀거렸다. 

노란색이 깨어났다. 

파란색이 마음속에 짙게 퍼져 나갔다. 

초록색이 물들었다. 

그렇게 내가 이제까지 숨죽이라 말해왔던 색채 에너지들이 모두 한 번에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화장품 회사였다. 그것도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채의 립스틱으로 유명한 브랜드를 내가 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에 '관심이 없는 척' 했다. 아주 고고하게, 나는 립스틱과 어느 색깔을 오늘 입술에 바를까 따위를 고민하는 그런 가벼운 여성이 아니다.라는 이상하게 베베 꼬인 자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마티스의 그림 앞에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고고함이 아닌, 부러움이었다. 
르 상티망, 바로 그것이었다. 



매일매일 무슨 색 립스틱을 입술에 바를까 고민하던 그녀들은 나보다 어쩌면 더 순수했다. 그런 것을 고민할 수 있던 처지에 있었거나, 그것들에 기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 뿐, 과연 그 사실에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별로 없었다. 

잘 사는 부유한 집안 자제들이었고, 직장은 그야말로 생계 수단이 아닌 '자아실현의 장'이었다.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의 다양함을 즐기고 거기서 얻는 기쁨들이 무엇인지 아는 여자들이었다. 자기 자신의 욕구들에 솔직했고,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다만, 나와 환경이나 시선이 달랐을 뿐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앙리 마티스의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 앞에서, 니스의 따스한 햇살 아래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나와 바다로 향했다. 

조금 더 내가 가진 '부러움'에 솔직해질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니스 아름다운 바다 아래서, 한 커플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눈물이 나게 부러웠다. 
나도 저런 사랑해볼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 다행히도 나는 '부럽다'는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리게 된 것 같다. 적어도 비꼬거나 어떤 비겁한 도덕적 잣대로 깎아내리는 짓은 하지 않게 되었다. 


예쁜 여자를 보면 부러웠다. 

부자를 보면 부러웠다. 

공부를 안 해도 인생이 잘 풀리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그저 매일 웃을 일만 생기는 그런 사람들, 너무 부러웠다. 

부모 잘 만나서 잘 사는 아이들, 부러웠다. 

인생의 별다른 굴곡 없이 자신의 삶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냥 부러워할 수 있음.
질투나 비꼬기 없이, 순수하게 부러워함  


니스는, 그 능력을 내게 되찾게 해 준 고마운 도시였다. 

그래서 나는 그제야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기다렸다. 나를 만나러 파리로 며칠 뒤 날아올 그를. 


내가 여행 떠나오기 전, 세 번 정도 만났던 남자. 

내 고등학교 친구가 '친하게 잘 지내보라' 며 가볍게 소개해 줬던 사람. 

그러나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으니, 정말 잘 지내보라고, '사랑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그 남자. 

그가 나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러 며칠 후 파리로 올 예정이었다. 


나는 니스 바다를 보면서, 내 앞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예쁜 커플을 보며 이미 결정을 내렸었던 것 같다. 

그와 사랑에 빠지기로, 
그것도 최고로 로맨틱하게 사랑하여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로. 


그렇게 나는 최고로 로맨틱한 추억을 만들어 
평생의 기억이 될 사랑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퇴사여행기

#유럽여행기

#프랑스여행기

#니스여행기

#사랑에 빠질 준비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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