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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Jan 13. 2024

나의 또 다른 언어들 -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40대에 나의 언어들이 세 개나 더 생기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외국인들과의 완전한 free talking. 언어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을 40대에 느끼게 된 것이었다. 


영어, 나의 첫 외국어 


원래 어린 시절부터 영어는 나의 특기 중 하나에 속했다. 발음이 좋았고,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습득했다. 왜였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영어라는 언어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그냥 듣기가 좋았고, 발음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 입에서 다른 나라의 언어가 튀어나온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신기했다. 


그래서, 원래 조금 소질이 있었던 영어로, 국내파로서 해외사업부에서만 일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뭔가 조금 더 공부하고 싶었다. 좀 더 완벽하게 가다듬어서 '완벽한 외국인'이 되고 싶었다. 비정상회담에 나와서 우리나라 말을 정말 잘하는 타일러처럼, 그런 외국인처럼, 그들의 언어에서 뭔가 핸디캡을 가지지 않는 그런 영어를 구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외우기로 했다. 특히 영어 구동사를 중심으로 회화를 다룬 책을 4권을 통째로 외우기로 했다. 

물론 그즈음, 영어 회화 수업도 같이 시작해서 수업 자체가 나의 공부가 되었다. 


즐거웠다. 

내가 이렇게 몇 년을 열정을 공부하면, 영어라는 영역을 네이티브처럼 정복하여 언어로 인한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신이 났다. 그리고, 열심히 책을 공부하고, 강의하면서 내 몸값도 올라갔다. 영어 선생으로의 몸값도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그건 '고급 영어'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다. 


보통 '원어민 선생님'이 영어를 잘 가르칠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서는 '국내파 선생님'이 영어를 잘 가르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가 어디서 실수를 하는지 더 잘 알고, 한국에서는 영어를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효과적으로 더 잘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인데, 내 경우가 딱 그 경우에 속했다. 


국내파로서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하는 선생님, 
그리고 고급 영어를 누구보다 잘 가르쳐 주는 선생님, 
단기간에 실력을 확 올려주는 선생님 


그렇게 아이러니하게 , 나의 영어 실력이 올라감과 동시에 , 영어 과외 선생님으로서의 나의 위상도 올라갔다. 나 또한 너무 재미있게 공부를 하곤 했고, 수업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영어를 불편 없이 아주 네이티브처럼 구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으로 나도 모르게 저벅저벅 한 걸음씩 다가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제2 외국어, 프랑스어 


나는 몇십 년 전이긴 하지만, 국내 교육부와 한국외국어대 주최 고등학생 외국어 경시대회 프랑스어 부문 은상 수상자다. 국내파로서 2위를 했었다. 그런 나의 영광스러운 결과는 아마도 나의 언어 감각과 프랑스어 발음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프랑스 문화에 대한 동경도 한몫했다. 


세계적인 프랑스 회사, '나는 소중하니까요'를 외쳤던 그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느꼈지만, 세계의 공용어는 영어다. 그러나, 세계 문화의 중심 언어는 프랑스어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유럽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고 오히려 불어가 공용어인 곳이 많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내가 프랑스어를 할 때 대접받는 그 느낌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 무엇보다 나는 프랑스어를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잘 쓰이지 않아서 좀 힘들었다. 하지만, 이 세계화 시절에 무엇을 못하랴. 나는 공부했다. 왜냐하면 꿈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프랑스어를 쓰면서 프랑스를 여행하기였다. 


프랑스를 여행해 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아니, 현지 언어로 현지를 여행해 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하게 된다면 그들의 엄청난 환대를 받게 된다. 


어느 날 유럽의 기차 안에서였다. 프랑스 할아버지 옆에 앉았던 나는, 이야기를 하다가 프랑스어로 1부터 21까지 숫자를 기억해 내서 세었다. 그랬더니 그 프랑스 할아버지는 너무도 기쁘게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다가 건너편에 앉아있는 자신의 아내에게 크게 외쳤더랬다. 


여보! 이 아시아 아이가 프랑스어를 해!! 


여행 중 만났던 그 할아버지와, 소르본느 대학 근처에서 만났던 프랑스인과의 대화 (그는 내게 마지막에 크루아상을 선물로 줬다) , 스페인에서 만났던 퀘벡 친구. 그들과 프랑스어로 자유롭게 좀 더 대화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40대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자전거 랜도너스 여행을 떠난 그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프랑스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들은 프랑스말을 조잘대는 이 아시아인에게 너무도 호의적이었다. 서로 연락처를 묻고 관심이 있어했다. 우리는 철학을 나누고, 삶을 이야기했다. 너무도 좋은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난 느낌으로 너무 행복했다. 


모두, 프랑스어를 공부한 덕분이었다. 


나의 전공, 중국어 


항상 숨기고 싶은 나의 대학교 전공은 '중국 문화'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적성에 맞지가 않았다. 중국어도 맞지가 않았고, 중국문화는 더더욱 나와 맞지가 않았다. 그래서 겨우겨우 다른 과목들을 수강해서 학점을 높이면서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40대가 되자, 그 중국어가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내게 꼭 부탁하듯 말했던 중국어 선생님도 생각났다. 


넌 중국어를 정말 중국사람처럼 예쁘게 해. 꼭 중국어 열심히 공부해 


영어와 프랑스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그때즈음, 나는 중국어도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사실, 실생활에서는 필요 없을는지도 몰랐지만, 나는 내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는 모든 재능들과 지식들을 다 부활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렇게,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꽤 성공적이었다. 내가 중국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은 핸디캡이었지만, 사람들과 일상생활 대화를 할 정도는 되었기에 여행할 때 너무 편하게 작용했다. 


그렇게, 나는 40대에 우리나라 말 외에 3개 국어,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를 어설프게 가 아닌,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4개 국어 하는 아이 셋 엄마. 
그리고 요가 강사이자 영어 강사. 


가끔 프랑스어 번역도 하고, 중국어 통역도 하는, 그런 멋진 외국어 달인이 되어 있었다. 

비결은? 

그저 한 챕터씩 꾸준히! 

내가 원하는 모습을 꿈꾸면서 하루하루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내가 꿈꾸는 모습을 기억하면서, 그 존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40대 미래일기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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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40대

#4개국어하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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