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을 때, 자신의 영화 스승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인용하여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이 항상 진리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창의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존중받지 못하고 '특이하다'라고 낙인찍히는 곳이 한국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40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전에는 보다 남들의 기준에 그나마 맞춰주려고 온갖 애를 다 썼다면, 40대가 들어서면서부터 못다 한 사춘기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색깔이 점점 진하게 감출 수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Unique & Special
이는, 나의 40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두 가지 단어이다.
나는 남들과 겹치는 대부분의 것들을 조금 불쾌해할 정도로 싫어했다. 물론, 결이 비슷한 것은 너무 좋고 반겼으나 똑같은 것은 지양하는 성향이 더욱 짙어졌는데, 이는 일에서도 마찬가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다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유행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나는 남들보다 우월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남들과 똑같고 싶지는 않았다.
못나도 좋고, 못해도 좋았다. 다만, 그것이 '나'이어야 했다. 남들을 흉내 내는 그 어떤 것이 아니어야 했고, 남들이 내게 요구하는 그 어떤 모습이 아니어야 했다. 과감하게, 이건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굉장히 개인적이고 unique 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지문 같은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특이하다, 별나다, 정말 유별나다는 말도 많이 듣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지난 30년의 삶처럼, 남들에게 또는 사회적 기준에 나라는 가치를 묻어버리기 싫었다. 그렇게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매장당하여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싫었다.
조금 못나도, 많이 별나더라도, 무슨 욕을 먹더라도
그냥 나는 '나' 다운 모습으로 내 자리에 머물었던 것이 나의 40대였다.
그 unique 함에 대한 나의 고집은 나를 special 함으로 이끌었다.
정말로 나는 special 해졌다.
너무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다른 이들과 같기를 거부하고, 나 다움을 지키려고 고집 피웠을 뿐인데, 이것 자체로 가 special 하고 특별한 모습이 되었다.
나는 40대를 20대처럼 활기차고 자유롭게 살아냈다. 남들이 말하는 40 대란, 40대의 여성이란,, 이라는 틀에 박히지 않고, 내가 지금 20대를 막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인양 아주 즐겁고 반짝이는 눈으로 활기차게 삶을 살아냈다. 그리고 진짜로 그 정신은 나의 '몸'까지 20대로 회춘시켜 주었다.
20대라고 나를 세뇌시키는 동안, 나의 뇌와 나의 몸은 20대에 걸맞은 활동과 생각을 하도록 내 몸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나는 기름칠한 바퀴처럼, 막 뜯은 배터리처럼 탄력을 받아 더 활기차게 내 삶을 노 저어 나갔다. 그것이 내 삶을 굉장히 특별하게 만들어 버렸다.
마치, 내 손목 위에 새겼던 타투처럼 말이다. 그렇게 , 나의 40대는 정말 unique 하고 special 한 나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렇게 내 삶을 Unique 하고 Special 하게 살아가겠다 마음먹었던 40대 초반 그 어느 날 새겼던, 내 생애 첫 타투였다. 그때는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조차 잘 모르고 막연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지만, 새로이 삶을 매 순간 '나답게 살아보겠다'는 결심은 내 삶에 아주 큰 파장을 가져왔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장대하게
내가 마음을 먹자마자
세상은 내게 더 큰 것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서 내게 퍼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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